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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렐 마더스> 리뷰 : 숨겨둔 진실을 밝히는 용기에 대하여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4. 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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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렐 마더스>

숨겨둔 진실을 밝히는 용기에 대하여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패러렐 마더스>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연기하는 야니스를 중심에 두고 아이가 뒤바뀐 두 여인의 이야기와 스페인 내전으로 희생된 이들의 유해를 발굴하려는 이야기를 동시에 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이렇다 할 연관성이 없는 두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가는 서사 속에서 혼란만 가득 안고 극장을 떠나려던 찰나, 영화는 다음의 문구로 막을 내린다.

 

"No matter how hard you try to silence it, human history refuses to shut up."

침묵의 역사란 없다. 인류의 역사는 침묵하지 않는다.

- Eduardo Galeano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위 글귀가 화면에 떠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영화에 담긴 메시지에 확신을 갖게 된다. 제목의 'Parallel(평행한, 나란한)'이 지닌 의미처럼 교차점은 없지만 '감춰둔 진실을 드러내어 그것을 직시하려는 행위'라는 점에서 두 이야기는 같은 목표를 향해 뻗어 있다. 그리고 두 이야기 모두 목표점으로 나아가는 주체가 어머니라는 이름의 여인들이다. 역사적 비극으로 인한 상흔과 모성애와 양심 사이에서 벌어지는 딜레마를 시대를 관통하는 여성의 삶으로 그려낸 이 영화의 매력을 극장을 벗어나 뒤늦게나마 곱씹어 본다.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는 마드리드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사진작가이다. 그녀는 사진 촬영을 계기로 법의학 고고학자인 아르투로(이스라에 엘레할데)에게 증조부의 유해 발굴을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야니스는 아르투로에게 당시 희생자들의 얼굴과 매장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장소를 사진으로 보여준다. 야니스가 가지고 있는 자료는 생전 증조부가 찍어둔 것으로 사진작가라는 직업이 대를 이어온 일임을 짐작하게 한다. 계승자로서의 야니스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운명마저 따르려 한다. 아르투로와 연인이 된 야니스는 그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임신한다.

암 투병 중인 아내가 있는 아르투로는 아이를 지울 것을 제안하지만, 야니스는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홀로 아이를 키우겠다는 결의를 보이며 아르투로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윽고 화면이 전환되어 카메라는 산달이 다가온 야니스를 비춘다. 같은 병실에서 야니스는 아나(밀레나 스밋)를 만난다. 야니스와 아나는 함께 진통을 견디다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딸을 낳으며 동지애와 비슷한 감정을 나눈다. 영화는 이후 야니스와 아나의 육아 과정을 교차로 비추며 엄마로 살아가는 그녀들의 모습을 빠른 호흡으로 보여준다. 환경과 상황은 다르지만 아이를 향한 야니스와 아나의 사랑은 너무도 닮아있다. 짧은 행복을 뒤로하고 영화는 또다시 빠른 호흡으로 야니스가 마주해야 할 현실을 전면에 세운다. 야니스는 아르투스의 의심과 유전자 검사로 딸 세실리아가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알게 된다.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는지에 대해 확인하지 않는다. 야니스는 이 사실을 묻어두기로 한다. 마주해야 할 진실이 너무도 가슴 아프기에 마땅히 이 상황을 알아야 할 이들에게까지 진실을 비밀 속에 감춘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존재하지 않듯 야니스가 묻어둔 진실은 곧 밝혀지게 된다. 영화는 진실이 드러나는 것에 앞서 야니스와 아나의 재회를 조명한다. 아나는 출산 당시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다. 질끈 묶었던 검은 긴 머리는 짧게 자른 금발로 변화하였고 옷 스타일도 이전보다 훨씬 꾸밈새가 느껴진다. 이전에 그녀에게 느끼지 못한 자유로움이 풍겨오지만 어딘지 모르게 공허해 보인다. 아나의 딸 아니타가 돌연사했다는 것을 안 야니스는 집을 나와 살고 있다는 아나에게 세실리아의 가정 보모로 일해볼 것을 제안한다. 아나와 함께 살게 된 야니스는 아나에게 살림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준다. 감자 깎는 법을 배우고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모녀 관계처럼 보인다. 아나는 친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야니스로부터 느낀다. 야니스와 함께 생활하면서 아나의 불완전한 자유는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야니스의 딸이자 아나의 딸인 세실리아를 공유하고 있는 특별한 상황은 야니스와 아나 사이에 호감 그 이상의 감정이 흐르게 만든다.

 

진실은 야니스가 비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모든 사실을 아나에게 털어놓으면서 표면으로 드러나게 된다. 진실을 알게 된 아나는 처음엔 야니스에게 화를 내며 세실리아와 함께 야니스의 집을 나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야니스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전화를 건다. 종국에는 야니스의 고향 집에서 세실리아와 함께 즐거운 담소를 나눈다. 다소 싱거운 전개로 극적인 재미는 반감되었을지 모르지만 이를 통해 감독이 전하려는 의도는 명확히 드러난다. 영화는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자극적인 전개는 덜어내고 그 자리를 진실을 밝히려는 당사자의 담백한 결심으로 채운다. 진실을 고백한 용기는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그 영향은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영화의 말미, 유해 발굴 현장을 둘러싼 수많은 여성들이 바라보고 있는 시선 너머에서 밝은 미래를 예감해 본다. 이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진실을 밝힌 용기의 힘을 믿어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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