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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리뷰 : 오롯이 자신을 향하는 힘찬 날갯짓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8. 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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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오롯이 자신을 향하는 힘찬 날갯짓

 

제목이 왜 <갈매기>일까 궁금했다. 감독의 얘기를 찾아봤다. 안톤 체홉의 희곡 <갈매기>에서 엄마를 보았다고 한다. ‘자유로운 두 날개를 가졌지만 육지 곁을 맴돌기만 하는, 멀리 날아갈 기세로 부지런히 날갯짓을 해대지만 결국 다시 그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엄마의 모습을 그렸다는 그의 말은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를 곰곰이 되새기게 한다. 여느 어머니가 그렇듯 오복(정애화)은 평생 가족을 우선으로 살았고 자신의 날개를 푸드덕거리다가도 어느새 육지부터 바라보는 삶에 만족했다. 그런 오복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가장 기쁜 순간에 닥친 사건은 아픔과 분노를 일으킨다. 그리고 가해자가 보이는 적반하장의 태도와 그가 평생을 헌신했던 가족들은 물론, 수십 년을 함께 했던 시장 동료들의 냉대와 배신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슬픔을 더한다. 동시에 어머니가 아닌 개인 오복으로서 불의와 싸워 이기길 바라는 응원의 마음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우선,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감독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와 사건의 본질에 대한 접근법이다. 기존의 숱한 영화들이 성폭력을 소재로 다루며 보여왔던 방식은 성폭력 장면을 보다 실감 나게 재현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듯 보였고, 정작 피해자의 고통은 제대로 담아내지도 못했다. 그런 면에서 임선애 감독의 영화 <69>에서 그러했듯이 오로지 피해자를 향하고 있는 이 영화의 시선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성폭력 생존자도 볼 수 있는 영화여야 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관객들에게 사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도록 한다. 대신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가 겪게 되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에 집중하여 그 고통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특히 피해자의 심리적 상처가 얼마나 큰 고통을 만들고 떨쳐내기 어려운 것인지를 실감 나게 체화하는 오복의 모습은 관객들이 자연스레 성폭력이 왜 반드시 처벌되어야 할 범죄인지 수긍하게 만든다.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좌절할 듯한 숱한 위기에도 스스로의 힘으로 분연히 일어나 종국에는 불의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오복의 당찬 모습이다. 특히 오복은 영화 <69>에서 효정(예수정)이 전단을 살포하며 그의 싸움을 시작하는 방식을 뛰어넘어, 자신이 당했던 피해를 스스로의 언어로 낱낱이 기록하여 세상에 까발리고 그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이 내리길 호소하는 피켓을 스스로 목에 건다. 자신을 무너뜨리는 일체의 부정과 맞서 결연히 날갯짓하며 날아오르는 그의 모습에서는 전율마저 느껴진다. 비록 가해자인 기택(김병춘)을 노려보는 오복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지만 결코 흐르지 않고, 앙다문 입술처럼 자신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때까지 오복은 기택과 직접적으로 맞서 싸우지 못하고 오히려 기택이 동료 상인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벌이는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하며 피해자로만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오복이 기택 앞에 맞선 순간, 비로소 기택을 징벌하는 집행관이 된다.

 

영화는 그 밖에 몇 가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들도 함께 끄집어낸다.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그로 인해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언어폭력을 매우 실감 나게 재현하는 장면들은, 혹시라도 관객 역시 그러한 일들에 가담하거나 방조하지 않았는가 반문하는 듯하다. 그에 더해 개인의 권리와 인권 보장을 주장하며 머리띠 두르고 권력에 맞서 함께 싸우며 서로 동지의 연까지도 맺었을, 그 동료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도 반성은커녕 오히려 자신이 갖고 있는 작은 권력을 악용하여 피해자를 궁지로 모는 파렴치함과, 동시에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그에 동조하는 공동체의 비인간적인 모습은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던지는 것 같다. 더불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성차별적 현상들에 대한 문제 제기도 무게감 있게 다루고 있다.

 

오복이라는 이름은 세상의 모든 복을 다 가졌을 법하지만 영화 속 그의 현실은 정반대다. 마음껏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해 늘 기죽어 살아왔고, 평생 헌신하는 삶을 살았음에도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그런 오복이 이제는 이 사람 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를 챙기는 힘찬 날갯짓을 하고 멀리 날아오르기를, 그리고 세상 모든 엄마들이 누구보다 존귀하며 존중받을 자격이 있음을 느끼며 종종 육지 따위는 잊고 자기만의 비행을 즐길 수 있기를 응원한다.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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