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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리뷰 : 앞으로도 우리는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겠지만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2. 5.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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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앞으로도 우리는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겠지만

 

영화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은 제목처럼 민규(은해성)와 한나(오하늬)를 중심으로 관계를 시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와 함께 두 사람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들의 성장은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놀이터의 회전 그네가 대변한다. 처음 놀이터 장면은 한나가 회전 그네에서 일어나 화면 밖으로 사라지면 바로 그다음에 민규가 회전 그네를 향해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시간차를 두고 화면에 등장한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홀로 회전 그네에 앉아 제자리를 빙빙 돈다. 이 장면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재를 혼자서 견뎌내는 민규와 한나의 답답한 상황과 닮아있다.

 

민규는 자신이 좋아서 시작한 다큐멘터리 촬영 일을 그만두려 한다. 일을 하면서 민규의 경력은 쌓였지만 그의 잔고는 언제나 바닥이다. 그리고 생업에 필수적인 민규의 카메라는 녹음 기능이 고장이 나 콜텍 노동자(박지수)의 인터뷰에서 소리를 담지 못한다. 음성이 들리지 않는 인터뷰 영상을 볼 때의 답답함은 민규의 현재를 볼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한나는 자신의 꿈이었던 피겨를 관두며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상태이다. 좋아서 시작했지만 엄마의 강압으로 인해 피겨를 향한 한나의 애정은 식어 버렸다. 좋아했던 것을 포기한 한나와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려는 민규. 이런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에게 새로 시작하기 위한 디딤돌이 된다.

 

민규와 한나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회에서 외면당한 사람들을 만난다. 먼저 상규(장준휘)와 함께하는 작업에서 회사의 일방적 해고에 항의하며 13년째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콜텍 노동자들을 만난다. 영화 중간에 삽입된 실제 장면들은 콜텍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의 세월을 가늠케 한다. 특히, ‘콜밴이라는 밴드를 만들어 자신들이 만든 기타로 공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기타의 선율을 통해 기타를 만드는 회사의 주인은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임을 외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콜텍 노동자들의 외침에도 화면 속의 사람들은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고 태인(김지나)과 함께하는 작업에서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프랑스에서 온 주희(이서윤)와 동행한다. 영화는 입양아인 주희가 자신을 낳은 부모를 찾는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가 지닌 육아 복지의 문제점을 조명한다. 주희 외에 또 다른 입양아들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부모의 서명이 없이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80년대에 입양기관에서 자행한 입양아 정보 조작은 한국 사회의 성차별, 인종차별의 민낯을 마주하게 한다. 국가적으로 시행되어온 몰인정한 입양 사업은 피해자인 입양아들에게 어떠한 보상도 도움도 주지 않는다.

 

민규는 콜텍 노동자와 주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한나는 주희의 통역과 함께 다큐멘터리 좔영을 돕는다. 그렇게 민규와 한나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콜텍 노동자들과 입양아 주희가 외롭고 지난한 싸움을 세상에 알린다. 민규와 한나는 이들과 함께하면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 나간다. 민규는 한나의 꿈을 촬영하던 카메라를 건네받는다. 한나의 카메라는 이제 민규의 손에서 다시 사람들을 촬영하며 민규가 좋아하는 일을 이어나가게 한다. 한나는 민규가 촬영한 콜텍 노동자들의 영상에 내레이션을 녹음한다. 화면은 컴퓨터에 집중하여 영상을 보고 있는 한나의 뒷모습을 비춘다. 그녀에게서 좋아하는 일을 만나게 된 순간의 흥분이 느껴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초반부에 등장한 놀이터를 비춘다. 회전 그네에 홀로 앉아있는 한나의 곁으로 민규가 다가온다. 민규는 한나가 앉아있는 회전 그네를 밀어준다. 두 사람은 함께 제자리를 돌며 대화한다. 민규는 한나에게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나를 만났다고 고백한다.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민규와 한나는 앞으로 라마바타파하까지 나아갈 것이다. 그동안 두 사람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민규와 한나의 미소에서 회전할 때마다 마주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라는 예감을 하게 된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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