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중경삼림> 리뷰 : 만 년이 지나도 어디에서든 볼 수 있길…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3. 18. 20:00

본문

<중경삼림>

만 년이 지나도 어디에서든 볼 수 있길

 

시작부터 눈을 사로잡는 스텝 프린팅 기법의 추격 신은 마치 이것이 왕가위의 영화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스텝 프린팅 기법을 왕가위 감독이 처음 도입한 것은 아니지만, 그 활용을 영화에 본격적으로 해낸 것은 그이기에 마치 왕가위 영화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진다. 특히, 핸드헬드 기법이나 슬로우 모션과 버무려진 스텝 프린팅 기법은 시간의 흐름에 변곡점을 만들고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는데 있어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최근 차례로 리마스터링하여 개봉한 <화양연화>, <해피 투게더>와 함께 <중경삼림>은 왕가위 감독의 이러한 다양한 시도로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보아도 여전히 특별한 느낌을 준다. 빛과 색을 적절히 활용하는 미적 표현에 잘 입혀진 음악의 옷까지, 그의 영화는 지금 보아도 신선한 매력을 잃지 않는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앞에 언급된 기법들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색과 이미지만 남고 줄거리는 없는 지루한 영화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논란은 있을 수 있되 그 논란이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는 논리로 보는 것이 아닌 그만의 미장센과 음악으로 그냥 느끼는영화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특히 시대와는 무관하게 젊은 세대가 빠져들 수 있는 강한 매력이 있다. 전혀 꾸미지 않은 것같은, 그래서 다소 결핍이 느껴지는 현실 공간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스크린의 미학과 부유하지 않고 잘 스며드는 음악은 젊은 감성을 사로잡는다. 영화의 두 번째 에피소드를 시작하는 The Mamas & The Papas의 노래 ‘California Dreamin’’와 경찰 663(양조위)의 등장 신은 자동반사적으로 상체를 세우게 만들고 몇 번이고 돌려 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연관성도 없는 음악과 장면이지만, 짧은 전주 후에 바로 들어오는 가사와 더불어 제복을 입고 걸어오는 젊은 경찰, 그리고 그의 우수 어린 눈빛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뿜어내며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이러한 배우의 압도적인 매력은 <해피 투게더><화양연화>에서 장국영과 양조위, 장만옥에 의해 더욱 빛난다. 왠지 깨질 것만 같은 위태로움을 가진 장국영과 언제나 무기력한 외로움을 보여주는 양조위, 그리고 절제된 표현으로 관객을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장만옥의 연기는 <중경삼림>이 보여주는 미학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진 것이라고는 젊다는 것 하나. 그 외에는 현재의 삶이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든 모든 것이 불확실한 젊은이들에게, 흔들리는 시선 속에 보이는 그 빛의 아름다움과 젊음의 심리를 대변하는 듯한,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늘 따라붙는 듯한 막연한 불안과 외로움을 그의 영화만큼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첫 에피소드의 경찰 223(금성무)는 범인을 좀처럼 잡지 못하고 연인의 마음도 잡지 못한다. 헤어진 날부터 그녀가 좋아하던 파인애플 캔을 사 모으며 자신의 생일까지 한 달을 기다리기로 한다. 경찰 663 역시 떠나간 연인의 남은 흔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녀가 남긴 이별 통보로 보이는 편지의 확인도 유보한다. 두 젊음 모두 이미 지나버려 손을 쓸 수 없는 과거와 단절하지 못하고 현재에 가까이 있는 인연에는 쉽사리 다가서지 못해, 미래는 더 불투명한 많은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이름도 제대로 명명되지 않은 채(물론 경찰 223은 하지무라고 이름이 나오기는 한다) 모든 게 불완전한 그들의 모습은 영화가 만들어진 지 27년이 흐른 지금이나, 어쩌면 50년이 지나도 비슷한 인생의 터널을 통과하는 청춘들에게 영원히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는 만년으로 적겠다는 경찰 223, “아무데나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가겠다는 경찰 663의 오글거리는 대사처럼 아름답고 풋풋한 젊음이 가득한 이 영화가 유효기간 없이 관객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스크린에 걸리기를 기대해본다. 젊고 잘생긴 금성무와 양조위의 얼굴에 감탄하며, 페이(왕페이)가 그랬던 것처럼 어깨를 들썩거리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California Dreamin’’을 흥얼거리고 싶다.

 

-관객 리뷰단 이호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