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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카우> 리뷰 : 잊혀져 가는, 잊혀진, 미국의 가치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11. 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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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카우>

잊혀져 가는, 잊혀진, 미국의 가치

 

호텔을 세우고 빵집을 운영하고 싶은 유대인 요리사 쿠키(존 마가로)와 자신의 농장을 만들기 원하는 중국인 킹 루(오리온 리)는 우연히 마주친다. 19세기 초 아메리카 대륙에 부푼 꿈을 안고 들어온 다양한 사람들 중에서도 비주류에 속하는 그들은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의 몸뚱이와 원대한 꿈을 이루려는 열망뿐이다. 이들은 소위 서부개척(필자가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는 표현이지만)시대에 미국 서부로 몰려들었던 수많은 이주자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이 꿈을 이루기 위해 벌이는 분투를 통해 법보다 주먹이 앞서던 야만의 시대, 대다수 사람들의 욕망이 부의 획득으로 향하던 탐욕의 시대를 살아낸 수많은 미국인들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는 흔히 이전의 서부극이 보여왔던 문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시대를 반추한다. 총을 들고 은행을 털거나 좀 더 많은 부를 차지하기 위해 타인을 약탈하는 폭력적 활극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다. 대신, 아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대자연의 원시적 아름다움과 숲속 공기의 질감까지 전달할 듯한 서정적인 묘사에 더 치중한다. 그리고 그 대자연으로 인해 모든 것이 풍부한 반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살아내는 짠내 가득한 삶의 모습을 온기 어린 시선으로 지켜본다. 이 잔잔한 영화는 오늘날 미국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온 것은 바로 이러한 품 넓은 대자연이 제공한 무한한 기회와 갖은 역경을 이겨내고 가능성에 도전하며 열정적인 삶을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에 있었음을 상기시키듯 다가온다.

 

두 주인공의 성정 역시 강렬한 몇 장면을 통해 간명하게 제시하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여러 사건을 서사함으로써 입체적인 캐릭터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쿠키는 거칠고 포악한 사냥꾼들 틈바구니에서도 자연을 닮은 듯 고요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뒤집혀 옴짝달싹 못 하는 도마뱀을 살려주고, 젖을 훔쳐 짜면서도 암소와 다정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교감하는 그의 모습은 거친 서부의 마초적 성향과는 가장 먼 쪽에 위치한다. 이에 반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고 여러 번 죽음의 위협을 넘어선 킹 루는 살아남는 일에는 도가 텄다. 그의 머릿속에는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온통 돈을 벌 궁리뿐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이 우연히 만나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시장의 셈법을 넘어서는 진한 우정을 쌓는다.

 

이들의 우정은 가장 위기의 순간에 더 빛을 발한다. 소젖을 훔친 것이 발각되어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둘은 일단 본능이 이끄는 각자의 방식으로 위험을 피한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 이어지는 다음 장면들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어차피 오가며 우연히 만난 아주 이질적인 두 사람이 더이상 인연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사건을 겪으면, 대개는 각자의 이익만 챙겨 남남으로 갈라설 것을 예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오히려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며 반갑게 재회하고, 함께 만들어낸 자산으로 새로운 출발도 함께하기로 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 중에서도 가장 셈이 빠른 미국에서, 그것도 야만과 탐욕으로 점철되었던 그 시대조차도 실은 돈보다 소중한 가치가 있었음을 상기하게 한다.

 

결국 영화는, 오늘날의 미국을 있게 한 것이 인종이나 출신을 뛰어넘는 우정과 연대에 있었으며, 그것으로부터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가 연방이라는 공동체로 하나 되어 막강한 힘을 발휘해왔다는 생각까지 이어지게 한다. 이로부터 애초에 없었던 것은 소뿐만이 아니라 백인도 마찬가지였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존중하고 연대하며 더 특별하고 독창적인 것들을 창조함으로써 번영해온 것이 바로 미국 사회를 이끌어온 가치가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른다.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에서 인용한 영화의 오프닝처럼, 우정이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보금자리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나란히 누워 고요한 최후를 맞이한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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