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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극장 | 전지희 감독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12. 8.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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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극장>

/2020.11.23.

 

정지혜 영화평론가 진행

전지희 감독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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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 : 신영극장에 오신 건 처음이신 것 같고, 혹시라도 그전에 강릉 신영극장을 방문하셨거나 관심을 가지고 계셨을지 궁금했습니다.

 

전지희 : 알고는 있었는데 독립영화에 대해서 아무래도 사는 곳이 멀다 보니까. (웃음) 지금 처음 와보는데 제가 네 시에 서울역에서 출발해서 기차를 타고 왔는데 길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리고 또 마침 이렇게 매직아워 때 제가 와서. (웃음)

 

정지혜 : 왠지 저와 같은 기차를 타신 것 같은데요? (웃음)

 

전지희 : 그래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지혜 : 저도 조금 전에 극장에서 관객분들하고 영화를 같이 봤는데요. 이 영화가 관객분들에게 좀 굉장히 좀 따뜻하게? 좀 여러 가지의 생각거리를 던져 주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영화 보시면서 같이 웃기도 하고 또 좀 마음이 찡한 느낌이 같이 전해지기도 해서, 저도 어떻게 보셨을지도 궁금하고요. 감독님께 일단 제가 몇 가지 여쭤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 영화로 데뷔하셨고제가 알기로는 (웃음) 영화과를 졸업하셨지만 사실 굉장히 오랫동안 영화 현장에 있지는 않았다. 영화를 만들거나 그러지는 않았고 광고 일을 하셨던 거 같기도 해요.

 

전지희 : 아니요, 광고 일을 하지는 않았고 전공이 그쪽이랑 좀 비슷했고, 광고계로 가려고 했다가 좌절됐다는 슬픈 이야기. (웃음)

 

정지혜 : 감독님 뵙기 전에 자료들을 찾아보다 혹시 전작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서치를 했지만 전혀 못 찾았어요. 그 인터뷰에 따르면 마흔이 돼서 이 시나리오를 써야 되겠다. (일동 웃음) 제가 너무 TMI라면, (웃음) 인터뷰 상에서 말씀을 해주셨길래 인용을 하자면, 뒤늦게 이 영화를 해야 되겠다 결심을 하고 그때 이 작품을 쓰고 명필름랩을 통해서 공모에 당선돼서 관객분들을 만나게 된. 어떤 길다면 길고 또 어떻게 보면 해야 되겠다고 결심하시고 바로 착착착 진행이 된 거 같기도 한데. (웃음) 어떻게 이 영화 작업을 하게 되셨어요? 감독님이 어떤 분이신지 좀 궁금했습니다.

 

전지희 : (웃음) . 말씀하신 대로 저는 대학교를 좀 늦게 갔어요. 남들 다 취직해서 대리 정도 될 때 아닌가? 늦게 학교를 가서. 근데 이제 전공이 정통 영화 쪽은 아니었고 상업 영상? 이런 뮤직비디오나 광고 쪽이었는데, 영화를 하고 싶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늘 하고 싶었는데 제가 감히 영화를 하게 될까 이런 생각은 못 했던 거 같아요. 근데 이제 광고는 모르겠어요. 매일 TV에서 봐서 그런지 좀 가깝게 느껴져서 광고를 해야겠다 했었는데 졸업하고 나이도 좀 많고 하다 보니 진입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좌절해 있다가 그리고 나서는 영화 쪽에 이제 전혀 네트워크도 없고 졸업을 한 지도 좀 됐고 해서 그냥 완전히 다른 일을 했었어요. TMI지만 영어 강사를 하고. (웃음) 그래서 영어 가르치고 그랬었는데. 그냥 그러다가 그게 어떤 느낌이었냐면 매일이 산다는 느낌보다 그냥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이게 아닌 거 같은데 그래서 정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냥 무작정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몇 개 안 되는 인터뷰처럼 제가 무슨 뭐 굉장히 공을 들여서 마흔부터 써서... 근데 사실 근데 그게 마흔도 아닐 거 같아요. 제가 지금 뭐 전혀 계획이 없이 쓰기 시작해서 나이가 기억이 안 나는데, 이제 오늘 이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되다 보니까 그냥 상징적으로 마흔. (웃음)

 

정지혜 : 마흔이었던 것으로 정리가. (웃음)

 

전지희 : 그전부터 썼던 것 같기도 하고. 제대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그냥 무작정 쓰고 있다가 결과가 안 나타나니까, 안 만들어지니까, 그냥 이야기 쓰기 시작해서부터 만들어지기까지 기간이 길다 보니까 제가 굉장히 막 공을 들여서 인생의 피와 살을 갈아서 쓴 느낌이 됐는데 전혀 그런 건 아니었고. 그러다가 그냥 뭐 특별한 무슨 그것도 없었지만, 그냥 나이도 들고 자연스럽게 내가 언제까지 그냥 막연하게 영화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해서, 누가 못 하게 한 적도 없었지만 제 속마음으로 영화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겠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으로 여기서 떨어지면 그냥 그만둬야지 그러고 이제 냈는데, 명필름랩에서 감사하게도 뽑아주셔서 여차저차 영화가 되어 버렸네요. (웃음)

 

정지혜 : 오랫동안 어쨌든 영화를 꿈꾸다가 작업을 하셨고 관객분들을 만났잖아요. 어떠셨어요. 소회가 좀 궁금하더라고요.

 

전지희 : 소회는 매번 그 스테이지마다 답하는 거 같아요. 일단 됐을 때는 막 정말 속된 욕도 섞어가면서 이럴 수가! 너무 놀랐잖아. (웃음) 이러면서 그렇게 막 놀랐다가, 또 만들 때는 아무래도 경험이 없고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제작 과정에서 힘든 점, 또 제작이 끝난 다음에 개봉이 되기까지도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지금은 조금 그래도 눈에 가림이 좀 벗겨져서.

