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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 리뷰 : 상처에서 길어 올린 내면의 아름다움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3. 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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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

상처에서 길어 올린 내면의 아름다움

 

여성 화가로 불리고 싶지 않다인터뷰 장면으로 시작하는 헬렌 쉐르벡(로라 비른)의 대사는 그녀의 예술관을 잘 보여준다. 왜 여자임에도 전쟁과 가난 같은 어두운 소재로 그림을 그리냐는 질문에 당당히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헬렌의 모습은, 세상의 편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갔던 그녀의 일생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는 대사는 그림에 대한 그녀의 열정의 깊이를 잘 표현한다. 영화는 세상의 편견과 신체적 불편함, 그리고 내면의 여러 고통과 싸우며 자신만의 개성 있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냈던 화가로서의 헬렌 쉐르벡의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 인물을 소개할 경우 주로 성()을 부르는 것에 반해 굳이 영화의 제목부터 헬렌으로 이름을 부른 것은, 지독한 성차별 속에서도 핀란드의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 헬렌에 대한 일종의 존중의 표현으로 보인다.

 헬렌 쉐르벡에 대한 감독의 경외감까지 느껴지는 이 영화는 그녀에게 집중하고 그녀를 제대로 재현하는 것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대사 대신 헬렌의 그림 그리는 모습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자화상을 그리며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수도 없이 바라보고, 캔버스의 물감을 긁어내고, 다시 덧칠하기를 반복한다. 멀리서 바라보다가 다시 가까이 서고,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바라보기를 되풀이하며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냉정한 시선으로 평가한다. 그러다가 한계에 봉착하는 순간에는 정물화로 기분전환을 하려는 듯 보이지만, 역시나 꽃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물감을 섞고 또 섞는 노력을 장시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화가로서의 헬렌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얼마나 철저한 예술혼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헬렌의 표정과 동작에 집중하며 주변의 소음이나 배경음악까지도 배제하여 감독은 그녀의 화가로서의 열정에 관객이 오롯이 빠져들게 만든다.

 헬렌이 에이나르(요하네스 홀로파이넨)를 만나면서 내면의 변화를 겪는 과정도 그녀의 감정선을 충실하게 좇으며 밀도 있게 표현한다. 첫 만남에서 호감을 갖게 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과정은 바닷가의 풍경과 어우러져 따뜻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실연의 아픔을 겪는 과정은 어두운 집안 분위기와 같이 무겁고 서글픈 분위기로 그녀의 심정을 따라간다. 헬렌 스스로도 확인한 냉혹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배신감을 표현하고 이겨내기 어려울 것 같은 극심한 비탄에 빠지는 모습은, 온몸에 물감을 묻히고 바닥에 주저앉은 모습으로 담아낸다. 하지만, 현실에 좌절하고 굴복하는 모습이 아닌,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결국에는 딛고 일어나 자신의 미술 작품을 보다 성숙시키게 되는 강인한 헬렌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헬렌의 작품과 사랑의 이야기와 더불어 핀란드의 북유럽 특유의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펼쳐 놓는데, 그 구도나 자연의 색감이 단순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닌, 한 폭의 그림을 옮겨 놓는 듯 스크린에 매력적으로 담아낸다. 거기에 더해 이 영화의 예술적 요소 중 하나로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과도하지 않게 절제하여 사용된 익히 알려진 곡의 변주가 잔잔히 배경에 깔리며 그림 같은 영화의 느낌을 배가하고 있다. 특히, 헬렌과 에이나르가 함께 그림을 그리며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Ave verum corpus’가 피아노 연주로 깔리는데, 마치 오르골 같은 느낌을 주어 달달한 로맨틱 드라마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곡은 영화의 엔딩에 헬렌의 여러 작품들을 하나씩 스크린에 보여주며 다시 한번 쓰이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차분히 감상하는 동시에 에이나르와의 그 애잔한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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