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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김종분> 리뷰 : 개인의 삶과 함께 흘러가는 역사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12. 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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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김종분>

개인의 삶과 함께 흘러가는 역사

 

한국의 길거리에는 수많은 노점이 있다. 그곳은 누군가에겐 생계의 터, 소통의 창구, 연대의 장이 되기도 하며 주체적인 노동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모습으로 거리 위 개인의 삶이 함께 살아 숨 쉰다. 그 수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할지라도 그곳 길 위에서, 도시의 거리에서 자신만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개인의 삶 속에는 한 나라의 과거와 현재가 함께 흘러가고 있다.

 

영화 <왕십리 김종분>은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인 김종분의 삶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김종분은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에서 노점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왕십리 행당시장 앞에서 그가 그토록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가 뭘까? 이 단순한 물음이 머리를 먼저 지배한다. 하지만 영화는 잠시 이 물음을 접어둔다. 영화는 절반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노점 상인으로 노동자의 삶을 살아온 김종분이라는 개인의 삶, 그 자체를 온전히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는 늘 가래떡을 굽고, 옥수수를 삶고 사람들과 어울린다. 돈이 생기면 또래 상인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사 먹으러 가기도 하고 그들과 함께 김치를 담그고 밥을 먹는다. 또래 노년의 여성들의 우정과 공동체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현재 김종분의 삶, 그 자체를 먼저 길고 차분히 조명해낸다.

 

영화가 초반에 이러한 선택을 한 것에는 어떠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종분이라는 사람을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로 조명하는 것이 아닌 김종분 그 자체로 바라본다. 남겨진 가족들을 통해 김귀정 열사를 되돌아보는 것이 아닌 주체가 김종분이라는 한 여인의 삶인 것이다. 이후 영화는 노점 상인인 김종분의 삶을 충분히 보여준 후 김귀정 열사의 궤도에 대해 짚어본다. 김귀정 열사와 함께 투쟁하고 연대하던 사람들의 인터뷰와 귀정을 기억하는 가족들의 인터뷰, 김종분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삶과 투쟁을 담는다. 19915월 노태우 정권 퇴진 시위 도중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압사한 김귀정 열사의 죽음은 정권에 대한 공분을 불렀다. 그와 동시에 한 사람에게 딸을 잃은 슬픔과 아픔을 남겼다.

 

하지만 영화는 이 비극을 개인의 슬픔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닌 김귀정의 죽음 이후 희생된 다른 열사들의 유가족과 연대하는 김종분의 모습, 딸의 추모제에 참석하는 김종분의 모습을 담아낸다. 슬픔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귀정의 어머니가 아닌 딸을 잃은 김종분이 어떻게 그 죽음과 연대하고, 민주화 열사의 유가족으로서 살아가는지를 담아낸다. 그 후 영화는 다시 오랜 세월 동안 한 자리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김종분의 현재 모습을 비춘다. 비로소 김종분이 지키고 있는 그 노점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흐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곳은 김귀정을 기억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맞아주기 위해 열리는 연대의 장이며, 수십 년 전 자신에게 돈을 빌린 이가 그를 찾아와 은혜를 갚는 자신의 역사가 흐르는 소통의 창구이며, 동료들과 함께하는 그의 삶의 터전이다.

 

-관객 리뷰단 안예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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