 

정지혜 : 영화에 대한?

 

전지희 : 아니요. 뭔가 그동안에 힘들었던 걸로 약간 막이 약간 씌워져 있었던 것 같아요. (일동 웃음) 원망 같은 게 있다가도 아, 정말 감사하다, 진짜 지난날을 지금 생각해보면 기적이라고 하기는 좀 과장되겠지만 가까울 정도로 참 신기한 일이었구나. 그래서 뭐 솔직히 말씀드려서 모든 감독, 창작자분들은 그러실 거예요. 만들고 나서 세상에 이렇게 좋은 작품이? (웃음) 이렇게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이 많이 없을 거예요. 근데 여러 가지로 상황 상황도 제 능력상이지만 어떨 때는 좀 그렇다가도, 또 지금은 정말 감사하고 이 경험으로 많이 배워서 좀 더 좋은 연출자가 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지혜 : 기태라는 인물의 이야기. 그리고 사실 벌교라는 공간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기태의 좌절이 있었지만 결국 이 영화의 마지막에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이 기태잖아요. 짧은 얼마간의 시간 동안 기태라는 인물에게는 굉장히 큰 인생의 변화? 변곡점이고 전환이었을 그것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곳의 아주 오래된 낡은 극장에서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 영화 안에서 아주 자극적이고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지만 누군가는 떠나가고 또 누군가는 아프고. 이런 크다면 큰 변화 속에서 사실 가장 큰 변화를 겪는 인물 중 한 명이 기태인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 이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 대해서 어떤 것이 단추가 돼서 기태의 이야기가 나왔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전지희 : 비밀 아닌 비밀은 많은 감독님들이 첫 영화에 자기 얘기를 많이 쓰시는 것 같은데,(웃음) 기태는 서울에 있다가 뭐 말하자면 세속적인 관념에서의 실패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저도 당시에 서울 사람이지만 다른 데 있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기태와 비슷한 감정이 있었었어요. 그러면서 그래, 그런 사람에 대한 얘기를 써보자 그랬는데, 마침 또 그때 당시 뉴스에 한창 사법고시가 폐지된다고 해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막 존치해라 시위도 하고. 그때 그걸 보면서 되게 저분들은 평생 저거만 보고 사셨을 텐데 존치가 맞던 폐지가 맞던 그건 모르겠지만 굉장히 절망적이겠다, 그래서 직업은 그렇게 되고 그렇게 시작됐죠.

 

정지혜 : 벌교라는 공간 사실 궁금했거든요. 감독님은 고향이 어디실까.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곳에서 서울로 가는, 별교가 흔히 땅끝마을과 비슷하다는 인상이 있고 또 굉장히 이 영화의 빛이 굉장히 의미 있게 잘, 그때그때 감독님이 어둠과 빛을 잘 선택해서 공간과 사람들을 보여줄 때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벌교라는 공간이 왠지 빛이 굉장히 중요한 공간이었을 것 같기도 하고 굉장히 서울에서 먼 벌교라는 공간으로 설정하게 된 이유? 그리고 그곳은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으셨을까, 공간과 사람을 어떻게 그리고 싶으셨을까, 여기에 대해서 좀 여쭤볼게요.

 

전지희 : 처음에는 사실 벌교가 배경이 아니었어요. 그냥 막연히 제가 서울을 살다 보니까 일단은 경상도 배제, 이렇게 시작을 해서 전라도 어디가 좋을까 하면서 이제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료조사차 전국의 지금 남아있는 단관극장 중에 옛날식 극장들이 어디에 있나 조사를 하다가 군산에 지금은 없어진 국도극장이 있더라고요. 맨 처음에는 군산 배경으로 쓰고 있었다가 그냥 정말 큰 생각이 없었던 거죠. 근데 사실 기태라는 주인공이 고향을 내려갈 때는 뭔가 자기 마음에 정말 가기 싫은 곳, 왠지 한 번 가면 다시 못 올 것 같은 마음, 뭐 물리적으로도 멀었으면 좋겠고 마음으로도 멀었으면 좋겠는데 우리나라 사실 멀어봐야 제주도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멀어야겠다, 유배를 가는 것처럼. 그래서 군산은 생각보다 서울에서 너무 가까워서 전라도 어디 제일 먼 곳 벌교. 그래서 뭐 딱히 벌교에 대한 뭐 지역적인 특성 이런 걸 생각했던 건 아니고 그냥 먼 곳. 이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정지혜 : 빛 활용을 많이 하신 것 같더라고요. 공간을 쓸 때. 근데 사실 찾아보니까 실내 장면은 광주극장에서 촬영하셨더라고요.

 

전지희 : 처음에 촬영을 하면 사실은 장소 이동이 많이 없는 게 이제 가장 효율적이고 제작비도 아낄 수 있고 여러 가지로 좋은데, 가장 중요한 로케이션 헌팅 1순위는 그 오씨랑 기태가 담배를 피우는 극장 외관이었는데 일단 내부도 같이 고려를 해야 하니까 극장을 막 찾아다녔어요. 생각 보다 저희가 정보력이 많이 없었던 건지 그런 분위기를 내줄만한 장소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그냥 내 외부를 찢어져서 갈 수밖에 없겠다. 그러면 외부는 어차피 배경이 벌교니까 벌교에서 찍자 그렇게 돼서 외부는 벌교. 사실 극장 건물은 아니고요. 지금은 무슨 옛날 금융조합 문화재 건물인데 거기를 극장처럼 꾸며서 찍고 내부는 광주에 올라와서 정말 힘들게 찍었습니다. (웃음)

 

정지혜 : 저도 광주극장 가본 적이 있어서. 정말 오래된 곳이잖아요. 80년이 넘은 곳이어서 그 공간이 주는 그곳의 어떤 아우라가 있고 실제로 같은 곳에서 찍으신 것이 맞다면 마술부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공간도 있었던 기억이 나요.

