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레벤느망> 리뷰 :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3. 19. 17:48

본문

<레벤느망>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레벤느망>은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에세이인 사건을 원작으로 한다. 한 인터뷰에서 영화감독인 오드리 디완은 이 책을 읽으며 용어로 알던 낙태와 실제 여성들이 겪는 과정의 차이점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 충격은 영화 제작을 위한 열망으로 이어졌으며 영화의 주된 목적은 관객들이 주인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 그가 되는 것이라고 밝힌다.

 

영화는 임신 중절 수술이 불법인 1963년 프랑스, 원치 않은 임신을 하고 임신 중절 수술을 감행하는 이 임신 주차 별로 겪는 일들을 보여준다. 안의 표정을 클로즈업하거나 안의 시선을 따라가는 촬영 기법을 활용한다. 또한, 이를 1.37:1의 좁은 화면비로 담아내 관객들이 안의 입장에서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임신 중절 과정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강한 여운을 남긴다. 몇몇 장면은 보기가 힘들어서 눈을 질끈 감게 된다. 그러나 이내 눈을 뜨고 마주한 당시 현실은 노골적인 장면보다 더 잔혹하게 다가온다.

 

안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다. 독감에 걸려서도 결석을 걱정할 정도로 모범생이며 수업 시간엔 교수님의 어려운 질문에 척척 답한다. 임신하여 곧 자퇴할 친구가 같은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것은 안의 모습과 대조된다. 안이 예기치 못한 임신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안은 교사를 꿈꾼다. 계속 공부하고 싶어서 임신 확인서를 찢어버린다. 그리고 의사를 찾아가 말한다. “언젠가는 아이를 갖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인생을 포기하기 싫다. 아이를 미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의사는 답한다. “여성이 선택해서는 안 된다. 받아들여야 한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뒤로 안에게는 어떠한 선택지도 없다. 아이를 낳는 방법뿐이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신 중절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수많은 여성이 불법으로 임신 중절 수술을 받다가 죽었다. 살아남아도 운이 나쁘면 감옥에 가서 처벌을 받게 된다. 안 역시 자신의 삶을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임신과 출산에 있어 여성의 결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인 것이다. 임신 중절이 불법인 세상에서 안은 철저히 혼자다. 절박한 심정으로 낙태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닌다. 처음 임신 사실을 통보한 의사에게 임신 중절을 요구하지만, 의사는 감옥에 갈 거면 혼자 가라며 등을 돌린다. 친구에게도 털어놓는데 친구는 법을 어길 수 없다며 더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함께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남자는 자신의 체면을 차리기에 바쁘다. 알아서 잘 해결하라며 안에게 떠맡긴다. 남녀가 관계를 맺어 아기를 갖지만, 아기를 잉태한 여성만이 그 책임을 떠안게 된다. 안이 임신을 여성만 걸리는 병, 여성을 집에만 있게 만드는 병이라고 표현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안은 처음에 누구에게도 임신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친구들과 성적인 이야기는 하지만, 임신 사실은 차마 터놓고 말할 수 없다. 여성의 성관계 사실이 밝혀지면 받는 불이익과 시선이 두려워서다. 여성의 성적 욕망이 억압되고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러닝타임 내내 낙태라는 단어는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안이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에게 도움을 청할 때도, 그 여성이 알려준 곳에 가서 수술을 받을 때도. 안의 친구인 엘렌이 성관계 경험을 털어놓으며 자신은 운이 좋아 임신하지 않았다고, 안을 돕겠다고 말할 때도.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개인적인 일로 치부된다.

 

1975년 프랑스에서 임신 중절이 합법화되었기 때문에, 사건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임신 중절 경험은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개인적인 사건으로 여겨지지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사건은 안의 인생을 모조리 뒤바꿀 만큼 거대하며 이것은 비단 안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레벤느망>은 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나아가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해석될 때 그 소명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안을 우리는 함부로 비난할 수 있을까? 영화 속 시대상이 현재 우리와는 무관할까? 여러분도 영화를 통해 사회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

 

-관객 리뷰단 박솔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