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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 버진> 리뷰 :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좋은 여름을 기다리며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4. 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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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 버진>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좋은 여름을 기다리며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8월의 마드리드. 성모 승천 대축일을 기념하는 축제가 한창이다. 주민 대부분은 더위를 피해 휴가를 떠나고, 도시는 관광객과 남은 이들의 열기로 한껏 달궈진다. 주인공 에바는 고향인 마드리드에 남기로 한다. 에바에게 8월은 다른 때엔 할 수 없던 일을 하기 좋은 때이다. 보름 동안 친구의 집에 머무르며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거닌다. 에바(잇사소 아라나)는 여름을 어느 때보다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느낀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축제를 즐기기도 한다. 에바의 일상은 단조롭고 한가로워 보이지만, 후반부에 밝혀지는 에바의 비밀로 인해 모든 나날을 되돌아보게 된다.

 

에바는 계속해서 우연히 누군가를 만난다. 무작정 발디딘 박물관에서 친구 루이스(루이스 알베르토 헤라스)와 마주치고 밤늦게까지 어울리며 거리를 돌아다닌다. 집 대문을 못 열어 잘 곳이 없어지고,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 소피아(미켈레 우로즈)에게 연락한다. 전날 밤 길거리에서 공연하던 사람을 문 열어주는 이웃 올카(이자벨 스토펠)로 재회한다. 어느 날은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가 전 애인을 맞닥뜨린다. 그를 피하고자 다음 날 극장에 다시 가고 기치료를 하는 마리아(마리아 헤라도르)를 알게 된다. 유성우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고스(비토 산즈)를 처음 만나 말을 건다. 올카, 마리아와 함께 간 공연장에서 우연히 아고스가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처럼 뜻밖의 계기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에바의 주위에서 관계들은 예상치 못하게 이어지며 들뜬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코로나로 인해 우연을 기대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짜릿함을 선사한다.

 

우연은 짜릿함뿐만 아니라 성찰도 제공한다. 올카와 술을 마시며 알게 된 남자 두 명, 올카, 소피아, 에바는 물놀이를 간다. 다함께 모여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에바는 다른 나라로 휴가를 간 적은 있어도 고향인 마드리드를 떠나 살아본 적은 없다. 반면 나머지는 고향에 정착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살거나 떠돌아다닌다. 이들은 원래 자신이 이런 사람이어서 고향을 떠나온 건지, 고향을 떠나와서 이런 사람이 된 것인지 고민한다. 올카는 에바에게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는 자유롭기 쉬운데, 그렇지 않은 곳에서 자유를 찾으려는 것이 용감하다고 말한다. 에바는 계곡에 누워 진정한 자신이 되는 법에 대해 자문한다.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에바의 여정에 동참하며 내 존재도 반추해본다.

 

에바의 고민은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것으로 드러난다. 자신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에바는 아고스 앞에서 솔직해진다. 옆에서 잠든 아고스에게 독백하며 임신 사실을 털어놓는다. 이때부터는 에바가 만났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소피아로부터 출산 이후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데, 이는 에바의 미래일 수 있다. 한편 올카는 난자를 냉동하여 결정 자체를 유보하였는데, 에바에게는 임신하기 전 과거의 어떤 가능성의 형태가 된다. 마리아에게 기치료를 받고 두 명의 마리아와 함께 술을 마시며 월경, 배란일, 여성의 몸에 관해 이야기한 시간은 필연적으로 느껴진다.

 

에바에게 의문을 가졌던 것들이 조금씩 해소되지만, 여전히 물음표는 남아있다. 에바는 왜 고향인 마드리드에서 휴가를 즐기기로 한 건지, 어쩌다 임신을 하게 된 건지, 그래서 진정한 자신이 되는 법은 무엇인지. 우린 끝끝내 알 수 없다. 영화는 모르는 것을 모르도록 내버려 둔다. 여름은 느슨하여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도록 만듦으로 완벽한 계절이 될 수 있듯이,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진정한 자신에 대해 모르고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미지의 영역은 가능성으로 깃든다.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좋은 여름을 기다리며 엔딩크레딧 노래 가사를 음미한다.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어요

 

-관객 리뷰단 박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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