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청춘 선거> 리뷰 : 과거에서 불어온 녹색 바람을 타고 심어진 씨앗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6. 16. 17:20

본문

<청춘 선거>

과거에서 불어온 녹색 바람을 타고 심어진 씨앗

 

앳된 얼굴, 똑 부러진 언변, 결단에 찬 눈빛으로 떨리는 숨을 차분히 고르며 여기 당차게 선거에 출마한 역대 최연소 도지사 후보인 여성 청년 정치인이 있다. <청춘 선거>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3위에 드는 기념을 만들어낸 녹색당과 고은영 후보의 선거 레이스를 담아낸 다큐멘터리이다. 처음 <청춘 선거>라는 영화 제목을 보았을 때 또 그놈의 청춘 타령인가 하는 생각에 그다지 영화에 눈길이 가지 않았다. 쉬이 청춘이라는 명목을 이용하여 양극을 달리며 감성팔이를 하는 서사 방식에는 이미 지겹도록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청춘 선거>는 달랐다. 어떠한 서사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지 않고 당원들과 고 후보를 따라다니며 치열한 선거 과정 속 그들의 과정과 열기를 관찰했다. 나아가 외부인을 배척하는 제주의 괸당(친인척) 문화와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선거라는 싸움 속 직면할 수밖에 없는 내부의 논쟁과 갈등, 내밀한 부분까지 모두 지워내지 않고 담아냈다.

 

선거 초반부, 젊은 나이에 정치 경험 하나 없는 서울에서 온 30대 여성 고은영은 제주에서 이주민으로서 학연, 지연, 혈연 하나 없이 사회적 편견을 마주한다. 특히 제주에는 괸당이 정당보다 세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혈연과 지연으로 뭉친 견고한 괸당 문화가 있다. 반면 제주 출신인 비례대표 1번 오수경 후보는 소수 진보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이 견고한 괸당 문화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고 후보 또한 적극적으로 유권자들을 만나고 점차 그들을 자신의 괸당으로 만들어낸다. 치열한 선거 운동 속에서 불평등한 괸당을 이용하는 이들의 양가적인 모습은 불편하지만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렇게 제주에 부는 녹색 바람은 녹색당 고은영이라는 인물을 각인시켜 나간다.

 

선거 중반부부터 고 후보는 선거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이미지를 깨며 점차 선거판에서 능숙한 플레이를 펼치는 플레이어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TV 토론회에서 거대 기성정당과 강력한 후보들 사이에서도 기존 세대에서 볼 수 없었던 유려한 토론의 기술을 구사하며 제2공항 건설, 제주도 중산간 난개발 문제, 강정 제주해군기지 문제 등에 명확한 소신을 보여주며 자신의 정책을 알렸다. 이는 유권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냈고 고 후보가 플레이어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었던 건 당원들의 도움과 무엇보다도 윤경미 사무장의 든든한 조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20대부터 진보정당에 청춘을 보내고 많은 실패를 겪었던 윤 사무장은 새로운 도전을 하는 젊은 고은영을 뒤에서 든든히 보좌하며 앞세운다. 젊은 여성과 중년 여성이 함께 치르는 이 치열한 선거 레이스 속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를 강하게 느꼈다.

 

선거가 좋은 흐름을 타고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되려 내부에서는 곪아 있던 갈등이 터진다. 비례대표 2번 트랜스젠더 김기홍은 당원들과 갈등한다. 그는 당내 그의 상징성과 팀이 승리하기 위한 선거 전략의 차이 때문에 충돌한다. 그가 만들어낸 갈등은 불편하고 까다롭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이며 지워지지 않아야 하는 목소리이다. 영화는 그의 목소리와 시선을 담아내고 우리를 고민하게 만든다. 숨 가쁘게 달려나가는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짜고 확률이 더 높은 경우의 수를 선택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누군가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괴물처럼 보였다는 걸 은연중에 알아차려도 사실 쉽게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목소리는 뒤로 밀려나고 점차 흐려진다. 기홍이 만들어내는 불편함은 목소리에 무게가 달리는 것은 무엇보다 견제해야 하는 일임을 다시 한번 깊게 상기시킨다.

 

모두의 목표가 같은지 모르겠지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였다. 집단의 열정을 불태우며 현재를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 시간 반 남짓 하는 시간 동안 엄청난 몰입감과 감정의 파도 그리고 에너지를 전한다. 혹은 이미 철 지난 선거 이야기로 여길 수도 있지만, 이 철 지난 과거에서 불어온 바람은 마음에 씨앗 하나를 심어 놓기 충분했다. 그들처럼 우리도 서로를 좋아했다가 미워했다가, 좋아했다가 서운했다가도 더 좋아하면서 삶을 살아내자는 것이다. 함께 뜨겁게 불이 붙었던 순간은 쉽게 타올랐다가 사라져도 그 자리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테니.

 

-관객 리뷰단 안예솔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