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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 리뷰 : 나의 존재를 누가 규정할 수 있는가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7. 3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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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

나의 존재를 누가 규정할 수 있는가

 

크리스티안 펫졸드는 인간의 운명을 아름답고도 처연하게 그려내는 감각이 뛰어난 감독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의 특별함을 부각하려는 듯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의 최근작들은 주로 한 명의 인간을 중심에 둔 서사로 표현된다. 극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한 사람을 연기하는 배우는 감독의 예술적 감각을 대변하는 뮤즈로 느껴지는데 이는 감독이 인간의 운명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트랜짓>(2018)에서 프란츠 로고스키를 통해 신분을 위조해 망명하려던 중 신비로운 여인과 사랑에 빠져버린 한 남자의 고뇌를 그리고, <운디네>(2020)에서 배우 폴라 베어를 통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수중(水中)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디네의 숙명을 그려낸 것처럼 <피닉스>에서는 니나 호스를 통해 자신의 존재적 의미를 찾아가는 넬리 렌츠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의 제목인 <피닉스>는 극이 전체적인 줄거리는 내포하고 있다. 피닉스(phoenix)의 사전적 의미 중에 ‘(파멸에서) 부활한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피닉스는 본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상상의 새를 지칭한다. 피닉스가 생명이 다할 무렵에는 향기가 나는 나뭇가지로 둥지를 틀고 거기에 불을 붙여 몸을 태우며 죽는데, 그러면 거기에서 새로운 불사조가 탄생한다. 이 때문에 피닉스라는 단어 속에는 불멸(不滅)이나 재생(再生)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가 그려내는 주인공 넬리(니나 호스)의 상황은 피닉스와 매우 닮아있다. 전쟁 중 폭격으로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넬리는 성형 수술을 받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된다. 수술을 회복한 넬리가 남편 조니(로날드 제르펠드)를 찾아 나서면서 영화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넬리가 남편 조니와 재회하는 장소는 음악클럽 피닉스이다. 클럽 맞은편 길 한 모퉁이에 선 넬리의 시점을 비춘 화면에는 알파벳 대문자로 새겨진 클럽의 간판이 나타난다. 진분홍색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PHOENIX(피닉스)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한다. 조니는 클럽 피닉스에서 요하네스라는 가명으로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조니를 알아보는 사람은 클럽 안에서 오직 넬리뿐이다. 하지만 조니는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오히려 넬리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넬리에게 넬리의 흉내를 낼 것을 제안한다. 넬리는 조니의 계략을 수락하고 조니가 기억하는 넬리가 되어가기 위해 염색과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수선한다. 자신이 넬리임을 밝히지 않고 조니의 장단에 맞춰가는 넬리의 모습은 답답하고 안쓰럽다.

 

거북함마저 느끼게 하는 넬리의 이러한 행동은 그녀가 벗어나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굴레로부터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넬리의 불안은 조니로 인해 아우슈비츠에 수용되고 고통받았던 그녀의 과거를 외면하게 만든다. 그러나 진실은 가라앉지 않는다. 레네(니나 쿤젠도르프)의 자살은 조지의 실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넬리는 자신을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긴 레네가 떠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과 자신의 현실을 직시한다. 호텔 화장실에서 조니가 독일 당국에 제출한 이혼신청서를 읽는 넬리에게서 불안 대신 결연함이 풍긴다. 넬리의 결의는 영화의 가장 절정인 장면에서 꽃을 피운다. 지인들과 재회의 자리에서 넬리는 조니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Speak low when you speak, love

(나지막이 얘기해, 그대가 사랑을 말할 때)

Our summer day withers away too soon, too soon

(우리의 여름날은 시들어가 너무 빠르게, 너무 빠르게)

...

We’re late, darling, we’re late

(우린 늦었어, 그대여, 우리는 늦었어)

...

 

넬리가 부르는 노래 Speak Low는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재즈 선율로 연주되고, 넬리와 레네의 식사 장면에서 축음기를 통해 울려 퍼진다. 영화의 전반에 흐르던 음악은 넬리가 조니에게 전할 마지막 인사가 되어 극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점차 넬리의 진짜 정체를 알아차리는 조니의 표정 변화는 압권이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조니 앞에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넬리의 음성은 홀로서기를 결심한 그녀의 의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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