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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리뷰 : 우리는 여기에 와본 적이 있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3. 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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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우리는 여기에 와본 적이 있다

 

"난 끝나는 게 싫은가 봐." 주인공 그레이스(아네트 베닝)는 극 초반부터 끝까지 오직 이 한마디를 관철한다. 그레이스는 남편 에드워드(빌 나이)와의 결혼생활이, 아들 제이미(조쉬 오코너)와 함께 있던 가족의 모습이 끝나는 걸 원치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의 생활은 파국을 맡는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영원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닌 끝나고 난 후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레미제라블>(톰 후퍼, 2012), <글래디에이터>(리들리 스콧, 2000)의 각본을 맡았던 윌리엄 니콜슨이 연출한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10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끊임없이 관객에게 실마리를 흘린다. 배우들의 모습 하나 하나가 모여 원인이 되고, 곧 결말로 이어져 이야기는 딴 길로 엇나가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감독의 역량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는데, 카메라가 에드워드의 시점, 그레이스의 시점, 그리고 제이미의 시점까지 하나하나 짚어가면서도 절대 그 흐름이 어색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에드워드가 그레이스에게 떠날 것이라고 통보하는 장면과 그 이후 그레이스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순서대로 카메라가 에드워드에서 그레이스에게로 넘어가며 사건을 전개하는 동시에 캐릭터들의 각자 내면을 영상에 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공 에드워드와 그레이스는 각자 다른 고민거리가 있다. 에드워드는 아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늘 자신이 그레이스의 성에 차지 않는다고 느껴왔고, 종래엔 안젤라라는 또 다른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지 않는 에드워드가 답답하다고 생각했고, 때때로 그를 아주 심하게 몰아쳐 그의 마음을 알아내길 원했으나 이를 견디지 못한 에드워드가 집을 나가면서 그를 끊임없이 그리워한다.

 

만약 아들 제이미가 없었다면 이 가족은 어떤 결말을 맞았을까. 어쩌면 그레이스와 에드워드가 헤어지는 순간이 더 빨리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레이스의 말대로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로 맞춰가면서 풀어내야 하지만 에드워드는 이를 기피해 왔으니 당연한 결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 뻔하지 않았다. 그들의 자식 제이미는 엄마, 아빠와 화목했던 과거 가족의 모습을 회상하며 깨져버린 현실에 우울해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지 않는다. 오히려 양쪽 입장을 들어주고, 서로 다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새 길을 걸어가는 아빠의 미래를 응원하고 넘어진 엄마를 일으켜 세워주는 등 부모님의 행복을 빈다. 이런 제이미의 모습은 극 중 에드워드가 되뇌는 전쟁 이야기와 상반됨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에드워드가 떠난 이후로 에드워드의 이야기보다 그가 떠난 후 무너졌던 그레이스가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 그리고 제이미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처음엔 집안 곳곳을 바라볼 때마다 남편의 허상을 바라보았던 그레이스는 강아지를 입양하고 어질러져 있던 집을 치우며 하나씩 차근차근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그레이스와 제이미는 영화 내내 호프갭 절벽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필자는 누군가 어느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 물어본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 장면을 뽑을 것이다.

 

자살까지 생각했었다는 그레이스의 말에 제이미는 덤덤하게 정말로 끝낼 거라면 미리 말만 해달라고 말한다. 생을 마감함으로써 진정으로 엄마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는 그레이스를 보내줄 거라고, 그러나 엄마가 이대로 죽는다면 불행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라 말하며 애써 웃음 짓는다. 제이미 역을 맡은 조쉬 오코너의 담백하면서도 아린 눈물 연기가 압권인 바로 이 장면은 그레이스에게 다시 삶의 원동력을 되찾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필자 또한 줄곧 상대의 행복을 바란다면 당신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이러한 제이미의 말이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호프갭 절벽에서 열고 맺는다. 모두의 행복과 불행을 떠안은 절벽은 어린 제이미가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바다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각자 사랑이라고 믿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그레이스의 시 선집처럼 관객 또한 영화가 걸었던 길을 보며 자신의 지난 삶을 되짚어보는 일이 되길 바란다.

 

-관객 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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