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정말 먼 곳> 리뷰 : 절벽 끝으로 내몰릴지라도 사랑을 놓을 순 없었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3. 25. 14:49

본문

<정말 먼 곳>

절벽 끝으로 내몰릴지라도 사랑을 놓을 순 없었다

 

영화 <정말 먼 곳>은 진우(강길우)의 조용하던 일상이 뜻밖의 사건으로 요동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의 시작에서 진우는 양들이 유유자적 거닐고 있는 사이에서 양의 털을 깎고 있다. 진우의 주위에서 딸 솔(김시하)은 양들과 함께 뛰어놀고 있다. 다음 장면에서 진우와 솔은 중만(기주봉)의 집에서 중만의 식구들과 둘러앉아 식사를 한다. (실상은 그러하지 않지만) 화면에 비춘 그들의 모습만 본다면 진우는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내와 딸과 함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평범함에서 비롯된 진우의 평화로운 일상은 극이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진우의 비밀과 그에게 닥쳐오는 변화를 더욱 충격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진우의 일상은 현민(홍경)의 등장을 기점으로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은영(이상희)의 방문으로 인해 진우가 일궈온 안식처는 일그러진다. 진우의 평화로운 나날에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은 은영이다. 그러나 그 시작에는 현민이 있다. 현민이 은영에게 진우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기에 은영이 진우를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진우가 서울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화천으로 이전한 까닭은 추정컨대 현민과의 관계가 주변에 발각되었음에 있을지도 모른다. 진우의 삶이 흔들리게 되는 원인의 중심에 현민이 있는 것이다. 현민의 존재가 진우를 흔드는 이유는 오직 단 하나, 현민과 진우가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민과 진우의 사랑을 포옹으로 표현한다. 현민이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버스에서 내린 현민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진우를 깊숙이 끌어 앉는다. 포옹만으로도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을 가늠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리고 영화는 현민이 진우를 뒤에서 껴안는 장면을 통해 진우를 향한 현민의 사랑을 표현한다. 명순(최금순)의 장례식에서 은영의 폭로로 사람들에게 진우와 현민의 관계가 알려진다. 장례식장을 뛰쳐나간 진우는 가로등 아래서 서럽게 삼킨 울음을 뱉는다. 현민은 그런 진우의 뒤에 다가가 말없이 끌어안는다. 이 장면에서 현민의 포옹은 세간의 차별로부터 진우를 지키려는 방패막이처럼 느껴진다.

 

극이 진행될수록 진우보다는 진우의 곁에 서 있는 현민에게 관심이 쏠린다. 현민이 세상에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는 방법이 너무 아름답고도 세련되었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시를 가르치는 현민은 수강생들에게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작업을 제안한다. 우리가 지닌 편견을 인식하고 이를 타파해보자는 시 수업은 그가 세상을 말하고자 하는 전부이다. 그러나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장례식 장면 이후 열 명 남짓이던 현민의 수강생은 단 두 사람만이 남아 있다. 아직 남아 있는 두 사람 앞에 두고 현민은 성당에서 시 가장 먼 곳을 낭송한다. 현민의 내레이션 위로 흘러가는 가을의 정취를 담은 자연경관은 아름답고도 쓸쓸한 기운을 내뿜는다.

 

진우와 현민이 그들의 사랑을 지켜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먼 곳은 정말 먼 곳이 아니었다. 트럭 안에서 현민을 향해 독한 원망의 말들을 내뱉은 진우가 운전대를 박차고 현민은 트럭에 덩그러니 남겨진다. 그리고 현민은 진우를 떠난다. ‘정말 먼 곳만을 바라보다 정말 가까운 곳이 무너져 내렸다는 현민이 낭송한 시 구절처럼 진우와 현민은 또다시 세간의 편견으로 인해 상처를 입는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놓지 못할 것이다. 영화는 진우가 현민을 찾기 위해 목장을 떠났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가득 진우의 표정은 그가 다시 현민과 함께 가장 먼 곳을 찾아 나설 것임을 기대하게 만든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