 

전지희 : . 예전에 분장실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지금은 거기에 원래 간판, 학교도 운영을 하셔서 그런 것들도 보관해놓으시고 지금은 창고처럼 쓰시는데 사실은 그 공간이 가장 중요했었어요. 광주극장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상영관도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오씨가 머무르는 미술실로 쓰는 거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었죠.

 

정지혜 : 기태 역을 맡은 이동휘 배우님이 이 시나리오를 먼저 보시고 원래는 다른 분이 진행을 하려다가 보시고 감독님을 직접 만나야 되겠다고 연락을 먼저 주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이동휘 배우가 가지고 있는 굉장히 어떤 면에서는 유머러스하고 코미디에 좀 최적화되어있는 엇박에 말을 하는 능력이 좋은 것 같은데, 또 반면에 평소 그 배우가 사는 모습들을 간간이 보게 되면 굉장히 수줍음도 많으신 것 같고 낯도 가리고 무심한 듯 표정이 별로 없는 듯한 그런 얼굴도 있어서 배우분이 갖고 있는 본연의 모습과 기태라는 인물이 더 닮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처음에 좀 어떻게 기태라는 인물 이동휘 배우를 만나게 되셨고 제안을 하고 같이 얘기를 하면서 좀 발전시켜 나가셨을까.

 

전지희 : . 알고 계신대로 처음에는 다른 배우님한테 제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두 분이 되게 친한 친구예요. 근데 그분은 스케줄 때문에 참여를 못하시고, 마침 그때 일이 없었던 동휘 씨가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시나리오를 보고 저한테 연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만났는데 저도 만나기 전에는 조금 고민이 많았어요. 배우 캐스팅, 마음속으로 리스트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근데 동휘씨에 대한 이미지는 너무 기태랑 매치가 안 되더라고요. 제 머릿속에서는 또 그것도 그럴 게, 제가 그분 만나기 얼마 전에 우연히 <응답하라 1988>을 본 거예요.

 

정지혜 : 도롱뇽 맞죠? <응답하라 1988>

 

전지희 : 방영할 당시에는 못 보고 있다가 그것도 참 인연인가 그런데 그냥 우연히 본 거예요. 그래서 그게 훨씬 그 인상이 가깝게 남아있는 거죠. 그래도 한 번 만나보자 해서 만났는데 처음에 딱 든 생각은 두 가지였어요. 키가 되게 크네? TV에서 보는 것보다. 그리고 되게 진지하고. 제가 그 또래 배우님들을 많이 만나본 것도 아니지만 그냥 뭔가 제가 가지고 있는 젊은 배우들? 예쁜 배우들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 깨진 게 굉장히 진지하게 정말 배우로서의 작은 영화 큰 영화 따지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영화 있으면 하겠다는 주관 이런 것도 굉강하고 확고하더라고요. 그때는 인상이 너무 다르게 빡 보이니까. 그리고 너무 하고 싶다 그런 열의를 보여주시니까 제작진 입장에서 감사하죠. 그렇게 같이 해봅시다, 했죠. 근데 또 알고 계시는 것처럼 실없고 코믹한 그런 면도.

 

정지혜 : 이 영화에서도 잘 나온 것 같아요. 그런 면들이 과하지 않게.

 

전지희 : 중간중간에도 감독님, 이쯤에서는 조금 웃겨줘도 되지 않을까요, 이런 많은 제안을 했는데 제가 다... (일동 웃음) 광주극장에서 찍을 때 거의 중후반부였는데, 그때쯤 되니까 웃겨도 되지 않을까 해도 안 된다고. (웃음) 200회차가 돼도 안 된다고 못 하게 했는데. 사실 오씨한테 극장 소개받으면서 매표소로 들어갈 때 이렇게 컵을 말아서 쓰러뜨려요. 그것도 사실 동휘 씨가 우겨서 집어넣은 애드리븐데.

 

정지혜 : 애드리브였어요, 그 장면이?

 

전지희 : 애드리브라기보다 슛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하겠다 이렇게 얘기를 했었죠.

 

정지혜 : 선전포고를 하셨군요. 이번만큼은 내가 한번 해보리라. (웃음) 근데 왜 그렇게 웃음에 관대하지 않게?

 

전지희 : 모르겠어요. 제가 그때는 초보로서 경직된 상태였어서 그런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연출적으로 그 캐릭터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또 시간이 지나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정지혜 : 근데 충분히 이 영화에서 웃음을 주는 지점들이 많았고, 그게 어떤 작위적인 설정이 아니더라도 인물들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 속에서 서로를 좀 챙기는 그 과정 속에서 충분히 녹아든 것 같아요. 관객분들도 오늘 좀 많이 편안하게 웃으셨던 것 같아요.

 

전지희 : 감사합니다. (웃음)

 

정지혜 : 근데 특히나 오씨, 기태의 관계가 재밌었습니다. 이 두 분이 뭔가 덤앤더머까지는 아니지만 (웃음) 굉장히 환상의 콤비처럼 서로를 묵묵히 바라봐 주기도 하고 서로를 어느새 친한 친구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한위 배우님이 때로는 좀 조금 더 과도한 액션에 특화된 인물들도 연기를 많이 하셨던 경험이 있으신 거 같은데 이번만큼은 굉장히 절제하면서 밸런스를 잘 맞춰 나가신 것 같아서 두 분이 호흡이 너무 좋으셨을 것 같아요. 현장에서도 그렇고.

