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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아이다> 리뷰 : 남겨진 얼굴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8. 1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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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아이다>

남겨진 얼굴들

 

희망이 꺼져가는 얼굴, 두려움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는 이들의 얼굴, 전쟁이 끝나고 남겨진 사람들의 얼굴, 뒤바뀐 이웃의 얼굴, 눌러 담은 아이들의 얼굴이 강렬한 인상이 되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는 보스니아 내전(1992~1995) 중에 일어난 역사적 참극인 스레브레니차 집단 학살 사건을 예리하게 담아내고 있다. 영화를 함께 본 친구는 정부와 세계가 외면했던 참극에 분노했고 중국의 티베트, 위구르인 대학살을 떠올렸다. 비극의 역사는 비슷한 얼굴을 가지고 반복된다는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 몰랐던, 불과 지금으로부터 30년도 안 된 또 하나의 비극을 낯설지 않은 얼굴로 바라봤다.

 

보스니아 내전 말기인 1995, 아이다(야스나 두리치치)는 스레브레니차라는 작은 마을에 주둔한 유엔(UN)평화유지군의 통역사로 일한다. 하지만 세르비아 군대는 유엔이 안전지대로 선포한 스레브레니차 마을에 폭격을 가하고 점령한다. 이에 아이다의 가족과 수천 명의 보스니아 주민들은 살기 위해 유엔 기지로 몰려간다. 보급마저 끊긴 지 오래인 그곳은 곧 난민 보호소가 된다. 살기 위해 밀려드는 사람들과 그마저도 한정된 공간 탓에 수용되지 못해 밖에 남겨진 많은 주민들 속 아이다는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분투한다.

 

더는 아무런 지원과 보급도 없고, 세르비아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스레브레니차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유엔과 국제사회의 작전은 실패했고, 네덜란드 평화유지군은 무력하다. 다들 자신들의 상황과 이득만이 중요할 뿐 아무도 버려진 이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스레브레니차 주민이자 유엔에 소속된 아이다의 복잡한 내면 감정을 통해 우리는 주민들의 절박함과 공포를, 방관자의 무기력함을, 그곳에서의 얕은 권력을 마주할 수 있다.

 

여기서 아이다는 유엔군의 통역사이면서 보스니아 주민이자 민간인, 가족을 지켜내야 하는 사람, 유엔으로부터 보호받는 중간지대에 놓인 사람, 참극의 피해자, 살아남은 생존자이다. 그의 시선은 다양한 이들의 얼굴을 담아낸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의 참극과 이웃들의 얼굴을 통해 현재의 미래와 과거의 이면을 세세하고 날카롭게 고발한다. 아이다의 시선과 이동을 통해 역사적 참극을 그려내는 감독의 역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취향을 넘어선 가치 있는 영화가 영화로서, 하나의 기록물로서 모두 빠짐없이 그 기량을 충족시켜낸다.

 

현재 스레브레니차는 세르비아계가 통치하는 지역이 되면서 여전히 당시의 대량 학살을 부정하는 우파 정치인들이 집권하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출신인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은 보스니아 전쟁을 기록한 데뷔작 <그르바비차>(2005)와 마찬가지로 척박한 상황 속 다시 한번 잊지 말아야 할 전쟁의 고통과 비극을 아이다를 통해 그려냈다. 아직까지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많은 이들이 실종된 채로 남아있고, 규명되지 않은 진실들과 비극의 역사는 여전히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또다시 그 비극의 역사를 반복해선 안 될 것이다.

 

-관객리뷰단 안예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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