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벨파스트> 리뷰 : 언젠가 다시 만나 우리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4. 1. 17:04

본문

<벨파스트>

언젠가 다시 만나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나 우리 더 좋은 날에 우리

좀 더 행복하게 좀 더 차분하게 파도치는 바다 같을 때

꼭 다시 만나 우리 난 기다릴게 우리를

좀 더 행복하게 좀 더 차분하게 설레이는 햇빛 아래서 언젠가

 

버디(조나 힐)와 그의 가족이 벨파스트를 떠나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비투비(BTOB)<언젠가(SOMEDAY)>에 담긴 노랫말이 떠오른다. 버디가 캐서린(올리브 테넌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위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영화 <벨파스트>는 유년 시절을 추억하는 감독 케네스 브래너의 아련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떠나고 싶지 않지만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날의 기억이 어떠한 형태와 질감으로 남아있는지 감독은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만든 이가 경험했던 과거를 재료 삼아 빗어낸 작품은 관객에게 가닿을 수 없는 지나간 시간과 공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는 흑백 화면 위에서 버디의 어린 시절, 벨파스트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펼쳐낸다. 모든 영화가 색채의 유무로 시대를 반영하지는 않지만, 색감을 걷어낸 화면에서 풍겨오는 아련함은 영화가 1960년대 말엽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임을 드러낸다. 버디가 누비는 거리 곳곳의 풍경과 마주하는 마을 사람들을 컬러 화면으로 마주했다면 그때 그 시절이라는 그리움의 감정은 지금보다는 덜 진했을 것이다. 영화가 과거의 이야기를 다룬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흑백의 화면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타이타닉 조선소의 옐로우 크레인과 벨파스트의 전경과 버디의 가족들이 극장에서 본 영화 <치티 치티 뱅뱅>의 한 대목에서 다채로운 색감을 화면 가득 내뿜는다. 이야기의 양 끝과 중간에 자리한 컬러 화면은 흑백 화면의 이야기를 좀 더 오래된 기억처럼 느껴지도록 기능한다. 마치 생동하는 현재에서 세월의 흐름에 색이 바랜 과거를 잠시 떠올리고 있는 감각을 영화를 통해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버디가 사랑하던 평화로운 마을은 개신교와 천주교의 종교 분쟁이라는 미명 속에 한순간에 폭력과 혐오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혼돈이 들이닥친 마을에서 버디는 천진난만한 시선으로 어른들의 불안과 이로 인한 갈등을 곁에서 지켜본다.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갈등은 버디의 아빠(제이미 도넌)를 중심으로 나타난다. 버디의 아빠는 벨파스트를 떠나 영국으로 이주하려 하지만,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떠날 수 없다는 버디의 엄마(카이트리오나 발페)의 반대에 부딪힌다. 또 개신교도이지만 이웃 주민인 천주교도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그는 극단적으로 천주교도를 혐오하는 빌리 클랜터(콜린 모건)와 서로를 적대시한다. 버디는 아빠가 갈등을 겪을 때마다 그의 곁에 있다. 하지만 화면상에서 볼 때 버디는 아빠의 갈등 상황에서 분리되어 있다. 집안에서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부모와 다른 공간에 있거나 버스 밖에서 버스 안에 있는 부모를 바라는 장면, 교문을 사이에 두고 아빠에게 경고하는 빌리를 지켜보는 장면 등이 그러하다.

 

버디 앞에 놓인 창살과 문은 어른과 아이를 가로지르는 경계선처럼 보인다. 버디가 벨파스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그의 가족들도 알고 있고 그들을 지켜보는 관객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버디가 지닌 고향에 대한 사랑은 영국으로의 이주를 막을 수 있는 어떠한 힘도 가지지 못한다. 버디는 결국 어른들의 상황과 결정에 따라야만 했던 어린아이일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에 휘말린 것은 버디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폭동이 일어난 후 세워진 바리케이드를 넘어서지 못한 이들이 할 수 있는 결정은 떠나는 것뿐이었으리라. 그럼에도 가족이 있기에 사랑하는 이들이 있기에 이별은 아프게만 기억되지 않는다. 할아버지(키어런 하인즈)의 장례를 마친 직후 펼쳐진 흥겨운 추모 파티는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빛으로 반짝거린다. 버니의 가족을 보며 떠나온 자리가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는 이유는 사랑이 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보내고 사랑하기 때문에 기억하는 이들의 헤어짐이 언젠가 다시 만날 날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