 

전지희 : . 사실은 이한위 선생님이 프리 프로덕션 때 일부러 시간을 내주셔서 저희 시나리오 전라도 사투리 대사를 다 가르쳐주셨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가면서 녹음해서. 그리고 또 동휘 씨를 따로 대구로 불러서 특별강의도 해주시고. 굉장히 그 전라도 지역과 그 사투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세요. 그래서 굉장히 또 빡빡하고. 저희가 예산이 넉넉한 프로덕션이 아니다 보니까 지방 촬영도 많고. 선생님은 사실 좀 징그러워하실 수 있는데 저희가 너무 힘들게 해드려서. 근데도 정말 저것이 프로구나. 정말 힘들어하시다가도 딱 슛 들어가면 확 변하는 게 다른 배우들한테는 그런 걸 못 느꼈는데, 이한위 선생님한테서는 많이 느꼈어요. 실제로 되게 웃기세요. 사실 영화에서는 그게 많이 안 나타나는데 제가 좀 그렇게 부탁을 드렸고. 그때 당시에도 선생님 아직도 너무 따뜻함이 남아있는데요, 따뜻함을 좀 빼주세요, 더 츤데레 같이 해주세요, 그랬는데 그게 본성을 어쩔 수가 없나 봐요. 조금씩 묻어 나오더라고요.

 

정지혜 : 신신애 배우님의 경우는 허진호 감독님 영화 속에 등장했던 배우에 대한 리얼한 인상이 남으셨던 것 같아요. 이한위 배우님도 사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도 나오셨고. 또 이 영화에서 사실 90년대를 정말 주름 잡았다고 할 만한 아주 중요한 작품들이 간판 그림으로 보여지는데, 그 영화에 대한 선정도 그렇고 어떤 90년대 혹은 80년대 90년대 영화의 분위기? 그때의 어떤 감성? 이런 것들이 곳곳에 좀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해요. 기태가 리모컨을 엄마가 냉장고에 넣어 놨던 그런 장면, 기태가 그걸 다시 꺼내고. 저는 그런 장면을 왠지 <8월의 크리스마스> 다른 버전, 감독님 식의 어떤 오마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아마도 여기 들어와 있는 어떤 영화들이 감독님이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 아니면 이 영화의 어떤 분위기와 상황들을 좀 아주 짧게나마 대변해 주는 그런 이미지처럼 보였습니다. 감독님께서 그런 영화, 오래된 극장, 그곳에 걸리는 영화들, 90년대의 추억이 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면 어떨까요.

 

전지희 : 사실 90년대 느낌이 나는 거는 사실 의도를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이제 상황적으로 옛날식 극장이기도 하고 화려한 도시가 아니다 보니까 그럴 수도 있는데. 그리고 <8월의 크리스마스> 얘기는 사실 시나리오 때부터 많이 들었어요. 근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데 그걸 쓰면서 전혀 의도를 하지 않았는데 아, 이게 이렇게 나도 모르게 표현이 되나 보다. 안 그래도 시사회 때 허진호 감독님도 오셨었더라고요. 너무 숨고 싶었는데. (웃음)

 

정지혜 : 뭐라고 하시던가요, 보시고 나서는?

 

전지희 : 보기 전에 대기실에서 인사를 나눴는데, 그냥 저는 너무 부끄러워서 안녕하세요, 하고 막 도망갔는데 나중에 신신애 선생님이 초대하신 것 같더라고요. 다음날 신신애 선생님께 문자로 영화 잘 봤다 이렇게 보내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간판에 나온 영화들은 물론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이긴 한데 제가 좋아해서 쓴 건 아니고, 이 영화의 설정상 오씨가 그런 말을 하잖아요. 지금도 간판을 그리세요? 물으니까 그리기는 있던 거 갖다 쓰고. 제가 혼자 생각했을 때 이런 단관극장이나 뭐 이런 멀티플렉스가 들어오면서 없어진 극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마지막으로 걸었을 법한 간판들을 오씨가 모아다가 그냥 보관해놓고 있다가 써먹는 느낌으로. 그런 극장들이 없어지는 시기들이 보통 90년대 후반에서 늦게는 2000년대 초반까지거든요. 그래서 그 기간을 염두에 두고 이 장면에서 나올 뒤에 걸려있을 영화의 제 나름대로의 연출적인 컨셉트에 맞춰서 그 기간에 나온 영화들을 찾은 거죠. 그 시퀀스들에 맞는 어떤 분위기를 대변하거나 주인공한테 하는 얘기라든지 여러 가지 등에서 그렇게 찾아서 넣게 된 거예요. 근데 시나리오 때는 그걸 미리 정하지 못했던 게 저작권 문제가 있어서 한참 알아보고 했었는데, 뭐 그때 프로덕션 들어갈 때까지도 그게 잘 안됐었어요. 그래서 비워 놓고 있다가 나중에 된다 이렇게 해서 요만하게 그린 다음에 CG. <박하사탕> 빼고는 다 CG에요. <박하사탕>만 진짜 실사고 나머지는 한 요만하게 그려서 붙인 거죠.

 

정지혜 : 영화에서 그 대사가 있잖아요 오씨가 영화 관심 없고 안 본 사람들은 네 얼굴 갖다 그려도 모를 거야 라고 하는데 사실 이 영화의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게 <영웅본색>의 왠지 기태의 얼굴을 넣은 것 같은. 굉장히 여러 생각을 하게 하더라고요. 그 마지막 장면이기도 하고 오씨와 나눴던 그 대화도 다시 떠오르고 또 오씨가 했던 말도 떠오르고.

