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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리뷰 : 무국적이거나 전 세계적이거나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3. 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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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무국적이거나 전 세계적이거나

 

<미나리>는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이 아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의 후보가 되어서 논란이 일었다. 규정에 따르면 영어 대사가 전체의 50% 이상이 되어야 최우수 작품상 후보의 자격이 된다고 한다. 보통 미국 자본으로 미국 감독이 만든 영화는 작품상 후보가 됐지만, 규정대로라면 딱히 논란이 일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전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경우, 영어 대사가 30%가 되지 않는데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것이 문제가 함께 언급됐다. 어느 한쪽이 차별을 받았거나 어느 한쪽이 특혜를 입은 것 같다. 똑같이 미국 자본으로 미국 감독이 영어 외의 언어가 반 이상 차지하는 영화를 찍었는데, 시상 부문이 달라졌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이 영화가 도저히 미국 영화라고 봐줄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일까. 개봉 전부터 이 영화가 얼마나 한국적이거나 미국적일지에 관심이 쏠려버렸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영화가 매우 미국적으로 느껴졌다. 아니, 애초에 미국이 아니면 작동하지 않을 것 같은 영화로까지 느껴졌다.

 

감독은 영화 내에 한국 가정의 정서를 디테일하게 쌓아간다. 집안에서 가족들은 한국말을 사용하고, 아직 바닥에 누워서 자는 습관이 남아있으며, 아빠 엄마는 회초리로 자녀를 훈계하고 아이들은 할머니에게서 고스톱을 배운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거 형태 중의 하나인 바퀴 달린 트레일러에서 펼쳐지는 이 한국적인 일들이 펼쳐지지만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한 가족의 이야기로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미국 땅에서 뿌리 내리는 한국적인 무엇은 미국 땅에 한국 품종의 농작물들을 키워내려는 제이콥(스티븐 연)의 행위를 통해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갖은 노력으로 미국 땅에도 한국에서 먹는 것과 같은 무와 가지가 자란다. 대단한 돌봄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순자(윤여정)의 미나리 심기도 대략 비슷한 양상으로 느껴진다. 충분히 미국 땅에서 삶을 개척해나가는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그런데 한국인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로 느끼게 하는 것들은 역설적으로 무국적 감각 혹은 전 세계적 감각에 호소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민자들이 고향의 언어를 사용하고 고향의 습관이 남아있는 것, 한 가정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회초리를 하더라도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려 하는 것(체벌이 최후의 수단으로 할만한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70~80년대 한국인 가정에서는 자연스러운 훈계 방법이었을 것이다), 오직 할머니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랑을 전하는 것. 이것들은 거의 전 세계 만국 공통으로 벌어지는 보편적인 감각 같다. 언어와 습관은 달라도, 회초리를 들지 않고 엉덩이를 때리더라도, 고스톱이 아니라 마작을 가르치더라도 이것들을 통해 느끼는 감각은 아주 비슷했을 것이다. 국적이 상관없는 가족 단위의 감각이어서 한국인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의 사람이라도 아주 유사하거나 같이 느낄 수 있는 구성이다. 가족 영화라면 기본적으로 무국적, 전 세계적 감각에 기반한다 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는 그 자체를 다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미국땅을 개척 중인 한국인 이민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영화가 태어난 땅에서 성공하려는 가장과 그 가족의 이야기였거나, 프랑스나 베트남으로 이민 간 가족의 이야기였다면 이런 감각을 중심으로 둘 수 없을 것 같다.

 

70~80년대에 한국인만 한해에 3만 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수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어딘가 정말로 있었을 것 같은 이 아칸소주 한국인들의 개척 서사는 자연스럽게 미국 땅 어디엔가 중국인들의 개척 서사나 네덜란드인들의 개척 서사가 있을 것을 필연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아마 중국인이나 네덜란드인도 아칸소주의 한국인과 같이 척박한 환경에도 서로를 구하면서 사랑으로 버텼을 것을 떠올리게 한다. 현실에서는 서로를 구하기는커녕 그저 버티는 것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염원이 개천에 자라는 미나리를 통해 영화 안에서 발현된다. 스크린 위 한국인 이민자 가족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미국 서사의 원형과도 같은 이민과 개척, 아메리칸 드림 위에서 펼쳐지는 국경이 없거나 모든 국경이 포함되는 미국의 모습이다. 고향을 뒤로하고 온 수많은 이민자의 개척사로 세워진 정체성을 느낀다. 무국적이거나 전 세계적 감각이 미국적인 것이라면, 거기에는 가족이 필수다.

 

추신_보편적인 감각을 어느 나라에서나 다양한 수단으로 변용한 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이 한국가족 이야기가 별 게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영화에서 어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문화와 정서를 잘 전달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일이다. 영화는 한국적인 정서와 감각을 따뜻하게 잘 그려냈다. 게다가 그것을 표현하는 인물을 문화의 대표자처럼 눙치지 않고 딜레마에 빠진 인간들로 완성했다. 가족 문제 안에서 부부 관계, 부모 자식 관계, 모녀 관계에 대한 세심한 시선들이 느껴져 좋았다. 영화 속에서 보편성과 개별성이 두루 주요하게 다루어졌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송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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