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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개월의 미래> 리뷰 : 태초의 혼돈 끝에서 너를 만나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10. 25.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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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개월의 미래>

태초의 혼돈 끝에서 너를 만나

 

<십개월의 미래>는 미래(최성은)라는 인물을 통해 정상가족을 권유하는 사회의 은근한 압박 속에서 자기(自己)로 살아가고자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제 몸 하나 건사하며 꿈을 이루는 삶을 위해 내달리는 미래는 임신이라는 사건에 휘말린다. 계획에 없던 생명의 존재로 인해 미래는 수많은 계획들을 변경해야 하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 선택해야만 한다. 게다가 미래가 봉착하는 난관은 임신 주수에 따라 더욱더 가혹해져만 간다. 미래가 감당해야 하는 문제들은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이 얼마나 무거운 과업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여성은 마땅히 임신은 기뻐해야 한다는 듯이 함부로 축하하고 장려하는 세상의 풍조가 새삼스레 씁쓸하게 다가온다.

 

막막한 현실 앞에 서는 미래이지만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 남자 친구 윤호(서영주)는 이렇다 할 대책도 없으면서 본인이 다 책임지겠다고만 말한다. 회사의 사장은 미래의 임신 사실을 알고 정직원이 되자마자 출산휴가를 쓸 거냐며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낸다. 미래에게 해답지가 되어줄 것만 같았던 강미(권아름)는 출산 후 육아의 고통으로 무너져 내리듯 미래의 앞에서 서글프게 울어버린다. 영화는 관객이 오롯이 미래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미래의 주위에서 의지할 만한 인물을 설정하지 않은 듯 보인다. 임신을 하고 벌어지는 난관을 마주할 때마다 미래는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선택해야 한다. 그 모든 순간을 홀로 감내하는 미래는 불안하고 갑갑하다. 극 초반부에 비춰진 일과 사랑을 대하는 데 있어 당당하고 호기롭던 미래와는 상충된 모습이다.

 

곤란하고 복잡한 현실의 문제 속에서 미래에게 최적화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고민을 끝내지 못하고 미래는 취집(취업+시집)의 굴레로 끌려 들어간다. 윤호의 부모는 가부장 사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윤호의 아버지 홍선(손성찬)은 아들에게 쓸데없는 시간 낭비는 관두고 가업인 양돈업이나 이으라 한다. 그리고 합의금을 빌미로 채식주의자인 윤호를 돼지 사육장에서 일을 시킨다. 윤호의 어머니 순자(김근영)는 폭력적인 남편과 이에 대항하려는 아들 사이에서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게다가 윤호의 부모는 미래에게 앞으로 '엄마''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할 것을 은근히 강요한다. 순자가 미래에게 앞치마를 선물하는 장면은 순자의 역할을 미래에게 전수하는 것만 같아 가히 충격적이다. 윤호의 부모는 윤호와 미래를 아들며느리로서만 대할 뿐, 그들의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미래가 태아에게 카오스(혼돈)’라고 부르는 행위에는 미래의 복잡하고 혼란한 심경이 내포되어 있다. 태아가 성장할수록 미래는 점차 뱃속의 생명과 교감을 하고 애정을 쌓는다. 그러면서 미래는 본래 지니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것만 같아 괴로워한다. 영화는 미래가 처한 상황을 캄캄한 도로 위를 운전하는 장면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영화 안에서 이와 같은 장면이 두 번 등장한다. 하나는 미래가 꿈에서 피골이 상접한 강미가 운전하는 것을 목격하는 장면이고, 나머지 하나는 윤호의 집에서 도망치듯 나오는 장면이다. 불빛 하나 없는 도로 위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허나, 미래의 인생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위태로운 미래의 운전은 전봇대에 충돌한 덕에 멈춘다.

 

충돌 사고 후 미래는 그녀의 부모에게 결혼을 관둘 것을 선언하다. 그리고 출산 준비를 한다. 출산 전에 미리 카시트를 설치하고, 출산 지원금 신청을 준비하는 미래는 이전과 별반 다를 것 없이 혼자이다. 그러나 출산을 위한 결혼에서 벗어난 것만으로 미래에게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혼돈(카오스)이 미래의 온몸을 부수고 나와 미래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지라도 미래는 그녀의 아이(카오스)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안녕, 카오스?...... 그래, 우리 한 번 시작해보자.” 

 

영화는 출산을 마친 미래(최성은)가 태어난 아이를 향해 위와 같이 말을 건네며 막을 내린다혼돈(카오스)의 끝에 우주(코스모스)가 탄생하듯, 인생을 헤집어놓은 임신과 출산을 겪어낸 미래에게서 이전에 보지 못한 강인함을 느낀다. 미래가 마지막에 보여 준 강함을 아이와 함께 만들어 갈 그녀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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