 

전지희 : 근데 그거를 저는 철저하고 치밀하게 계산해서 넣었는데 (웃음) 생각보다 관객분들이 많이 캐치하지 못 하시더라고요. 내가 너무 은은하게 했나? 그런 대사도 그렇고. 마지막에는 심지어 오씨가 입원하러 가기 전날 뭐 그냥 간판을 새로 걸었구나까지 줬는데. 오씨가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기태에게 주는 작은 유머러스한 선물 같은 건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희 그림 하면서 이게 주윤발 얼굴인데, 더군다나 다른 영화도 아니고 <영웅본색>에서 선글라스를 안 끼면 안 된다. (웃음)

 

정지혜 : 누가 봐도 주윤발이 아닌데 지금. (일동 웃음)

 

전지희 : 근데 몰라보시는 분들이 되게 많으셨어요. 그래서 처음에 이제 전주에서 작년에 상영하고 너무 제가 막 전전긍긍 어떻게 다시 해야 돼? 이랬는데 (웃음) 너무 좀 뭐라 해야 하지 왁! 이거 봐 이동휘야! 이런 건 하고 싶지 않았고 그냥 이렇게 은은하게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은? 저한테는 이 마지막 장면이 가장 이 영화의 한방? (웃음) 마지막 장면이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는데 아쉽기도 하고 또 알아보시는 분들은 감사하고요.

 

정지혜 : 관객분들 질문을 좀 받아 볼까요? 궁금하신 거나 아니면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피드백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관객 1 : 제가 이 영화를 개봉했을 때 IPTV로 동시에 봤거든요. TV로 봤을 때랑은 역시 극장 상영 스크린으로 볼 때랑 느낌이 좀 더 세부적인 것들도 좀 많이 보이고.

 

전지희 : ! 내용도 달라요. IPTV에서 보시는 거는 편집이 더 많이 되는 거고요. 지금 보신 거는 감독판인데 극장 외에는 감독판을 보실 수 있는 통로가 현재는 없어요. 지금 이제 홀드백 기간이 아마 12월 지나야 VOD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강렬한... (웃음) 잘 모르겠습니다.

 

정지혜 : 좀 당황하신 것 같은데요. (일동 웃음) 질문을 이어가 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때 보신 거랑 비교하지 않으셔도 되고 오늘 보신 거에 대해서?

 

전지희 :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관객 1 : 아니요! 그 분위기가 더 와닿는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거뿐이고요. (웃음) 그 중간중간 개그 코드가 꽤 있는 것 같은데 마지막 장면까지 막 물 튀기는 장면도 그렇고. 시작부터 원래 의도적으로 그렇게 재미있게 놓고 싶으셨던 건지, 갑자기 이렇게 피식하고 터지게 만드는 그런 개그들을 의도적으로 넣은 건지, 애드리브가 더 많았던 건지 궁금합니다.

 

전지희 : 사실은 그렇죠. 슬프려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 (웃음) 근데 아, 이거는 좀 웃기게 해야겠다 하는 거는 중국집 연출뿐이었고, 그 외에는 제가 그래서 딱히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게 어느 부분이었는지. 그 외에는 왜냐면 저는 그냥 되게 진지하게 쓴 거라서 그냥 그 캐릭터는 그런 사람이라서, 이 부분을 제가 막 독사처럼 웃겨야겠어, 이러면서 쓰지는 않았기 때문에. (웃음)

 

관객 1 : 둘리 같은 건 애드리브인가요?

 

전지희 : ! 둘리요. 둘리는 이것도 긴 얘기가 있는데. 원래 시나리오 상에는 영은이가 술집에서 부르던 노래 그 노래를 이제...

 

정지혜 : 가시나무?

 

전지희 : . 그 노래를 기태가 그날 약간의 뭐 둘이 썸이 시작되는 아리송한 느낌으로 그 노래를 영은이한테 불러준다, 이렇게 되어 있었는데, 그것도 사실 저작권 때문에 노래가 되게 늦게 정해졌어요. 그러면서 이제 가시나무가 됐는데, 왠지 그 차에서 가시나무를 부르는 거는 아무리 그 의도가 그렇다 해도 처질 거 같은 거예요. (웃음) 그래서 동휘 씨랑 상의를 했죠. 뭐 하지? 해볼게요. 이래서, 그런 게 또 전공이잖아요. 이동휘 씨가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그래 그렇게 불러 그랬답니다.

 

정지혜 : 영은이가 등장하는 첫 장면 작정하고 좀 웃기자.

 

전지희 : 사실 작정하고 웃기자는 아니었고 제 나름대로 고결한 연출 의도가 있었는데. (일동 웃음) 그냥 어쨌든 되게 뭐라고 해야 하지, 그냥 별 새로울 것 없는 가족 간의 싸움이잖아요. 근데 그걸 좀 다르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은이 캐릭터와 기태의 어떤 영화에서 상징하는 바도 좀 보여주면서 영은이는 사실 뭐 케세라세라 그냥 되면 좋고 아님 말고 걸리는 게 없이 자유로운 사람이고, 기태는 항상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고 뭔가 이런 느낌인데. 그냥 관객들한테 그런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냥 아, 저기에 몰입을 해서 그래 우리도 저렇게 싸우지,이런 느낌보다는 조금 한 발 더 떨어져서 우리가 싸우면 남들은 저렇게 볼까? 이런 느낌으로. 자기네들은 너무 심각한데 좀 우스워 보이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했는데, 사실 뭐 여러 가지 장소 대여 시간이나 뭐 여러 가지 저희 장비의 한계와 제가 시나리오에서 생각한 것처럼 100%는 아니었지만, 배우분들이 합을 잘 맞추셔서. 돌발 상황이 일어나는데, 특히 상희 씨가 그걸 NG를 끊지 않고 그냥 갔거든요. 제가 마스터로 다 찍어보자 했었는데, 근데 그 느낌이 괜찮았었어요. 그래서 그냥 그거를 쓰느라고 또 거기에 맞는 타이트 샷도 따고 해서 만들었죠.

