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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힘> 리뷰 : 난쟁이가 거인이 되려면 난쟁이를 지켜줄 울타리가 필요하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1. 2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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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힘>

난쟁이가 거인이 되려면 난쟁이를 지켜줄 울타리가 필요하다

 

영화 <파힘>은 한 아이의 성장을 담은 영화이다. 방글라데시 체스 신동 파힘(아흐메드 아사드)이 프랑스로 넘어와 주니어 챔피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독은 파힘과 그의 가족이 난민으로서 겪게 되는 상황들을 현실적으로 표현하지만 자극적인 요소는 최대한 배제한다. 대신 체스의 재능을 키워나가는 파힘의 성장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영화 안에 담아낸다. 이러한 감독의 시선은 우리가 그동안 불편함을 핑계로 외면하고 있던 난민 이슈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경계를 긋는 기준이 무엇이 되었든 인간의 존엄과 어린아이의 성장 앞에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파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인물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바라보는 파힘의 눈은 순진무구하다. 국경을 넘기 위해 버스에 올라탈 때 엄마와 헤어지기 싫다며 울며 떼쓰는 파힘의 모습에 이어 항구에서 그랜드 마스터를 만나러 간다며 소리 외치는 파힘의 웃는 얼굴이 나타난다. 다가올 나날에 대해 걱정보다는 기대가 가득 찬 아이의 모습을 감독은 이 장면들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파힘은 무궁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비친다. 학교에서 선을 교차하지 않고 건물 사이를 연결하라는 과제를 수행할 때 파힘은 학습지를 잘라 입체 공간을 표현하여 과제를 해결한다. 이 장면에서 파힘이 또래보다 지능이 특출함을 알 수 있다.

 

파힘과 대조적으로 그의 아버지 누라(미자누르 라하만)는 과거에 매여 정체된 인물이다. 영화에서 오직 누라의 과거만이 플래시백 기법으로 현재 장면 사이사이에 삽입되어 있다. 삽입된 장면을 통해 소방관이었던 누라가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여파로 파힘이 납치될 위기를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라는 새로운 터전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식사 인사인 bon appétit(본 아페티)를 감사 인사로 착각하여 사용하는 등 불어로 자기 의사를 전달하지 못한다. 약속된 시간에 늦게 도착하는 방글라데시 문화를 버리지 못하여 파힘이 체스대회에 참가하지 못할뻔한 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누라는 오로지 파힘을 위해 고된 타향살이를 견뎌낸다.

 

파힘의 체스클럽의 교사인 실뱅(제라드 드파르디외)은 파힘이 나아갈 길을 먼저 걸어본 인물이다. 파힘은 체스 시합에서 지는 순간 자리를 박차고 나갈 만큼 자존심이 강한 아이이다. 실뱅 역시 파힘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고한 자존심의 소유자이다. 자기 옷차림을 지적하는 파힘에게 내 맘대로 입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성향이 비슷한 탓인지 실뱅은 파힘이 맞이할 미래의 어느 순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실뱅은 파힘에게 비기는 것이 비극이 아니라, 지는 것이 비기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존심을 때문에 이기려고만 한다면 진짜패배를 겪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영화의 구조는 파힘의 행보를 실뱅과 누라가 앞과 뒤에서 조력하는 과정으로 표현할 수 있다. 누라는 오직 파힘의 앞날을 위해 생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은 사람이다. 누라는 과거의 사건이 파힘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지 못하게 파힘의 뒤에서 지키고 서 있는 것 같다. 실뱅은 파힘의 앞에 서서 체스 챔피언을 향해 파힘이 나아갈 길의 방향을 조정하는 것을 돕는다. 그리고 훈련을 통해 그랜드 마스터를 꿈꾸는 파힘이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내게 한다. 그리고 세 사람을 격려하고 보살피는 마틸드(이자벨 낭티)의 따스한 마음이 파힘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누라와 실뱅 그리고 마틸드라는 울타리 안에서 파힘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마침내 프랑스 전국 체스대회에서 마지막 시합에서 비김으로써 챔피언이 된다. 영화 속 대사처럼 난쟁이가 거인이 되는 순간이다. 파힘이 챔피언 트로피를 거머쥠으로 인해 누라는 본국으로 추방당할 위기로부터 벗어난다. 그리고 실뱅은 자신에게 패배를 안겼던 경쟁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과거의 족쇄로부터 풀려난다. 영화의 결말은 마치 거인이 된 파힘이 누라와 실뱅을 끌어올려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동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아이의 성장 앞에 국적과 인종 따위의 조건이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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