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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리뷰 : 멈춤으로부터 변화하는 삶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12. 2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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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멈춤으로부터 변화하는 삶

 

시작부터 카메라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유연하게 흐르며 가족들의 면면을 보여준다. 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첫째, 장 피에르(장 폴 루브)의 역할은 이 가족의 가장이다. 자신감이 넘치고 직장에서 인정받는 피에르는 아직 안정을 찾지 못한 다른 가족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된다. 그런 그에게 옛 연인이었던 헬레나(엘자 질버스 테인)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며 일상에 멈춤이 시작된다. 흐르듯 움직이던 피에르는 운전하다 낯선 곳에 멈추기도 하고 헬레나의 모습이 담긴 잡지 앞에 사로잡힌 듯 멈춰 선다. 다시 만난 헬레나 앞에서 멈추어 선 그는 이제껏 애써 외면해온 과거에 압도된 듯하다. 재능 있던 연극을 포기하고 사랑하던 헬레나와도 헤어진 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던 피에르는 사실 앞만 보며 버티고 있는 거였다.

 

카메라가 가까이서 인물을 찍을 땐 그 사람의 이면과 둘러싼 환경을 지운다. 이상하리만큼 얼굴 가까이서 찍은 화면을 보며 피에르의 감정을 느껴 보려 하지만 잘 느껴지지 않는다. 도리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가 선택한 장소와 시간, 사람들 속에서의 무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장면보다 그가 멈춰선 차밖에 서 있을 때 그의 감정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가까이 대면하더라도 이면을 보려 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한다. 또한 영화는 시간순으로 진행이 되기는 하지만 부드럽게 흐르지는 않는다.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 날짜를 정하는 분주한 장면 뒤 2개월을 단번에 건너뛴다. 가족들은 서로가 모르는 시간 속에서 임신을 하고, 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있다. 피에르뿐 아니라 누군가의 노력 없이는 단절되고 마는 가족들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매끄럽게 이어지던 초반의 카메라가 피에르의 선택과 단절을 보여주며 멈추고 그의 자리를 가만히 바라본다. 하지만 극적인 멈춤으로 끝나지 않고 이후 피에르의 시선이 된 듯 가족들의 변화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후반부의 주요화자인 둘째 쥘리에트(앨리스 태글 리오니)는 뱃속에서 심장이 멈춘 태아와 함께 결혼생활이 끝이 난다. 피에르는 그런 쥘리에트가 절망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글의 영감이 되어주고, 쥘리에트가 몰랐던 가족들의 모습을 찾아가게 한다. 그리하여 쥘리에트는 삶에서 잊고 있었던 자신의 행복을 찾게 된다. 오직 창작을 위해 자유롭길 바라던 마고가 벗은 유니폼을 다시 입는 순간, 수줍고 조용한 마티유(벤자민 라베른)가 형의 방에서 앨범을 틀고 춤을 추며 소리를 지르는 그 순간. 모두 피에르로부터 퍼져나간 가족들의 변화이자 감정들이 일렁이는 순간이다.

 

안나 가발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각각의 단편 속 인물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 피에르가 가족들에게 감정을 폭발하고 홀로 앉아 있는 바 장면은 원작에는 없지만 푸르게 어두워 그의 고독과 외로움을 더욱 강조한다. 마법 같던 마티유의 집들이나 쥘리에트가 출판사를 방문하는 장면은 담백하게 넘겼던 원작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보는 이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비록 원작에 비해 많은 부분이 각색되어 다른 이야기처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단편들 속 인물들이 이야기하는 사랑, 관계, 일상 속에는 가족이 중요한 키워드로 존재하기에 충분히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인물의 면면을 보여주며 낯선 가족 안으로 응집되어 들어간 이 영화는 종래엔 변화된 가족들 각자의 삶으로 분출한다. 또 한 번의 실패로 실망하고 주저앉은 쥘리에트가 다시금 일어나 걸음을 내딛듯 이 삶의 기쁨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관객 리뷰단 박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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