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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길 잘했어> 리뷰 : 나를 꼬옥 끌어안기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4. 2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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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길 잘했어>

나를 꼬옥 끌어안기

 

한꺼번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외삼촌집에서 눈칫밥을 먹게 된 춘희(박혜진). 영화는 춘희가 어쩌다 부모를 모두 잃고 더부살이를 살게 됐나 하는 사연은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그로 인해 춘희가 겪게 되는 시련을 지켜볼 뿐이다. 부모의 죽음과 함께 18살 춘희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편히 뉠 집도 없이 그저 지나간 자리에 축축한 흔적이나 남기는 민달팽이처럼 부유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더 냉정히 말해서, 그때부터 그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불쾌감만 줄 뿐, 딱히 세상에 존재할 이유라고는 도무지 찾을 수 없어 보이는 잉여 인간이 된 듯하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누구도 곁을 내어주지 않아 늘 혼자인 춘희는 그것이 아무렇지 않을 리 없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낸다. 수학여행 대신 홀로 놀이공원을 가고 노래방을 가며 외로움을 견뎌내고, 다들 고깃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을 때 홀로 싱크대에 서서 라면을 먹으며 서러움을 이겨낸다. 그렇게 과거를 씩씩하게 살아낸 현재의 춘희(강진아)는 여전히 자신을 주눅 들고 혼자이게 만드는 다한증을 벗어나기 위해 매일 마늘을 까서 받는 3만 원을 수술비로 착실히 모으고 있다. 집 밖에 나가는 미래를 꿈꾸며 그는 여전히 달팽이의 속도로 열심이다.

 

그런데 날벼락처럼 부모를 잃었던 춘희가 이번엔 진짜 벼락을 맞고 과거의 자신과 마주치게 된다. 외로운 그에게 친구가 생긴 것도 같지만 아팠던 과거의 기억까지 함께 소환되는 게 문제다. 이로 인해 춘희는 내 안의 나를 마주 보는 법이라는 모임에 이끌리듯 들어가고 그곳에서 말을 더듬는 주황(홍상표)과 가까워진다. 내세울 것 없는 현재를 자신만의 속도로 살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유일한 상대에게 끌린다. 정말 순정만화에나 존재할 것 같은 비현실적으로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둘의 만남은 단숨에 춘희의 모든 아픔을 치유할 것만 같다.

 

급기야 자신을 지키는 것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주황은 춘희를 지켜주겠다는 다짐까지 하지만, 춘희는 누군가를 지켜준다는 건 그렇게 쉽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고 정색을 한다. 그 와중에 세상 정의로운 척하던 사촌 오빠가 알량한 돈 봉투 하나로 춘희를 홀로 지켜온 외갓집에서 쫓아내려 하자, 춘희는 그 부당함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 예전에 할머니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었지만, 춘희의 어머니도 나고 자란 외갓집이 왜 자신의 집이 될 수 없는지, 왜 어릴 때 자기를 그렇게 밀어내고 미워했냐고 따지며 울부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집을 빼앗긴 춘희는 고깃집 숯불을 바라보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원망의 화살을 다시 자신에게 향하려 한다. 하지만, 춘희는 불 속에 자신의 손을 넣으려는 어린 춘희의 손목을 잡아 빼며 꼭 안아준다. 그리곤 등을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한다. 이제 그는 정말 민달팽이처럼 집 없는 신세가 되었고 다한증에서 벗어나는 것도 실패했지만, 다시는 자신을 타박하고 주눅 들게 하지 않겠다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비로소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게 된 춘희는 나만의 쓸모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춘희야, 태어나길 잘했어.”

 

영화는 순정만화를 닮은 성장영화이자 로맨틱 코미디가 교차하는 어디쯤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기만의 색깔과 표정으로 관객의 마음에 봄 햇살처럼 스며들어 꽃처럼 피어난다. 춘희를 슬프고 비참한 인물로 그리며 동정이나 받을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그저 곁에 앉아주고 말없이 그 축축한 손을 잡아주고 싶은 아름다운 춘희로 만들어내는 감독과 배우들의 역량이 눈부시다. 비록 주눅 들어 하고 싶은 말을 못하며 느릿느릿 살지만 과거를 포기하지 않고 잘 버텨냈으며, 오늘도 잘 살아내고 있는 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춘희를 어찌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춘희가 자신을 꼭 안아주었듯 보는 이 자신도 스스로를 포근히 안아주고 응원하게 된다. “모두들 태어나길 잘 했어.”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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