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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하드> 리뷰 : 음악의 신이 강림한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3. 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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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하드>

음악의 신이 강림한다

 

 낮이나 밤이나 홍대 클럽가를 전전하며 늦가을에서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늘 공연을 하고 싶은 이 사람들은 항상 공연이 잡혀있거나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공연을 할 수 있는 그런 뮤지션은 아니다. 아직은 라이브 클럽에서 오디션을 봐야 하고, 짧은 오디션 시간 동안 자신들의 멋진 무엇을 보여주어야만 공연을 할 수 한다. 하지만 멋진 무엇을 보여주었다고 모두가 공연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어서 오디션을 연 클럽 사장님의 귀를 사로잡아야만 한다. 좋은 곡만 있어서 될 것도 아니고, 탄탄한 연주 실력도 필요하다. 머저리클럽의 철(이재호)과 섭(갈치)은 공연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곡은 있지만 연습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고 있는 리더 임재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둘은 공연에 대한 마음만 굴뚝같다. 덕규(크리스 라이언) 역시 블루스 공연이 간절하지만, 돈이 되는 것은 랩 피처링이다. 이들의 꿈과 현실은 괴리가 있지만, 영화는 이 젊은이들의 초상을 비극적이지도 않고 겉멋으로 포장하지 않은 채 보여준다. 흑백의 화면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그렇게 만들어간다.

 

색깔이 빠진 흑백화면은 한적한 대낮의 홍대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 젊은이들의 매커니즘을 중립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들의 삶을 이런 식이나 저런 식으로 보여주는 데는 큰 관심이 없는 것도 같다. 이런 식이나 저런 식이란 사람들이 흔히들 상상하는, 배가 고프지만 음악을 해서 행복한 젊은 인디 뮤지션의 이미지나 천재적인 음악성으로 날벼락처럼 인기를 끄는 인디 뮤지션의 이미지다. 여기에는 그저 공연을 하기 위해 부지런히 오디션을 보고 필요하다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꿈만 있지도 않고 현실만 있지도 않다. 만약 영화에 홍대 본연의 화려한 컬러가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이 인물들의 행태를 다르게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최근까지 개봉한 홍대 뮤지션을 다룬 영화란 대체로 다큐멘터리의 형식이었는데, 거기에는 명확히 어느 정도 자리매김을 한 개별적인 뮤지션들이었는데, 그 개별적인 것이 대표적인 인상을 만들어왔던 것 같다. 오직 이 뮤지션만이 음악의 열정을 하얗게 불태우고 있는 느낌. 다큐멘터리의 인상을 그대로 극영화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라이브 하드>는 이 인상을 영화의 러닝타임이 허락하는 거의 모든 뮤지션들에게 공평히 나눠주는 것 같다. 마냥 악동일 것만 같은 펑크 뮤지션뿐만 아니라 블루스나 퓨전 재즈를 하는 뮤지션도 하얗게 불태우고 있다.

 

오디션장의 댄서가 인상적이다. 이 댄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실제 오디션장임을 고려했을 때, 아마 이 댄서는 극 중 현실에 실존하는 인물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영화 막바지 플라멩고 기타 연주자의 솔로가 펼쳐질 때도 거기에 있다. 마치 음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음악의 신처럼. 오디션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자기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아직 공연 자리 하나 제대로 꿰차고 있지 못한 사람이기도 하다. 들어줄 이가 없는 공연을 하는, 어떻게 보면 미완의 뮤지션들인 것이다. 그런데도 거기엔 신이 강림한다(물론 머저리밴드의 완성하지 못한 음악에는 강림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 댄서가 진짜로 음악의 신이었다면 이미 이들은 이들 자체로 다 이루었다는 것의 증거가 될 것이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아직 때가 오지 않은 이 뮤지션들이 이걸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힘이 나는 일일까. 아니 어쩌면 그냥 이 영화가 이런 삶에게 응원을 던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력하는 과정 중에 있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이미 이룬 것을 새삼 보여준다. 색안경을 빼고 음악과 함께.

 

-송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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