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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리뷰 : 비밀로 간직한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12. 3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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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비밀로 간직한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

 

영화 <화양연화>에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진하게 배어있다. 소려진(장만옥)과 차우(양조위)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두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작품을 관람하는 이에게까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되려 한다. 사실 90년대에 태어난 입장에서 1960년대라는 시대와 홍콩이라는 장소 자체는 그리 익숙한 대상이 아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면 이상하게도 그 시절 그 곳에 대해 추억이 깃들어 있는 마냥 아련함을 느낀다. 두 사람이 나누었던 마음이 스크린을 뚫고나와 그것을 감상하는 이에게 스며든 탓일지도 모르겠다.

 

불륜을 소재로 한 대다수의 작품에서 보이는 네 남녀의 치정에 얽힌 사건들은 이 작품에서는 볼 수 없다. 감독은 오롯이 소려진과 차우 사이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카메라의 시선이 감독의 이러한 감독의 의도를 대변하는 듯 보인다. 소려진과 차우 배우자들은 뒷모습이나 목소리로만 등장하고 심지어 극이 진행될수록 첸 부인과 차우의 입을 통해서만 이들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소려진과 차우의 배우자가 화면에서 배제됨으로써 관객은 배우자가 있는 두 남녀의 만남에 대한 사회의 통념에 휘둘리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농후해지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몰두하게 된다.

 

감독은 슬로우 편집과 그 뒤로 깔리는 음악 ‘Yumeji's theme’을 통해 소려진과 차우가 서로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두 사람 사이의 이별하는 순간의 감정의 변화를 느끼게 만든다. 이러한 효과로 만들어낸 장면들 중에서 국수가게로 향하는 골목계단의 장면은 모두지 뇌리에서 떨칠 수 없다. 저녁 무렵, 한 손에 도시락을 들고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소려진의 뒷모습과 계단 옆에 기대 담배를 피우는 차우의 옆얼굴, 그리고 계단 중간에서 엇갈려는 소려진과 차우. 대사 한 마디 없지만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를 향해 움직이게 될 것임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소려진과 차우가 존재하는 공간을 채우는 영화의 미장센은 정말이지 너무도 아름답다. 먼지가 부유하는 공기의 질감, 짙은 색채의 벽지, 택시, 레스토랑의 분위기, 붉은 색감의 호텔 방 등에서 구현된 영화의 공간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과 눈빛을 더욱 강렬하게 기억되게 한다. 또한 감독은 소려진이 착용한 의상의 색감과 무늬로 그녀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차우가 있는 호텔방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는 소려진의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그녀가 입은 하얀 치파오의 새빨간 코트로 시각적으로 나타낸다. 차우와 이별하던 길목에서 소려진의 입은 여러 색이 어지럽게 섞인 치파오는 헤어짐을 준비하는 그녀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배표 한 장이 더 있다면 자신과 함께 떠날 수 있을지 혹은 자신을 데리고 갈 수 있을지 차우와 소려진은 서로에게 묻지 않는다. 서로를 향한 진심을 차마 전달하지 않은 채 두 사람은 헤어진 후의 시간을 보낸다. 캄보디아의 어느 사원, 돌기둥에 파인 구멍 하나에 입을 대고 무언가를 말하는 듯한 차우의 모습을 부감으로 비춘다. 그리고 돌기둥의 구멍이 흙으로 메워진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이야기를 맺는다. 소려진과 차우가 나눈 감정은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화양연화(花樣年華)로 기억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사랑이 비밀로 간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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