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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빛> 리뷰 : 두 사람이 함께한 여름날의 기억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3. 1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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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빛>

두 사람이 함께한 여름날의 기억

 

영화 <밤빛>의 시선은 희태(송재룡)를 묵묵히 지켜보는 느낌이 지배하고 있다. 카메라는 최소한의 움직임만 남겨두고 고정된 자리에서 희태를 관찰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병원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희태의 옆얼굴을 비춘다. 이후의 장면에서 희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희태는 홀로 한겨울 산속으로 향한다. 눈으로 뒤덮인 산길을 오르고 얼어붙은 강을 깨어 물을 긷는 한낮의 희태의 모습과 캄캄한 어둠으로 뒤덮인 산중에 아궁이 앞에 끼니를 때우는 희태의 모습에서 생기를 느낄 수 없다. 거친 기침과 한숨만이 생의 끝에 서 있는 희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듯 보인다.

 

전기도 통신도 단절된 고독한 산속 집에서 희태는 헤어진 아내로부터 온 편지를 읽는다. 편지를 손에 쥔 채 방에 앉아있는 희태의 실루엣에 이어 기차 창가 자리에 앉은 민상(지대한)이 등장한다. 민상의 등장을 기점으로 영화 속 계절은 겨울에서 여름으로 변화되어 있다. 여름의 이야기는 민상이 희태의 집에서 보내는 23일로 채워진다. 피를 나눈 부자지간이나 그동안 함께 한 시간이 없기에 희태와 민상 사이에는 어색함이 감돈다. 영화는 희태와 민상 사이에 물리적 거리를 둠으로써 두 사람의 감정적 거리를 표현한다. 멀찍이 떨어져 걷는 모습이나 희태의 집에서 밖에 있는 희태와 방에 들어가 앉은 민상의 공간적 단절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희태와 민상은 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을 통해 가까워진다. 등산이 거듭될수록 희태와 민상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의 시간과 횟수는 증가한다. 그리고 희태와 민상의 등산을 정지된 화면에서 지켜보던 카메라는 희태와 민상의 뒤에서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 움직인다. 카메라의 역동은 두 사람의 관계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 보인다. 희태와 민상이 나란히 누워 자고 있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다시 움직인다. 양초를 켜 방을 밝힌 희태는 민상의 이불을 바로 덮어주고 잠든 민상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희태의 조심스러운 움직임만큼 카메라의 역동은 크지 않다. 그러나 민상의 방문이 희태의 일상에 변화의 파장을 만들고 있음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고 본다.

 

도입부에 흘러나온 배호의 비 내리는 밤길의 노래 가사 중 어제는 두 사람이 걷던 이 길을/이 밤에 나 혼자서 걸어가는데라는 대목이 있다. 이것은 영화의 앞과 뒤에 등장하는 희태와 민상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희태의 앞으로 비춘 산 정상에 펼쳐진 중첩된 산자락과 안개 사이로 퍼지는 노을의 절경은 영화 후반 장면에서 민상이 보고 있는 장면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 장면은 희태와 민상이 여름날 함께 올랐던 산 정상의 모습과도 비슷한 구석이 많다. 두 사람이 함께한 여름날의 기억은 그 여름의 앞뒤에 존재하는 겨울에 홀로 서 있는 희태와 민상을 부자(父子)의 연으로 잇고 있다. 희태와 민상이 홀로 있지만 외롭지 않아 보이는 까닭은 어쩌면 두 사람이 잠시나마 함께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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