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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리뷰 : 서사가 아닌 형식의 언어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11. 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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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서사가 아닌 형식의 언어

 

엄마(김혜정, 노윤정)와 아들(신정웅)이 등장한다. 혼자 혹은 둘이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간다. 둘의 시간은 함께 흐르다가도 어디론가 돌아가 홀로 흐르기도 한다. 전화를 받고 건다. 함께 걷다가 멈춘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새 까무룩 잠이 든다. 잠이 들었다가 울리는 벨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기도 한다. 누군가는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이를 담담히 지켜본다. 또 누군가는 어떤 이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는 어떤 이에게 오래도록 눈길을 두며 곁을 맴돈다. 위와 비슷한 행위들은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반복되는 행위는 두 인물을 연결시키고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진득하게 담아낸다. 애틋하고 진득한 그 시선은 가장 가까이에서는 엄마 혜정을, 끝에는 가족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이는 감독이 그간 찍었던 단편 영화 3편을 3부 구성으로 엮어 만든 영화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에서 1, 2, 3부를 연결시키는 중요한 반복과 순환의 언어로 여겨진다.

 

다르지만 같은 단편 3편이 1, 2, 3부 그리고 캠코더 영상으로 구성되고 하나의 영화로 엮어지는 그 흐름에는 반복과 순환의 언어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인물들의 행위뿐 아니라 시간의 배열과 인물의 통일성이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는 것에서도 그 연결성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의 흐름대로 영화가 배치되었다면 영화는 비단 캠코더 영상 그리고 2, 1, 3부의 구성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순서를 섞음으로써 1, 3부에서는 감독의 실제 어머니가 등장하고 2부에서는 엄마 역을 맡은 노윤정 배우가 극 중 엄마로 등장한다. 시간의 배열과 인물의 통일성이 함께 섞이고 재배치되어 다시 함께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엄마 혜정이 등장하고, 엄마 윤정이 등장했다가 다시 엄마 혜정으로 돌아온다. 1군산행에서는 엄마가 항암치료를 받을 적의 사진이 나오고, 마지막 아버지가 찍었던 캠코더의 영상 속에서는 항암치료를 받던 시절의 엄마 혜정의 모습이 나온다. 영화의 끝과 시작이 가족의 초상으로 맞물려 있다. 이처럼 영화는 어머니의 얼굴과 시간의 배열을 통해 또 한 번의 반복과 순환의 언어를 가지게 된다.

 

또한 영화의 새로운 장르적 특성도 반복과 순환의 언어에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 영화의 장르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혼재되어있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3부작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다큐멘터리의 관찰과 포착처럼 끈질기게 엄마 혜정을 바라보고 가족이라는 틀에서 자신과 혜정을 포착해 나가는 것. 극영화의 재연성을 빌려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 속 반복적으로 순환되는 것을 재연하고 배열해내는 것. 이는 감독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간극을 지워내며, 두 장르를 오고 가며 자신만의 어법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자신만의 언어로 큰 사건이나 갈등 없이 영화의 진득한 시선과 화법만으로 충분히 관객을 설득시킨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는 관객이 단순히 서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영화의 형식을 통한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경험하게 한다. 기존 형식을 대수롭지 않게 재정렬 하고 그에 얽매이지 않는 지점이 영화적 자유로 다가오며, 이와 같이 자유롭게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영화의 존재가 큰 기쁨으로 느껴진다.

 

-관객 리뷰단 안예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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