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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동무> 리뷰 : 아이의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부질없는 이데올로기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1. 2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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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동무>

아이의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부질없는 이데올로기

 

가끔 어른들은 생각보다 더 무기력해라고 말하는 아빠 펠릭스(탐베트 투이스크)의 대답은 영화 속의 모든 어른들에게(물론, 현실의 모든 어른들에게도!) 적용이 될 만한 얘기다. 갑자기 눈앞에서 엄마가 낯선 사람들에게 잡혀간다. 그런데 아빠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고모와 할머니도 욕을 하거나 화만 낼 뿐, 엄마를 데리고 올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어른들은 공산당을 욕하고 소련을 증오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과 맞서기는커녕 계속 눈치를 보고 뭔가를 자꾸 감추기에 급급하다. 물론, 힘이 세고 무서워 보이는 공산당이나 소련인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엄마와 아빠의 친구라는 검은 옷 입은 아저씨(파울 바리크-유한 울프삭 분)는 자꾸 집으로 찾아와서 렐로 가족을 괴롭히고, 심지어는 아이에게 거짓말까지 하며 아빠의 메달을 찾으려고 혈안이다. 렐로의 무릎 위로 간판이 떨어지는 소리에 군인은 화들짝 놀라서 총부터 쏜다. 정작 아이는 놀라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에 반해 6살에 불과한 렐로(헬레나 마리아 라이스너)는 밝고 씩씩하다. 엄마를 돌아오게 하는 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해 나간다. 금방 올 것처럼 얘기하고 떠난 엄마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고 떼를 쓰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언제나 밝은 미소를 유지한다. 그에 더해 착한 어린이가 되면 엄마가 돌아온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하나씩 실행에 옮긴다. 거짓말 안 하기, 아빠의 말 잘 듣기, 집 안 청소에 식탁 정리는 물론, 저녁 식사도 만든다. 더 나아가 착한 어린이의 표상처럼 인식되는 소년단에 들어가겠다고 다짐하며, 학교 입학식에 엄마와 함께 등교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엄마를 잡아간 자들이 바로 소련 공산당인데, 그들을 찬양하는 단체에 들어가겠다는 렐로의 생각은 어처구니없기보다는 안쓰럽게 보인다. 오히려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 이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를 던져 넣은 어른들이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영화는 철저히 아이의 눈높이에서, 순수한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데올로기의 마찰로 인해 첨예한 갈등을 일으킬 만한 상황이지만, 영화에서 그런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아이의 순수하고 엉뚱한 행동 때문에 웃음을 주는 장면이 많고, 평온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하지만, 그러한 아이의 눈을 통해 영화는 관객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엄마가 하루빨리 돌아와서 예전처럼 다시 행복하게 사는 일뿐이다. 어른들이 말하는 소련에, 스탈린에, 공산당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 6살 아이로서는 알 도리가 없고, 설혹 안다 한들 그것이 아이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어린아이조차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면, 과연 그들은 누구를 위한 혁명을 하자는 것인가? 평범한 가정의 소박한 행복을 짓밟아야 겨우 성취할 수 있고,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앞세워야 지킬 수 있는 것이 어른들이 내세우는 공산주의의 실체인 것이냐고 조용하지만 강하게 반문하고 있다.

 

스탈린의 죽음으로 5년 만에 재회하는 렐로와 엄마의 모습은 생경하기만 하다. 관객으로서는 서로를 얼마나 그리워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모녀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상상한다. 하지만, 관객의 예상과는 달리 서먹함을 넘어 왠지 데면데면하는 듯한 모녀의 모습에 모두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란히 걸음을 떼며 슬쩍 내민 엄마의 손에 자신의 손을 맞잡는 렐로의 모습은 이제 모든 것이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준다. 엄마가 잡혀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렐로의 손을 잡아주었던 그 모습 그대로 5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가족은 다시 모인 것이다. 비록 말 한마디 나누지는 않지만, 작은 미소를 짓는 모녀의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코끝 시린 감동을 선사한다. 스크린 가득 비춰주는, 구름 위로 나와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처럼 그들의 앞날에도 햇살이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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