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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의 아파트> 리뷰 : 끝을 보내고 시작을 맞이하기까지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3. 26.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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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의 아파트>

끝을 보내고 시작을 맞이하기까지

 

여기 한 아파트가 있다. 한때 총세대 수가 천이 넘어가며 단지 수로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단지를 보유하던 화려한 아파트였다. 그 안에선 사람도, 자연도, 고양이도 한데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듯 둔촌주공아파트 역시 끝을 맞이한다.

 

영화는 낡아 허물어져 가는 아파트 단지를 비추며 시작한다. 그런 아파트 밖을 바라보는 여인, 아파트 안에서 먹을 가는 기계와 서예를 하는 노인. 이들은 얼마 가지 않아 정들었던 아파트를 떠나야 한다. '둔촌주공아파트'를 모르는 관객이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땐 둔촌주공아파트는 오래된 아파트로밖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그리고 고양이들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둔촌주공아파트 고양이들의 2년 반 간의 이사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아파트가 재개발이 결정되고, 이 곳에 머물고 있는 약 250마리의 고양이들의 거취가 문제가 되어 둔촌냥이 모임 (둔촌아파트 고양이의 행복한 이주를 위한 모임)이 생겨 고양이들을 본격적으로 이사시켜준다.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부터 연출 면으로 호평을 받았던 정재은 감독답게 카메라가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는다.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종종 어떻게 자유분방하고 숨기를 좋아하는 고양이를 카메라에 온전히 담을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반달 82B, 깜이, 노랭이 114C 등 고양이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어 구분하고 관객에게도 자막으로 이 고양이가 어느 고양이인지 알려 주는 것은 물론 지하, 수풀, 빈집 안에 들어가 있는 고양이들까지 찾아 스크린에 비춰주는 것을 보고 정말 감독과 제작진이 얼마나 고양이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대다수의 음향 효과 역시 적재적소에 들어가 자칫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데, 주로 반복되고 옥타브를 넘나드는 사운드가 듣는 이로 하여금 극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배경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가질 때는 음이 더욱 높아지고 고양이들의 일상을 담을 때엔 상큼한 음이 반복해서 들려와 극의 흐름을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이끌어간다.

 

고양이가 이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귀소 본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제는 없어질 자신의 보금자리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고양이들도 많고, 따뜻한 지하실에 숨어 있는 고양이 또한 다수 존재하는데 지하실의 면적이 너무 넓고 장애물들이 있어 구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아무리 캣맘들의 손길로 사람의 손을 타는 고양이가 많다 한들 경계심이 높고 쉽게 따라주지 않는 고양이의 성격상 아이들을 전부 구출하는 것은 힘들고 고된 일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 역시 둔촌냥이 의견과 캣맘들의 의견, 또 둔촌냥이 내부에서도 의견 차이가 생겨 고양이를 구출하는 방법을 정하는 데 차질을 빚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아파트 내 나무들이 먼저 이사를 가고, 눈이 쌓였다 녹아 봄이 오고, 무더운 여름이 올지언정 고양이들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구출되어 아파트 바깥으로 이사를 간다.

 

사람도, 나무도 사라지고 없는 아파트는 그저 황량하게 뼈대만 남아 자신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다. 단호하고 높은 음악 소리가 귀를 울린다. 마치 변화의 태동을 소리로 나타내듯이, 그 소리를 가로지르고 뼈대를 부수는 기계음이 들려온다. 정말로 건물이, 아파트가 사라지고 있다. 서울 전경으로 옮겨갔던 카메라가 다시 비춘 부지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텅 빈 채 이곳에 들어올 또 다른 시작을 기다릴 뿐. 고양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또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터와 다르지 않다. 각자 나름대로 끝을 보낸 둘은 과연 제대로 된 시작을 맞이할 수 있을까?

 

-관객 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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