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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 리뷰 : 어둡지만 따뜻한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3. 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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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

어둡지만 따뜻한

 

<피그>는 추억의 요리를 소재로 우리가 어떻게 삶의 크고 작은 고난들을 헤쳐나갈 수 있는지, 혹은 어떤 방식으로 과거의 상처들을 마주해야 하는지 보여주고는 그다음 발걸음을 옮기도록 하는 영화다. 주인공 롭(니콜라스 케이지)15년 전 포틀랜드의 전설적인 셰프라는 설정이지만, 사실 음식이나 요리는 일상적인 소재다.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들만 돌이켜 보면, 자칫 요리사가 요리하고 먹는 사람이 과거의 기억을 말로 전하는 단조로운 영화로 구성되기 쉽다. 하지만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은 소소하고 일상적일 수 있는 소재에 비일상적인 범죄 스릴러 장르를 빌려와 관객을 모험의 세계로 이끄는 색다른 선택을 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신선한 시각으로 돌이켜 보게 한다. 인물들의 미스터리한 과거와 영화의 어두침침한 분위기, 그와 상반되게 정성껏 만든 따뜻한 요리 하나에 소중한 기억 하나를 담아 차분한 위로를 전한다.

 

장르를 비트는 재미

어두운 포틀랜드의 밤거리, 잊힌 옛 지하도, 파이트 클럽. 송로버섯을 채취하는 데에도, 식자재를 납품하는 데에도 각자의 영역이 있고, 주인공의 돼지는 알 수 없는 인물로부터 납치됐다. 롭과 아미르(알렉스 울프)는 여느 마피아 영화의 주인공처럼 보이지 않는 영역 싸움을 하고 숨겨진 공간을 비밀스레 찾아간다. 여기에는 9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액션 영화 스타로 주연을 맡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이미지도 한몫을 한다. 이런저런 대사를 주고 받다 보면 어느 순간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이 넘친다. 하지만 영화는 장르의 정해진 수를 비틀어 기묘한 안도감을 선사한다. 예를 들어 롭이 파이트 클럽에 등장하자 장내가 술렁인다. 거구의 셰프, 파이트 머니. 롭이 파이트 클러버들을 모두 제압해버릴 것 같은 분위기지만 그는 주먹을 들지 않는다. 오히려 체구가 훨씬 작은 사람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돼지를 찾기 위한 단서를 얻는 식이다. 돼지의 흔적을 따라 핀웨이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도 마찬가지다. 롭과 아미르는 영역 싸움으로 인해 가서는 안 되는 레스토랑에 간다. 하지만 테이블 엎는 액션 하나 없이 진솔한 대화와 솔직한 마음을 끌어낸다. 일촉즉발의 범죄 영화의 장면처럼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연출해서 대화 장면의 긴장감을 높이지만, 그 에너지는 몸의 액션으로 향하지 않고 대화의 긴장도를 높여 인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만든다.

 

내면을 보여주는 모험

롭은 깊은 숲속 적막한 오두막에서 어둡고 복잡한 도시로 모험을 떠났다가 돼지를 찾지 못한 채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온다. 이 영화는 범죄 스릴러 장르의 변용이면서 크게는 모험을 떠났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는 모험극의 형식이기도 하다. 모험 영화의 가장 중요하고 큰 특징 중 하나는 탐색이다. 인물은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와 내가 놓인 환경을 탐색한다. 롭은 아직 정리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를 가진 자기 자신을 새로운 인물들을 통해 다시 돌아보게 된다. 영화의 어둡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는 사실 롭의 내면을 보여주는 장치라고도 볼 수 있다. 아미르 부모의 추억이 깃든 레스토랑이자 과거 롭이 셰프로 활약했던 핀웨이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떠올려보자. 그때의 포틀랜드는 그렇게 어둡고 축축한 도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밝은 대낮에 맛있는 점심을 먹고 활기 있게 생활하는 곳이다. 아마 과거의 롭은 그런 활기 있고 생기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롭은 어둡고 침잠되어 있기에 영화의 전체적인 톤도, 현재의 그가 움직이는 세계도 그렇게 어둡다. 롭을 비롯한 인물들은 고통받고 있는 상태에 놓여있는데 영화는 그런 상태를 마냥 밝게 그리지 않으면서 조용히 존중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이 어두운 분위기는 미스터리하면서도 인물의 내면을 투영하는 역할을 하기에 차분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롭은 과거에 아내를 잃었다. 그는 적막한 오두막에서 미처 아내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차마 끝까지 듣지 못한다. 하지만 소중한 돼지를 찾아 나섰다 돌아오는 경험을 하면서 무언가를 깨닫는다. 돼지가 진작에 죽었다는 것을 들은 롭은 이런 얘기를 한다. “걔를 찾아나서지 않았다면, 머릿속에서 걔는 살아있었을 거야.” 아미르가 반론한다. “그래도 죽은 거예요.” 롭은 그래, 맞아.”라며 응수한다. 롭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주다가 마침내 자기 자신의 일을 받아들이게 된다. 어둡고 조용한 여정의 끝에서야 그는 자신을 위한 테이프를 끝까지 들을 수 있게 된다. 예의 오두막은 여전히 어둡지만 아내의 목소리로 따뜻하게 채워진다.

 

-송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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