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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색깔> 리뷰 : 우리는 어떻게 가족인가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11. 1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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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색깔>

우리는 어떻게 가족인가

 

결혼한 지 일여 년 만에 사별하게 된 남편. 주인공 아카리(아리무라 카스미)가 그의 아들 슌야(류세이 키야마)와 도쿄에서 남쪽 끝, 남편의 고향인 가고시마까지 갈 때 그 뒷모습은 몸집만 한 캐리어만큼이나 무거워 보인다. 남편 슈헤이(무네타카 아오키)의 새하얀 유골함을 시아버지 세츠오(쿠니무라 준)에게 건네주는 그의 담담한 얼굴에는 원망과 그리움, 망연자실함과 절박함이 섞여 있다. 이 어두운 감정들을 한 데 모아 그녀가 내뱉는 여기서 살게 해주세요라는 부탁은 가족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 우리가 흔히 떠올리게 되는 태어날 때부터혹은 자연스럽게'라는 단어들을 거스르고 잘 알지도 못하는 세 사람을 돌연 가족이라는 말로 묶어버린다.

 

이 느슨하지만 쉽게 풀리지도 못할 매듭을 동여매는 것은 열차라는 매개체로, 견고해지는 그들 각자의 가족에 대한 기억이다. 열차가 한 정거장, 또 한 정거장을 지나며 각자의 삶을 사는 타인들을 실어나르듯, 영화는 세 사람을 묶고 있는 슈헤이라는 거친 매듭을 그들이 사는 현실의 작은 틈새에 섞어놓는다. 열차광인 아들 슌야를 위해 기관사의 꿈을 꾸고 연수생 생활을 시작하는 아카리는 저녁으로 나온 카레를 보며 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고, 어렸을 적 슈헤이의 철도에 대한 애정이 잔뜩 담겨있는 방에서 슌야는 가만히 누워 아카리를 기다린다. 처음 만난 이 두 모자와 갑작스럽게 같이 살게 되며 밥을 지어 먹고, 야구 배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 속에서 세츠오 역시 슈헤이를 떠올린다.

 

이런 세 사람을 의심의 여지 없이 한 가족으로 엮는 장면이 있다. 부모님에게 쓴 편지를 모두의 앞에서 낭독해야 하는 슌야의 학교 행사. 영화는 슌야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보는 이로 하여금 초조하고 또 어딘가 화가 나는, 부조리함을 느끼게 만든다. 영화가 제시하는 핏줄이 아닌 추억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보여주는 하나의 길이 아닐까.

 

노을빛 어스름히 내려앉은 철교 위. 아카리를 찾아온 세츠오의 모습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세 가족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 자리 그대로. 오렌지와 짙은 초록. 따뜻한 색으로 이루어진 이 둘의 대화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때의 가족과 지금의 가족에는 다름이 없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마지막 장면. 기관사가 된 아카리가 운전하는 작은 열차에는 가족이라는 말의 뜻을 되새기게 하는 인물들이 차례대로 탄다. 이 열차가 출발하면 카메라는 바다부터 산속까지, 소소하지만 고즈넉한 일본의 풍경을 그 특유의 낭만적인 시각으로 담는다. 조금 다른 색이지만 그대로, 그들은 가족이 된다.

 

-관객 리뷰단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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