 

정지혜 : 이상희 배우님이 워낙 또 순발력이 좋으시잖아요.

 

전지희 : , 되게 순발력이 좋고.

 

정지혜 : 유머가 있으시군요.

 

전지희 : , 상희 씨 좋아해요. (웃음) 너무 좋았어요.

 

정지혜 : 이번 이 영화 안에서의 캐릭터도 그렇고 약간 좀 비현실적인 인물 같기도 한 느낌이. 어디서든 등장하고 늘 기태 옆에 있고 어디에나 있고 아니 또? 또 영은이야? (웃음)

 

전지희 : 그걸 처음부터 의도를 한 거였고, 그리고 그게 또 가능했던 게 어쨌든 그 장소의 특성상 서울처럼 넓은 곳이 아니니까. 좁은 데서 그렇게 악착같이 살다 보면 홍반장처럼 어디에나 다 있을 거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그렇게 만들었죠.

 

정지혜 : 또 질문이 있으신 분 계시나요?

 

관객 2 : 저는 이번에 이제 감독판 영화가 신영에서 GV행사가 있다고 해서 오늘 처음 관람을 했는데요. 안 봤으면 후회할 뻔 했어요. 너무 잘 봤습니다. 너무너무 마음이 따뜻하고 위로를 받는 느낌을 계속 영화 보는 내내 느꼈거든요. 저는 기태가 영은이랑 나란히 문 닫은 카페에서 앉기 전에 창문 그림자라고 해야 하나요? 그 장면이랑 배 타고 엄마랑 나란히 앉기 전이었나요? 그때도 창문 그림자가 나오는데 그 장면이 계속 남아 있어요. 너무 기억에 남고 그게 어떤 의미였을지도 궁금하지만, 그냥 그 장면이 저한테 너무 좋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고요. 그리고 진짜로 궁금한 건 마지막 장면에 국도극장을 열고 기태가 꽃을 찍고 이렇게 문자를 보내잖아요. 전 그 대상이 누군지 너무 궁금한 거예요. 처음에는 영은이한테 보내는 건가? 하다가 저렇게까지 미소를 짓고 피식거리는데 분명히 울었는데 영은이한테 저렇게 보낼 수 있을까? 그럼 오씨 아저씬가? 아니면 둘 다 보냈을 수도 있겠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는데 혹시 이 장면에 감독님의 의도가 있었는지 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전지희 : 저는 어떻게 보시든 그건 관객분들 몫이니까. 근데 저한테 물어보신다면 저는 영은이한테 보낸 걸로. 왜냐하면 그 전날 영은이가 남산도서관에서 웃긴 사진을 보내서 자기도 사진을 하나 보내려고 하다가 그만두는 걸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질문이 뭐였죠?

 

관객 2 : 기태가 문자를 보낸 사람은 누구였을까.

 

전지희 : , 영은이. 오씨는 핸드폰이 없어요. 사실은 핸드폰이 없다는 장면이 실제로 영화에 있어요. 부동산 성씨가 나가면서 핸드폰 좀 만들어라 이 야만인아, 이러면서 나가는데 그 장면이 잘렸어요. 그래서 오씨는 핸드폰이 없고, 그렇다고 또 뭐 오씨랑 알콩달콩한 사이는 아닌 거 같고. 그냥 어쨌든 영은이가 사실은 먼저 고백을 한 셈이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자기 마음속으로는 한바탕 그 전날 폭풍이 일었지만 사실 영은이 만큼은 아니죠. 여러 가지 감정이 쌓여 있었는데 영은이 사진으로 팍 터져버린 거죠. 그 다음에는 이제 좀 소심하고 못난 놈이었던 기태가 그 정도로 마음은 열 수 있지 않았을까, 영은이한테. 그래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영은이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그래요. 엄마도 그렇고 오씨도 그렇고. 갔지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잖아요. 근데 영은이는 특히나 좀 더 열어두고 싶었어요, 긍정적인 방향으로. 걔의 성격상 뭐 갑자기 어느 날 내려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럴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해서. 그리고 그 창문 그림자들은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말하자면 정서 샷이죠. 그 씬의 정서와 기능적으로는 시간의 경과. (웃음) 그렇게 우연히 그게 창문이 되었던 건데 크게 의도한 바는 없습니다.

 

관객 3 : 감독님 재밌게 잘 봤습니다. 저도 오늘 처음 봤는데요. 감독판 (VOD) 나오면 몇 번 더 보고 싶습니다.

 

전지희 : 감사합니다.

 

관객 3 : <영웅본색> 간판은 아마 세대가 안 맞아서 잘 못 알아보셨을 거 같아요. (웃음) <영웅본색>을 아는 분들이 아마 그래도 연세들이, 연세라고 말하기는 뭐 하지만 그래도 주로 독립영화 보러 오는 연배들은 아니어서 몰라보지 않았을까. 놀랍게도 저는 알아봐서 (일동 웃음) 그렇고요. 저는 사실 영화 보면서 외로움에 대한 거를 좀 많이 생각을 했었습니다. 특히 이제 각자의 외로움이 있는데 극장 앞에서 오씨 아저씨랑 기태랑 어머니랑 셋이 나란히 쪼르르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들이 각각의 외로움을 갖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 같은. 여러 부분에서 그런 게 보이지만 또 대사에서도 서울이 이제 무섭고 외롭다고. 여자친구 같이 있을 때 같이 외롭다고. 영은이가 있잖아, 그러니까 같이 외롭겠죠. 그 얘기 하면서 외로움이 뭘까 생각을 좀 더 해봤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그때 감독님이 갖고 계신 어떤 외로움의 실체 그런 게 있으셨는지에 대한 거 하나 하고요. 그다음에 결국은 영은이가 내려올까요, 아니면 기태가 올라갈까요? 그게 궁금합니다.

