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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리뷰 : 유예되는 삶, 근원적인 고통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1. 1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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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되는 삶, 근원적인 고통

 

이전에는 빅터라고 불렸던 16살 라라는 마음과 생각의 인식과는 다르게 남자의 신체로 태어났다. 지금은 신체를 인식에 맞춰가기 위해 병원에 다니면서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고, 또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국내 최고의 발레학교에서 테스트를 받고 있다.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리는 이때, 라라는 사랑이든 우정이든 지금 할 수 있(거나 해야만 할지도 모르)는 것을 두고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것, 신체까지 여자로 바꾸는 것을 절대적 우위에 둔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 외의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금 손에 쥘 수 있는 기쁨이나 행복 같은 감정을 대부분 유예한다. 라라는 영화 속 상담사의 표현처럼 추운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평소에 옅은 미소를 띤 얼굴을 하고 있어 평온해 보이지만, 항상 그런 얼굴을 하고 있기에 오히려 무표정인 것처럼 보인다. 누가 봐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야 할 상황이지만, 덤덤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고 언제나 괜찮고 좋다고 대답한다. 이상한 상황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또래의 아이들이 보이는 태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라라의 호르몬 치료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면서 오직 나중을 바라보던 태도에는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청소년기에 남성 호르몬이 지나치게 활성화되는 것을 막는 치료를 하다가 이제는 여성 호르몬을 투여하는 치료로 전환한다. 호르몬 치료의 변화가 라라의 삶의 태도를 바꿨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치료 방법과 라라의 반응에는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 라라는 무엇이든 더 잘 억제하는 사람처럼 보였다면, 나중에는 무엇이든 더 많이 필요한 사람처럼 보인다. 트랜스젠더인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고, 예상과 달리 자신을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은 발레학교 학생들과 선생님을 만나면서 어딘가 터진 것 같다. 라라는 늦게 시작한 만큼 발레도 더 잘하고 싶고, 남자애와의 연애 감정, 여자친구들과의 우정어린 하룻밤도 필요해진다. 처음에는 옅은 미소만 짓고 있던 라라의 얼굴에는 더욱 다양한 표정이 떠오른다. 라라의 감정 진폭 그래프를 긍정적인 쪽을 +로 부정적인 쪽을 로 두자면, 처음에는 +10-10을 오갔으나 나중에는 +100-100을 오가는 것처럼 보인다. +100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100도 함께 찾아온다.

 

지금까지 라라는 모든 것을 잘 참아왔다. 언젠가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여자가 될 것을 꿈꾸면서 삶의 많은 것들을 미뤘다. 이 유예는 16살이 해내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이다. 완전한 여자가 되는 것 외의 것들이 점점 삶에 침투해오면서 오히려 혼란이 가중된다. 여자가 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른 것을 누리면서 매일 완전하지 못한 몸을 재확인하는 것 사이에서 무엇이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라라는 악순환에 빠지고 끝내 극단적인 선택으로 향한다. 흔치 않게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내면을 집중하게 하는 영화다. 라라는 자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진다. 외부의 시선이나 반응보다 매일 보는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자신을 자신답지 못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 영화에 으레 등장하는 차별하는 환경에는 크게 집중하지 않는다. 차별이 극심할 때도 존재했고, 언젠가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을 때에도 존재할 트랜스젠더의 어떤 근원적인 고통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상상만 할 뿐 실제로 이 고통의 크기가 어떨지는 당사자가 아니라면 절대 가늠할 수 없을 것 같다. 언제 올지 모르는 순간을 위해 유예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고통, 진정으로 괜찮다고 말할 수 없는 삶을 사는 고통을 비춘다.

 

-송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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