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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에> 리뷰 : 외로움을 지우고 그리움을 만나는, 겨울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12. 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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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에>

외로움을 지우고 그리움을 만나는, 겨울밤

 

영화 <겨울밤에>는 은주와 흥주(양흥주)를 중심으로 청평사와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겨울밤의 이야기를 세 가지 에피소드로 엮어낸다. 영화는 에피소드가 시작되기 전에 가로 폭이 넓은 민화로 화면을 채워 이후 극의 중심에 서는 인물들이 바뀜을 알려준다. 그런데 화면에 등장하는 벽화는 마치 연작 그림처럼 유사한 화풍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장면 효과는 각 에피소드가 저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개별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등장인물들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청평사로 돌아온 은주(서영화)와 흥주는 배편이 끊겨 민박집에 하룻밤 묵는다. 두 사람은 민박집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다. 흥주는 은주에게 이곳이 기억이 안 나느냐고 묻는다. 흥주는 외관은 좀 변했지만 내부의 모습은 그대로라며 젊은 시절 은주와 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상기된다. 하지만 은주는 기억이 나지 않는 듯 고개만 갸웃거린다. 자신과의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은주를 보며 흥주는 풀이 죽은 것 같다. 그런데 이 장면 뒤에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보면 오히려 흥주의 기억에 착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게 된다.

 

밤 산책을 나온 흥주는 길가를 서성이다 불이 켜진 노래방을 발견한다. 술병과 안주 접시들로 어지럽혀진 노래방에서 흥주는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갑작스레 그곳에서 대학 시절 알고 지낸 해란(김선영)과 조우한다. 두 사람은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옛 시절을 추억한다.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젊은 시절의 추억들을 하나둘씩 펼쳐보는 흥주를 보면 그가 예전의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흥주의 행동에서 그가 해란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음이 짐작된다. 해란과의 만남을 계기로 과거를 추억하는 흥주에게 생기가 감돈다.

 

흥주의 이야기에 이어 여자(이상희)와 남자(우지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얼어붙은 폭포 주변 얼음강 위를 화면 밖에서 걸어 들어오는 여자를 군복을 입은 남자가 위태롭게 바라본다. 그 자리에 서서 여자는 남자에게 애인과 헤어졌다 말한다. 괜찮냐고 묻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얼음 강 안쪽으로 가보려 한다. 그런 여자를 향해 화를 내던 남자는 울음 터트리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보며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는 강 위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추운 겨울밤, 두 사람 사이에서 시작된 사랑으로부터 온기가 느껴진다.

 

비슷한 시간, 은주는 청평사를 향해 하얀 눈이 쌓인 산길을 걸어간다. 절에 도착한 은주는 기도를 올렸던 곳에 들어가 휴대폰을 찾는다. 은주는 함께 휴대폰을 찾아주는 스님(박명훈)에게 저장된 그 핸드폰이 자신이 유일하게 가진 것이라 말하며 울음을 터트린다. 스님은 은주에게 마음이 풀릴 때까지 찾아보라며 위로한다. 은주는 휴대폰을 찾지 못한 채 절을 내려간다. 숙소로 돌아가던 길에 얼어붙은 폭포 주변을 구경하던 은주는 깨진 얼음을 밟아버린다. 어쩔 줄을 모르는 은주를 여자와 남자가 발견하고 은주를 얼어붙은 강에서 구출한다.

 

대피소에서 몸을 녹이고 접질린 발을 찜질하며 은주는 여자와 잠깐의 대화를 나눈다. 은주는 여자와 남자에게서 예전의 그녀와 흥주의 젊은 시절을 겹쳐보고 있다.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남자를 만나러 면회를 왔다는 여자에게 자신도 남편과 사귀기 전에 면회를 갔고 그러고 결혼은 했다 말한다. 그 말을 마친 은주의 표정에서 쓸쓸함이 느껴진다. 은주가 숙소에서 흥주와 나란히 앉아 자신의 외로움을 고백할 때도 이때와 비슷한 쓸쓸함이 느껴진다. 은주가 휴대폰을 찾으려 막무가내로 청평사에 가려던 까닭은 어쩌면 외로움을 떨쳐내려는 그녀 나름의 노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전 하얀색 화면 위로 어떤날의 출발이라는 노래가 흐른다. ‘그래 멀리 떠나자 외로움을 지워보자 / 그래 멀리 떠나자 그리움을 만나보자라는 노래의 가사가 영화가 담아내는 이야기의 일부를 대변한다고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벌어진 겨울밤의 사건은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시간으로, 누군가에게는 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만남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겨울밤의 짧은 여행은 과거를 만난 이들에게 현재의 무게를 감당할 힘을 조금이나마 주었으리라고 본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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