 

전지희 : 그건 정말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걔네만 아는. (웃음) 그 모든 걸 전부 열어두고 싶었어요. 그냥 기태도 그렇게 두려운 서울이지만 뭐 못 갈건 또 뭐랍니까? 올라갈 수도 있고요. 아니면 내려올 수도 있고. 근데 이제 저도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집을 떠나서 타지에 오래 있었었는데 그러면서 느껴지는 것들이 확실히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내가 익숙한 사람들도 없고 늘 혼자 일하는 외로움? 근데 그게 나이가 좀 들면서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내 옆에 누가 없고 그래서 상황의 외로움보다, 그 신신애 선생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사람은 혼자 왔다 혼자 간다고. (웃음) 근데 저도 왠지 그게 어느 나이에서부터인가 많이 생각하게 돼요. 여기서 말하는 외로움은 그런 느낌이거든요. 처음에 기태가 그렇게 싫은 고향에 내려왔지만, 또 지내다 보니까... 왜냐면 사실은 말이야 맨날 서울 간다 간다 하지만 서울이 너무 가기 싫은 무서운 곳인데, 자존심 때문에 여기서 익숙해지고 잘 산다는 게 자존심 상하죠. 근데 살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너무 잘살게 되거든요. 왜냐하면 주위에 친구 같은 오씨도 생기고 영은이도 생기고. 근데 결국에는 그런 거 같아요. 그런 어떤 상황과 환경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게 영원하지 않고 내가 만약에 주위에 누가 있어서 행복하고 없으면 불행하고 이렇게 되면, 저는 라는 개인은 평생 그렇게 외부에 딸려 갈 수밖에 없는.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거는 그 근본적인 외로움을 직시하고, 거기에서 좀 자유로워질 때는 누가 오든 가든 외로움이라는 게 이전의 그 외로움이 아닌 느낌일 거다 ,이런 걸 좀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제 제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떤 분은 야, 다 떠나는데 오씨까지 가야 돼? 이러면서 너무 매정하게 다 떠나보냈다. 근데 일부러 제가 그렇게 만든 거거든요. 기태가 결국은 물론 기태의 고민이라는 게 외로움뿐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기 자신이 나 홀로 그 들꽃처럼 오롯이 서 있을 수 있을 때, 혼자 살아갈 수 있을 때 어떤 상황에서 건 그럴 때는 흔들리지 않고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이제 그렇게 만든 거죠. 그냥 그런 생각이 어느 때서부터 있더라고요.

 

정지혜 : 아까 감독님이 마지막 장면 굉장히 감독님으로서도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해 주셨는데, 영화에서도 사실 꽤 롱테이크로 쭉 거의 기태가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사진까지 전송했을 거 같고 문자도 보냈을 거 같고 꽃도 보고 이 모든 것을 그대로 가만히 지켜봐 주잖아요. 사실 굉장히 긴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영화상으로 봤을 때 감독님이 선택을 할 때는 이견도 좀 많았을 거 같고. 그렇게 긴 장면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에 카메라가 서서히 움직이면서 극장의 전경을 보여주고 <영웅본색>까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 장면으로 끝나는 것은 분명 감독님이 굉장히 공을 들이고 고민을 많이 해서 찍으신 샷이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장면을 좀 여쭤봐야 할 것 같아요.

 

전지희 : 일단 시나리오에도 롱테이크 이렇게 빠지면서 결국에 드러나는 간판, 이렇게 해서 끝나게 되는데. 사실 시나리오에서는 롱테이크라고 써놔도 그게 사실 정확하게 몇 분 몇 초 이렇게 쓰지 않는 이상 제작자라든지 이런 분들이 그런가 보다... 막상 찍어 왔는데 진짜 길게 찍었잖아요. (웃음) 그때 저희가 이게 원테이크라서 사실은 싫어하셨어요. 이제 와서 얘기지만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했지만, 너무 기니까. 어떤 후반 스태프분은 내가 왜 이동휘 담배 피우는 걸 이렇게 오래 보고 있어야 되냐고. (웃음) 근데 뭐 자를 수가 없으니까 저희가 컷어웨이도 안 찍었고. 근데 그게 제 의도였어요. 그 공간에, 그 시간에 바람, 햇빛 모든 그런 인연은 그때뿐인 거잖아요. 똑같이 내가 나와서 똑같은 장소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해도 어제랑 오늘은 전혀 다른 거니까. 그냥 오롯이 그 순간에 기태가 느끼는. 전혀 비슷하지는 않은데 그냥 제가 생각했던 건 <녹차의 맛>이라고. 혹시 보신 분들 계시나요? <녹차의 맛>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는데 어떤 아기가 수풀 속에 버려진 철봉에서 구르기를 맨날 해요. 맨날 연습하다가 어느 날 딱 되거든요. 그러면 이제 그때 온 우주에서 꽃이 피어나요. 깨달음을 딱 얻는. (웃음) 그런 느낌으로 뭔가 그 순간에 기태가 그전에 모든 번뇌와 갈등을 조금은 알게 된 느낌으로 살짝 웃기도 하고 담배를 혼자 피우지만 외롭지 않아 보이게끔 하고 싶었던 연출 의도였죠. 근데 이거는 여담이지만 사진을 찍다가 말고요. 이렇게 찍으려다가 에이 이거까지는 오버다 하면서 안 찍어요. 카톡만 하는 걸로.

 

정지혜 : 그런 거 같지 않으셨어요? 포즈가 좀 끊겨서 바로 넘어가는.

