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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매> 리뷰 : 폭력의 기억을 통과하며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2. 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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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매>

폭력의 기억을 통과하며

 

가정폭력은 사건의 심각성과는 별개로 너무나 흔한 뉴스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실제로 많이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일 거다. 그래서인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정폭력 장면도 흔히 나타난다. 고부간 갈등 중에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뺨을 때리기도 하고, 부모가 말을 안 듣는 자식의 머리를 때리기도 한다. 형제자매의 경우 보통은 쌍방으로 주먹질을 하지만, 가끔은 위계질서로 인한 폭력도 나타난다. 더 드물게는 자식이 노쇠한 부모를 학대하기도 한다. 이 중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은 부모가 자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다. 절대적으로 없어야 할 일이 흔하다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가끔은 너무 흔해서 이것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문제라는 것을 망각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 가정폭력 장면이 인물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표현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은 종종 봐왔지만, 가끔은 이 심각한 문제를 너무 도구적이고 관습적으로 연출해오지 않았나 싶다. 특히 몇몇 영화에서 악행을 저지른 인물의 어린 시절 가정폭력 사연이라도 나오면, 마치 그가 저지른 악행이 가정폭력과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불편해지기도 한다. 이외에도 가정폭력은 영화에서 다양한 배경과 이유로 등장하지만, <세자매>는 어린 시절 가정폭력에서 살아남은 세 자매의 지금을 조심스럽게 그린다.

 

세 자매는 각자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실제로 만나는 일은 그리 자주 있지 않고, 간간이 전화로 소식을 주고받는 것 같다. 독립 전 원가족이 함께 살았을 때는 같은 형편에 같은 일들을 겪었겠지만, 지금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세 자매는 외모도 성격도 사는 배경도 다 다르지만, 이상하게 어긋나 있다는 점이 닮았다. 희숙(김선영)은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가끔 자해를 한다. 미연(문소리)은 사람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는 기질이 있으며 필요하다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미옥(장윤주)은 헌신적인 남편과 양육해야 할 아이가 있는데도 술에 절어 산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거지 싶기도 하지만, 이게 건강한 삶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다. 아마도 현재의 시간을 거슬러 흑백 화면으로 나타나는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 가정폭력이 연관이 있겠지만 감독은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하지는 않는다. 다들 현재 직면한 문제에는 좀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어렸을 적 가정폭력의 영향력을 작은 흔적들로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폭행당했던 희숙이 커서도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낸다는 것. 미옥이 알코올 중독인 것, 그리고 아들을 손찌검하는 남편에게 발작적으로 주먹질을 하는 것. 미연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오직 자기 뜻대로 흘러가게 하려고 드는 것. 분명히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던 시절에서 적어도 30년은 지난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가정폭력으로 인한 결과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그 영향력은 남아있다. 아버지의 생일잔치가 난장판이 된 이유는 아픈 남동생의 돌발행동일 수도 있지만, 세 자매에게 오랜 시간 동안 드문드문 나타난 폭력의 영향력 때문이기도 하다. 미옥은 상황 정리를 하려는 미연에게 옛날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미연은 돌연 아버지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지금 벌어진 일이 백 퍼센트 아버지가 원인은 아니겠지만, 또 바탕에 깔린 기저에 아버지가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과는 돌아오지 않은 채 장면이 전환된다. 이 미묘하게 결부되어 있는 것 같은 원인과 결과적인 상황에 세 사람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끝내 아버지에게 제대로 사과를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알 수는 없다. 어렸을 때 가정폭력에 노출됐던 세 자매는 트라우마가 남았지만 다행히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약간의 그늘과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며 각자의 생활력을 가지고 살아갈 것 같다. 아주 오래전 맛있게 먹었던 식당을 기어코 찾아내고는 함께 사진을 찍는다. 사이좋은 세 자매는 같은 아픔을 가지고 연대한다.

 

-송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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