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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6411>리뷰 : 함께 비를 맞아주던 약자들의 진정한 동지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10. 25.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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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6411>

함께 비를 맞아주던 약자들의 진정한 동지

 

새벽 4, 일터로 나가기 위해 서울 6411번 노선 버스를 채우는 승객들처럼 세상으로부터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약자와 서민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보듬어주고자 노심초사했던, 정치인이자 노동 운동가이며 동시에 휴머니스트였던 노회찬. 그가 떠난 지 3년 만에 세상에 나온 이 영화는 노회찬이 평생에 걸쳐 이루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투쟁했는지 되돌아 본다. 더불어 개인으로서 노회찬의 삶은 어떠했는지 그를 곁에서 지켜봐 온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 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접하고 노동자와 함께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이후로, 노회찬은 힘없고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단순 위장 취업을 넘어 용접공으로서 진짜 노동자가 되는 길로 시작한 그의 긴 여정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진보정당을 세우며 대중 정치로 이어졌다. 다선 국회의원이 된 것은 이러한 활동에 부수적으로 주어진 자리로 여기며, 그 권력을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일에만 활용했다. 늘 눈과 귀는 약자를 향해 있었고 그를 찾는 어려운 사정이 있으면 언제, 어디든 달려가느라 본인도, 가정도 챙기지 않았다.

 

그를 겪어본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은 하나같이 증언한다. 어려운 사정을 얘기할 때 노회찬만큼 진심으로 들어주고 그것을 해결해주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사람을 못 봤다고. 그러니 그 궁핍한 사연을 말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들어주는 노회찬이 얼마나 고맙고 의지가 되었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모를 리 없는,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많은 일들이 원하는 만큼 잘 풀리지 않아 마음이 아팠을 노회찬 자신의 속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래서 스크린에 비치는 노회찬의 표정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오래된 불판을 갈듯 정치판을 갈자거나 법이 만인에 평등하지 않고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는 등, 수많은 어록을 통해 우리가 기억하는 정치인 노회찬은 촌철살인의 풍자와 유머 속에서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사이다 발언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발언이 그렇게 시원했던 이유는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어휘와 재치 있는 비유로 많은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대개의 정치인들이 허세 가득한 한자 성어나 영어를 읊으며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노회찬은 대중의 언어로 그들의 요구를 대변하여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높이고, 그것이 진보정치의 토대를 다질 수 있기를 바랐다.

 

노회찬의 삶에는 사실 성공과 승리보다는 실패와 패배의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좌절하지 않았으며 다시 일어섰다. 오로지 이 땅의 노동자와 고통받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 만큼 대우받으며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희망으로, 눈물과 한숨보다는 웃음과 농담으로 툭툭 털고 늘 다시 앞을 향했다. 그랬던 그가 정치자금법 위반의 소지가 있었던 몇천만 원 때문에 스스로 그 걸음을 멈췄다. 어떠한 어려움도 거뜬히 이겨내고 꿋꿋하게 버텨냈던 그가 너무도 갑자기 우리의 곁을 떠났다.

 

노회찬이 우리의 곁을 떠나고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그를 잃은 슬픔에 다시 젖어 들어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하지만, 노회찬이 바라는 것은 남은 사람들이 비탄에 빠져 아예 주저앉아버리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가 꿈꿨던 진보정치가 세상을 바꾸는, 그래서 땀 흘려 정직하게 일하는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대접받는 날이 오기를 바랐을 것이다. 노회찬의 죽음이 그저 비극적 사건으로만 머물지 않도록 진보정치의 꽃을 다시 피워내야 한다고 영화는 외치고 있다.

 

영화는 전략가 노회찬도 넘을 수 없었던 진보정치의 구조적 부조리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환희의 순간이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 것 같았던 바로 그 때, 고비를 넘지 못하고 좌절했던 진보정치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남은 자들의 몫임을 확인 할 수 있다. 그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진보정당이 그가 꿈꿨던 수권정당이 되어 세상에 비를 맞는 사람들 곁에서 함께 비를 맞으며, 든든한 우산을 씌워주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노회찬을 가장 잘 추모하는 것이며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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