 

전지희 : 이렇게 내려올 때 찰칵 소리가 나요. 일부러 믹싱할 때 그렇게 효과음을 넣었고요.

 

정지혜 : 그때 아이들 소리도 들어간 거 같은데, 그곳에 있는 소리였나요?

 

전지희 : 아니요, 전혀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가 초반에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제작비가 많이 없다 보니까 보조 출연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게 또 실제 찍었던 계절이랑 영화상의 계절이 달라서 그냥 자연스럽게 실제 행인들을 또 촬영할 수가 없었어요. 웬만하면 통제를 하면서 하는데 길에 아무도 없는 거예요. 보조 출연이 그렇게 제작비가 많이 드는 거였더라고요. 얼마 전에 <제이슨 본>을 보면서 컨퍼런스 장면, 와 정말 돈 많이 들었겠다. (웃음) 진짜 많이 들었더라고요. 좀 그렇긴 한데 그때 그 바이브를 만들고 싶어서 제가 효과음을 다 가지고 왔죠.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 바람, 온갖 소리를 동원을 해서 차 보이게 하느라고.

 

정지혜 : 이 영화는 감독판이지만 개봉 버전이 두 가지였잖아요. 10여 분의 러닝타임 차이가 있기도 한데 어쨌든 감독판이라고 명명하신 만큼 두 편을 다 동시에 보면 좋겠지만, 조금 더 이 영화에 아마도 감독님이 하고자 했던 바가 더 들어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한가요?

 

전지희 : , 물론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감독판을 봐주시는 게 훨씬 영화를 더 온전히 이해하실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 안 하시면 뭐. (웃음)

 

관객 1 : 시간이 많이 지나서 사실 오늘 처음 보는 것처럼 보긴 했어요. 약간 감정은 살아났는데 그때 그 따뜻하고 위로해 주고 이랬던 감정은 느껴지고 그러긴 하는데.

 

전지희 : 이게 제가 제 영화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아까도 얘기했듯이 너무 은은하게 (웃음) 해서 그런지 사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두 번 볼 때 또 다르고 세 번 볼 때 또 다르다고. 그래서 여러 번 보시면 (일동 웃음) 혹시 못 찾으셨던 것들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정지혜 : 관객분들이 여러 번 보게끔 하시려고 감독님이 굉장히 철저하게 그림을 그리고. (일동 웃음)

 

전지희 : 그런 걸로.

 

정지혜 : 뭔가 첫 번째 영화를 만드는 과정도 힘이 드셨을 거 같고 또 아마도 짐작하기에는 두 가지 버전들 사이에서 고민도 더 깊으셨을 거 같아요. 은은하다는 이야기를 오늘 많이 해주셨는데 이 영화, 감독판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전지희 : , 아마 지금은 보실 수가 없으실 거예요.

 

정지혜 : 정말 소수의 아주 귀한 관객분들과 함께 영화를 봤던 시간이었고, 이후에도 또 이 영화를 좀 더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관객분들을 너무 못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지희 : 개봉을 제작사에서 결정을 하다 보니까 당연한 거 같아요. 극장 입장에서는 그 리스크를 감수를 하면서 굳이 걸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저도 경험이 없으니 잘 모르고 그냥 그때는 그런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생각을 안 하고, 그리고 제가 결정권이 있지도 않았고. 그렇게 동시 IPTV, VOD 다시 보기 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사실 가장 손쉽게 가까이 갈 수 있는, 물론 집 가까이 이런 신영 같은 극장이 있는 분들은 행운이지만, 멀티플렉스에서 전부 다 상영 안 하게 된 거예요. 너무 감사하게도 신영 같은 독립예술극장에서는 열어 주셨어요. 사실 처음에 VOD도 감독판까지 다 올라간다고 했었어요. 시간차를 조금 두고. 근데 나중에 전해 듣기론 어떤 이유에선지 감독판은 안 하게 됐다고. 제 입장에서는 굉장히 청천벽력 같은 소린데, 그거를 개봉할 때 한참 GV 돌고 있을 때 들었어요. 아 진짜로 정말로 감독판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는 정말 극장 내려가면 당분간 전혀 없어지겠구나. 그래서 되게 그랬던 시절이 있었네요.

 

정지혜 : 그래도 이번 기회로 좀 관객분들 만나시고 오늘 또 많이들 좋은 피드백을 주신 것 같아요. 힘을 얻어서 올라가지 않으실까 싶은데요. 늘 마지막 질문은 항상 다음 영화를 어떻게 힘을 좀 얻으셔야 할 텐데 일단 동력이 좀 생겨야 추진을 하실 수 있으실 거 같아요.

 

전지희 : 지금 이렇게 영화계 상황들을 보면 너무 암담하잖아요. 지금 코로나도 그렇고 그냥 다음 영화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웃음) 암튼 저는 어쨌든 더군다나 현실적으로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국도극장> 포털에 검색해보면 그냥 개봉판 <국도극장>이 나와요. 그러면 거기에 관객 수가 300명인가 그렇게 나와요. 근데 감독판을 치면 또 다른 페이지가 열리거든요. 이게 합쳐져 있는 게 아닌데 쉽게 말하면 정말 그냥 저는 망한 영화의 감독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모르겠어요. 다음이 있을까? 근데 그냥 열심히 써서 좋은 시나리오를 써내는 게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쓰고 있고. 아마 가깝게는 단편을 찍게 되지 않을까.

 

정지혜 : 오늘 영화 잘 봤습니다, 감독님. 다음 영화 기다리겠습니다. 오늘 끝까지 함께 이야기 나눠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마지막 인사 짧게 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전지희 : 오늘 평일 월요일 피곤하실 텐데 저녁 시간에 이렇게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언제나 힘이 됩니다. 안녕히 잘 돌아가시고 다음에 또 뵐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동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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