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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85> 리뷰 : 죽음을 유희하는 젊음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12. 3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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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85>

죽음을 유희하는 젊음

 

친구의 배를 빌려 바다에 나간 알렉스(펠릭스 르페브르)는 갑작스런 폭풍을 만나 배가 뒤집힌다. 허우적거리던 알렉스를 구하러 한 배가 다가오고, 그 순간 알렉스는 처음 만난 다비드(벤자민 부아쟁)에게 정신없이 이끌리게 된다. 시작부터 영화는 알렉스의 내레이션을 통해 다비드의 죽음을 알린다. 알렉스가 무기력하게 경찰에게 인도되어 가는 중 들려오는 내레이션은 마치 스릴러 영화처럼 죽음을 말하며 뒤이을 이야기에 두려움을 갖게 한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플래시백을 통해 사건을 수동적으로 보여줄 거라 예상했던 알렉스가 고개를 들며 관객과 눈을 마주친다. 이 자의식 가득한 마주침은 요 맹랑한 녀석을 보게라는 생각과 함께 흥미를 느끼게 한다. 이 장면은 곧 경쾌한 음악과 함께 85년도 따스한 프랑스의 해변으로 전환된다. 이런 전환과 효과들이 우울과 유쾌함이 공존하는 젊음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두려움은 알렉스에게 변화를 이끌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이제껏 알렉스는 배를 탈 때 친구의 도움을 받아왔다. 보트 위에서 나른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그의 모습은 앞날에 대한 두려움 따윈 없어 보인다. 위급한 순간에 등장한 다비드는 알렉스에게 보트를 뒤집는 법을 알려주고, 젖은 몸을 말려주며 현실에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다. 영화가 보여주는 속도는 죽음과 밀접함과 동시에 젊음의 상징이기도하다. 관객들은 여유로웠던 알렉스의 일상이 다비드의 등장과 함께 빨라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느릿하게 자전거를 타던 초반의 알렉스는 바이크에 타 위험하게 질주하는 다비드에게 매달려 두려움을 느끼지만 곧 그것을 즐기게 된다. 타인에게 자신의 안위를 맡기던 알렉스는 이제는 다비드와의 사랑이 불러낸 불안한 감정들을 자전거 질주로 드러낸다. 다비드에게 매료되게 했던 요소인 두려움이 알렉스를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다비드와의 관계는 누구도 같은 형태를 보여준 이가 없으니 알렉스가 스스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회상과 현실을 오가며 짧은 사랑을 복기하던 알렉스. 난데없이 등장하는 사랑의 끝이 그 시작만큼이나 난데없어 설명하기 힘들다. 그것을 보여주고자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회상이 교차하며 등장한다. 시간의 간극은 점점 좁혀지다 사랑이 끝나는 순간에 만난다. 죽음 뒤에도 삶은 이어지기에 알렉스에게는 그 사랑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다비드에 대한 죄책감이 엉켜있던 회상이 떠나가며 이야기는 온전히 알렉스의 서사가 된다. 글쓰기에 재능을 가진 알렉스가 정신없이 휘몰아치던 다비드와의 관계를 글로 써내려간다는 것은 그 주체성을 드러내는 일이기도하다. 이제 알렉스는 처음 다비드를 만났고 또 문제를 촉발시킨 공간인 배를 이끌고 끝인지 시작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시간으로 나아간다. 다비드와의 강렬한 6주간의 만남과 죽음으로부터 스스로 걸어 나오며 생긴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알렉스와 다비드 모두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성인이 되어가는 시기에 서로를 만났기에 자신의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자신감이 넘치고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진 다비드는 동시에 죽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죽음에 대한 우울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닿지 않는 속도에 대한 다비드의 유희와 죽음에 대한 알렉스의 집착은 나이든 부모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젊음의 한 부분일 것이다. 그렇기에 무덤위에서, 사랑했던 이의 죽음을 밟고 춤을 출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가 죽음 같은 두려움을 딛고 나아가는 젊음을 축복한다. 이 영화를 50세가 넘은 지금에 10대를 위해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감독의 말은 오히려 10대를 지나쳐온 자신을 위해 보내는 헌사로도 느껴진다.

 

-관객 리뷰단 박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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