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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 리뷰 : 배려를 담아 내미는 따뜻한 손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3. 10.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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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

배려를 담아 내미는 따뜻한 손

 

이건 왠지 슴슴하다. 한껏 자극적인 것들에 길들여진 입맛이라 그런지 도대체 무슨 맛인가 싶다. 그런데 참 묘하다. 담백하지만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것이 홀짝거리다 보니 어느새 그 따스함에 마음까지 젖어 든다. 너무 사소하고 소소해서 뭘 이런 걸 영화로 만들었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작지만 세심하게 재현해낸 생생한 감정들과 배려가 의외의 따뜻하고 고소한 추억 한 사발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지치고, 무의미한 전쟁에 슬퍼하며, 서로에게 저주의 말을 쏟아내는 대선 정국에 분노하던, 스스로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내 안의 탁한 감정에 바로 이런 영화가 필요했음을 깨닫는다. 인왕산에서 내려다본 집이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점과 같고, 죽을 것처럼 힘겨웠던 그 시절도 불과 2년 만에 그땐 그랬지웃으며 추억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위로도 받는다.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장만한 집에서 넉넉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배려하며 알콩달콩 사는 수영(김새벽)과 종구(곽민규). 그들은 서로에게 존대하고 상대의 감정에 조심스럽다. 그렇게 배려하고 조심하면 싸울 일도 없고 날마다 맑음일 것 같지만 역시 현실 세계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시어머니의 암 발병은 두 사람의 삶을 단숨에 뒤흔들어 놓는다. 둘을 행복하게 해주던 보금자리에서 나와야 하는 상황은 수영과 종구를 궁지로 내몬다. 서로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뜻하지 않게 오해나 자격지심으로 옮겨가고 그것은 다시 사소한 일들로 싸움의 불씨가 되어버린다. 현실 부부같이 실감 나는 그들의 다툼에 안타깝기도 하지만 필자가 경험했던 부부싸움이 연상되며 너무도 공감이 되어 실소가 비집고 나오기도 한다. 삶이란 그렇다. 선의를 가지고 한 일이 꼬이기도 하고, 상대를 배려한다는 것이 오히려 그의 속을 뒤집기도 한다.

 

화해의 실마리는 재미있게도 다툼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사소한 말과 행동으로 시작된다. 집을 꽤나 마음에 들어 했던 수영이 마음에 걸려 자꾸만 자책하는 종구에게 나한텐 종구씨가 있잖아하는 수영의 격려의 말 한마디와 그에 작은 꽃다발로 화답하는 종구의 모습, 그리고 치킨 앤 비어로 불협화음의 마침표를 찍는 둘의 모습은 사랑하는 이들이 어떻게 싸움을 매듭짓고 상처를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하나의 작은 답을 제시하는 듯하다. 치킨집에서 마주친 부부가 서로 각자의 입장만 내세우며 점점 멀어지는 말들만 쏟아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진심을 알아채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쪽으로 노력을 한 끝에 갈등을 봉합한다. 결국 사랑과 신뢰는 아주 소소한 것들에서 시작되기도, 반대로 금이 가기도 하는 일이라는 얘기를 영화는 적당한 무게감으로 관객에게 전한다.

 

영화의 주된 화자인 소피(아나 루지에로)는 부부가 겪는 다툼과 화해의 과정을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그들과 따뜻한 배려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기억에 남을 특별한 여행을 만든다. 여행객을 넘어 가족처럼 다정하게 대하며 식사를 함께하는 부부의 따뜻함에 소피 또한 그들에 동화되어 그들이 겪는 일들에 공감하고 응원한다. 고작 나흘간의 일정에도 불구하고 혼자 식사를 하는 게 왠지 서글프다는 소피는 심지어 집을 비운 부부를 대신하여 마치 자신이 집주인이 된 듯한 책임감으로 건물주의 방문까지도 철저히 방어한다. 그 밖에도 소피 주변을 스치는 세 명의 인물들 모두 한결같이 진심 어린 배려로 영화의 온도를 올리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서로를 향한 작지만 많은 배려들이 모여 기억에 남을 인연을 잇고,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재회를 바라는 추억을 만들어낸다.

 

수영, 종구 부부와 소피는 집 창문으로 바라보던 인왕산에 오른다. 밑에서 바라만 보던 산은 그 위에 올라가 풍경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더 좋다. 그리고 그 좋은 경험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서로의 덕분이라며 고마워한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선의를 저버리지 않는 마음이 도달한 그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장소에서 그들은 올라오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다음에 꼭 다시 보자고 약속하며 작별하는 세 명의 모습은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한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다툼을 물리고 평화를 가져오는 그런 세상을 바라며, 지금 내 곁에 있는 이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보면 어떨까?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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