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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춘언니> 리뷰 : 색깔 가득한 일상으로 돌아간 예술가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4. 2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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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춘언니>

색깔 가득한 일상으로 돌아간 예술가

 

예술가 아닌 예술가, 임재춘

 이 영화의 주인공 재춘 언니로 불리는 임재춘 씨와 국내 최장기 투쟁이란 타이틀을 가진 콜트콜텍 투쟁은 많은 영화에 등장했다. 김성균 감독의 다큐멘터리 <기타 이야기>, <꿈의 공장>, 이인의 감독의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직접 자신을 연기했던 단편영화 <천막>, 투쟁 중 잠시 휴가를 보내는 재복의 이야기 <휴가> 등등 멋쩍게 웃는 그의 모습이 익숙한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영화의 초반, 재춘언니는 전시회에서 그가 묘한 표정을 짓는 작품을 보고 있다. 이 사진을 찍을 때 무슨 감정이었느냐고 감독이 묻지만, 그는 하라고 해서 지은 표정이라고 답한다. 자신은 예술도 모르는 사람이라 뭔 표정을 지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예술가 못지않게 활발하게 무대에 서지만 본인은 기타 기능공이라 말하는 재춘 언니의 일면을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그는 실로 많은 무대에 선다. 회사와 법원, 길거리에서 대자보, 판넬을 들고 있는 것은 물론, 햄릿의 이야기에 빗대어 만든 연극 <구일만 햄릿>에서 화관을 쓰고 드레스를 입은 오필리아 역을 맡는다. 또한, 콜트콜텍 밴드에서 퍼커션을 치고 가사를 쓴다. 많은 예술가와 결합하여 문화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콜트콜텍 노조 사람들은 다양한 무대에 선다. 30년간 일했던 직장을 잃은 이야기를 주제로 말이다.

 많은 이들을 울고 웃게 하지만, 그의 불안은 영화 중간중간 비극적인 음색의 피아노곡과 함께 어두운 배경 위로 떠오르는 투박한 투의 자막에서 드러난다. 사실 그는 무대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라고. 자신은 기타기능공이고, 30년간 일한 공장에서 만든 기타는 그의 자부심이었다고. 딸들은 우리 가족은 뭐 먹고 사냐 묻는데 삶을 좇아 천막을 떠나는 것도 어렵다고. 이처럼 영화는 재춘 언니의 심경을 직접적인 인터뷰보다 그의 글귀로 강조한다. 대법원을 서초동 점집이라 표현하는 등 연극 중 대사와 장면, 그들이 쓴 가사가 그들의 지지부진한 상황과 연결되어 날카롭게 꽂힌다.

 

주인 나와라 무릎 꿇고 빌어라

 화면에 ‘2018이란 자막이 떠오른다. 그들이 싸움을 이어온 날짜의 천 자릿수가 2에서 4로 바뀌었다. 숫자로 세어도 어마어마한데 그들이 직접 겪고 느꼈을 ‘13의 크기가 쉬이 가늠하기 어렵다. 흑백화면 안에서 재춘 언니의 머리는 이제 너무나 새하얗다. 이들은 회사로 들어가 오랜만에 사장과 마주한다. 가득 일그러져 있는 그의 얼굴은 영화 내내 짓던 쑥스러운 얼굴이 아니다. 오래 옆에서 싸움을 지켜와본 기분에 그의 표정은 뇌리에 묵직하게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 앞 새로운 천막 앞에서 함께 모여 있다. 옛 회사 터에서 주인 주인 나와라, 무릎을 꿇어라.’라고 외치고 꽹과리 소리에 맞춰 하나의 원을 그리고 돌던 때처럼, 관객으로 그들의 서툴지만 진솔했던 무대의 객석을 가득 채웠던 것처럼 말이다. 흥겨운 음악에 모두가 춤을 추고, 재춘 언니 또한 가볍게 리듬을 탄다. 단식투쟁을 하는 천막 안에서 모여 니체의 책을 낭독하는 모습까지 보면 13년간 노동 운동을 한 이들을 정말 미련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싶다. 콜트콜텍 투쟁은 삶을 좇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 문제에 대해 함께 지켜야 할 가치가 있음을 알려주었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응원을 전해주었음을 영화는 말한다.

 

많은 변화를 안고서 일상으로

 그들은 회사와의 교섭을 통해 복직을 약속하는 합의서를 쟁취한다. 이 결과는 재춘 언니와 그의 동료들의 흑백 세월에 비해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의 싸움은 끝났고, 영화 내내 이어오던 흑백 톤은 어느새 컬러화면으로 바뀌어 있다. 감독이 오랜만에 만난 그는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요령을 잘 몰라 혼나기만 한다고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기타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예술가는 그의 색깔 가득한 일상으로 드디어 돌아왔다.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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