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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발> 리뷰 :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차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6. 2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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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발>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차별

 

옛날, 어느 마을에 루시라는 마녀가 살고 있었다. 못된 마녀 루시는 문득 자신이 사랑을 겪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윽고 루시는 사랑하는 상대의 아이를 갖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못된 마녀 루시에게서 천사 엠마가 태어난 것이다. 루시는 아이를 무시무시한 괴물로 키우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권우정 감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까치발>(2019)은 리오넬 르 네우아닉의 그림동화 엄마가 된 마녀 루시속 이야기와 함께한다. 과연 이 동화와 까치발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감독은 아이의 장애와 마주하게 된 엄마의 시선을 통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는 일이다. 권우정 감독은 아버지와 떨어져 성장했다. 양육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고, 아버지 없이 자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싫어 성장기 내내 늘 반듯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랬던 그녀가 어른이 되어 계획에도 없는 배낭여행을 떠나고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하게 된다. 집안의 반대 속에서 태어난 딸 지후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숙하게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생전에도 없던 종교까지 만들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큰 고난을 안겨 줄 것이라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지후는 여느 여섯 살 아이들처럼 웃음이 많고, 흥이 많은 아이이다. 다만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혼자서는 철봉 공중제비를 돌 수 없다는 것과 걷는 것이 조금 특별하다는 것이다. 엄마는 까치발로 춤추듯 걷는 딸아이의 이 걸음걸이가 예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눈에 띌 때마다 까치발을 지적하며 고치려 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지적에도 아이의 까치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큰 충격을 받는다. 검진 결과 아이가 뇌성마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많은 수의 부모들이 갑작스레 닥쳐온 아이의 장애를 부정한다. 여태껏 많은 징후가 함께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부정 이후에는 자책한다. 아이의 장애 원인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생각하며 괴로운 시간을 보낸다. 감독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부모들과 만남을 시작한다. 내가 콜라를 많이 마셨기 때문에, 내가 임신 9개월까지 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그래서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 아이가 아픈 것은 아닐까? 엄마들은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별의별 시설을 찾아가 보지만,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좌절감만 더해갈 뿐이었다. 지친 엄마는 넌 왜 이렇게 쉬운 산수도 못 하고, 한글도 못 써서 나를 힘들게 하는 거냐며 괜스레 아이를 윽박지른다. 혹시 내가 발을 콱 밟으면 아이가 서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해본다.

 

우울과 부정에는 반드시 싸움과 갈등도 동반한다. 딸아이의 양육방식을 두고 감독은 남편과 크게 다투게 되는데, 다투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아이의 표정이 밝지 않다. 그토록 밝았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웃지 않는다. 감독은 자신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새로운 길을 찾을 수만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다시 한번 주변을 살펴본다. 감독은 엄마를 찾아가, 항상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날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는다.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요즘 웃음을 잃은 까닭을 묻는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서라고 답한다.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딸아이의 이야기가 비로소 들리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듣고 싶어 했던 말은 거창한 칭찬이 아니었다.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였다. “하지 마. 안돼”, “다 네가 잘되기를 바라서 그러는 거야.”라는 말은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행하는 시린 차별이었고, 사랑이라는 단어 뒤에 가려져 가슴을 찌르는 가시였다. 감독과 딸 지후의 이야기는 동화 속 마녀 루시와 천사 엠마의 이야기와 닮아있다. 감독은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의 노고에 따른 보상심리로 아이에게 부모 뜻대로 살아갈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비로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장애와 비장애인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애인과의 이야기. 배우자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지후가 웃음을 되찾았다. 혼자서는 못하던 철봉 공중제비도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할 줄 안다. 엄마와 함께 아이도 함께 성장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낭독되는 동화 구절이 마음에 진하게 남는다 별별 일을 겪고 난 후, 루시와 엠마는 마법사의 나라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루시와 엠마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답니다. 마치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처럼.”

 

-이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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