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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오더> 리뷰 : 선의(善意)조차 집어삼키는 권력의 탐욕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11. 2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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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오더>

선의(善意)조차 집어삼키는 권력의 탐욕

 

<뉴 오더>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박감으로 가득하다. 영화가 그려낸 가까운 어느 미래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반란과 진압은 너무도 현실적이라 끔찍하기까지 하다. 격동하는 시기의 혼란은 모든 것을 깨부수고 파괴된 자리는 다시 불안으로 요동친다. 폭력과 침략으로 가득한 세계에는 더이상 어떠한 희망도 느낄 수가 없다. 감독 미첼 프랑코는 영화를 통해 희망이 사라진 세상을 야기한 가장 큰 주범으로 권력(權力)을 지목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지배하는 힘은 너무도 매혹적이라 한 번 손에 얻으면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법이다. 계층의 상위에 자리하였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하위 계층에게 행사할 수 있는 강제력은 마치 신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빠져들게 만든다.

 

권력에 취한 기득권층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억압은 민중의 분노가 되어 쌓여가고 그것이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분출된다. 영화는 민중의 분노를 폭동으로 표출한다. 반란에 나선 민중의 위세는 마리안(나이안 곤잘레스 노르빈드)과 알란(다리오 야즈벡 베르날)의 결혼식 파티가 열리는 고급 저택을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 만큼 거세고 강렬하다. 그런데 시위에 나선 민중의 저항은 점차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퍼져나간다. 기득권을 무너뜨릴 목표로 나아갔던 시위의 행렬이 방향을 잃은 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수고 불태운다.

 

영화는 이러한 민중의 반란을 초록빛이 퍼져가는 광경에 빗대어 드러낸다. 초록색 물감으로 얼룩져 본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든 미술품과 초록빛 물이 흐르는 세면대를 바라보며 관객은 오묘함을 느낄 것이다. 영화가 사용하는 초록의 이미지는 데이빗 로워리 감독이 연출한 <그린 나이트>(2021) 속 초록의 이미지와 매우 유사하다. <그린 나이트>에서 초록은 탄생을 맞이하는 생명의 터전이자 자신과 주변을 타락시키는 부패이다. <뉴 오더>에서 초록은 새로운 체제를 세우기 위한 전환의 계기이자 그로 인해 소멸되는 일상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의 조반 장면을 관찰해보면 시위대가 광란을 벌인 자리는 어김없이 초록빛으로 물들어가고 곧이어 그 위를 붉은 피가 뒤덮는다.

 

붉은빛은 곧 희생과 연결된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마리안은 순백의 드레스가 아닌 새빨간 세미 정장을 입고 있다. 그녀의 의상을 통해 영화에서 희생의 제물로 삼고 있는 인물이 바로 마리안임을 짐작하게 된다. 반란을 종식시킨 군부 세력이 혼란의 시기에 벌인 납치와 이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마리안은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체적인 행동을 하지 한다. 영화는 서사의 중심에 있는 마리안에게 위기를 벗어날 기회와 각성의 순간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격동하는 상황에 휩쓸려버린 수동적인 인물의 대표로 마리안을 사용할 뿐이다. 그렇게 마리안은 영문도 모른 채 수모를 당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마리안의 비극을 초래한 시작점에는 마리안의 선의(善意)가 존재한다. 마리안은 롤란도(엘리지오 메렌데즈)의 아내를 병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결혼식이 진행하는 와중에 집을 나선다. 그리고 도로를 통제하는 군인들과 거리에서 시위대를 마주하면서 마리안의 인생은 파국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알란과 키스를 나누며 행복과 환희로 가득한 미소를 짓는 초반부의 마리안과 머리에 총을 맞고 차디찬 화장실 바닥에 쓰러진 후반부의 마리안은 너무도 극명히 대비된다. 영화는 마리안의 허무한 죽음을 통해 선의를 가진 개인의 인생이 집단의 충돌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을 조명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

 

생의 마지막 순간, 뒤돌아 바라본 세상의 다툼은 과연 어떤 매듭을 짓고 있을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우위를 차지하려는 우매한 집단의 충돌이 끝을 맺지 못할 것만 같은 확신에 가까운 두려움이 마리안의 죽음처럼 허망하게 밀려온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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