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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의 아내> 리뷰: 미친 나라에서 미친 사람으로 산다는 것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4. 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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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의 아내>

미친 나라에서 미친 사람으로 산다는 것

 

그래서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로맨스이면서 역사물이며 서스펜스와 거듭되는 반전이 있는 이 독특한 영화는 도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가? 시작부터 군인들에게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는 영국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껏 긴장감을 불어넣기에 일단 제목 값을 하겠구나단단히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제목 자체가 스파이의 아내라는 것을 간과했다. 스파이 당사자가 아닌 그의 아내의 시각에서 전개되는 영화이기에 중심 사건을 제삼자적 시선으로 바라보듯 이야기가 전개된다. 스파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숨을 건 추격 신이나 피가 낭자하는 격투 신도 없다. 게다가 복잡하게 얽힌 치정극의 냄새도 풍기고 일본제국 시대에 자행된 범죄행위에 대한 자기 고발이라는 무거운 소재들이 뒤섞인다. 자칫 이야기가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어쩌면 느슨하고 지루하게 흘러갈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영화는 의외로 이야기 구조가 복잡하지도 않고 쉽게 다가오면서도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엎치락뒤치락하는 반전의 기술은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관객의 몰입감을 높인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가 손수 제작한 영화는 단순한 액자 구조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계속되는 반전의 주요 매개물이 된다. 이 액자 영화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의 초반에는 사토코(아오이 유우)가 유사쿠를 배신하고 둘의 관계가 종국에는 파경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함정일 뿐, 오히려 사토코가 재기발랄한 능력을 발휘하여 유사쿠의 일을 돕는 것으로 반전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것으로 모든 반전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 액자 영화는 731부대의 비밀을 담는 역할도 하고 마지막에는 사토코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내는 결정적인 반전의 주역이 된다. 짧은 흑백 영화 필름 하나로 관객을 거듭 속이며 끝까지 예측 불허의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에 더해 유사쿠와 사토코 부부의 애틋한 사랑도 적절하게 곁들여지며 로맨스 드라마의 매력까지 풍긴다.

 

화자를 스파이의 아내로 설정한 부분은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싶었다"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고려한다면 좀 더 납득이 된다. 선과 악의 당사자인 유사쿠나 군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옳고 그름의 대결 자체에 매몰되어 감독이 던지고 싶었던 물음과 메시지가 관객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을 수 있다. 하지만, 첨예한 두 입장 사이에 낀 사토코의 시각을 통해 영화를 전개함으로써 보다 중간적인 입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것은 당시 국가로 인해 본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전쟁에 휩쓸렸던 대다수 일본 국민들의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하기도 한다. 국가권력의 잘잘못과 국민으로서의 처신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에서 벗어나, 분명히 존재했으나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개개인의 자유와 행복의 실체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하기에 적절한 화자의 선정인 것이다.

 

자유와 행복에 대한 물음은 부부의 대화에서 보다 구체화 된다. 731부대의 만행과 관련한 비밀을 국제사회에 폭로하고자 계획하는 유사쿠가 난 코스모폴리탄(세계시민)이오라며 만국 공통의 정의를 말하자, 사토코는 주변 사람마저 희생시키는 정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맞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대결 구도는 영화 초반 유사쿠가 보여줬던 군국주의적 집단에 우선한 개인의 자유 추구에 대한 신념과 정반대로 바뀌어 나타난 것이며, 이번엔 사토코가 전쟁보다는 남편과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 최대 관심사라는 태도를 보인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가, 그리고 개인의 희생을 수반하는 정의 실현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 관객에게 반복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사토코의 말처럼 미친 나라에서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최소한 정의라도 지켜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로 인해 내 삶이 부서질지라도 말이다. 부정한 세상에 눈 감고 귀 닫고 산다면, 과연 나와 내 가족이 누리는 자유와 행복이 실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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