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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 이인의 감독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1. 4. 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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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2021.02.27.

 

정지혜 프로그래머 진행

이인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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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방금 소개받은 정지혜고요. 오늘 진행을 맡았습니다. 오늘 방금 함께 보신 작품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이 영화를 연출한 이인의 감독님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이인의 : 안녕하세요.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연출한 이인의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정지혜 : 오늘 이 주말 귀한 시간 극장에 와주신 관객분들 반갑고 감사합니다. 감독님께서 오늘 신영극장 처음 오셨다고 들었어요. 극장 안에 들어와 보니까 느낌이 어떠세요?

 

이인의 : 제가 생각했던 느낌이랑은 조금 다른데 되게 아늑하고 좀 뭐랄까요? 요즘 멀티플렉스의 느낌이 아니라 예전에 한 80, 90년대 그런 느낌이 나서 저 개인적으로는 되게 좋아요.

 

정지혜 : 마침 밖에 보니까 왕가위 감독 영화 트레일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왕가위 감독님 영화를 보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고 하셔서 좀 감회가 새로울 거 같습니다.

 

이인의 : 그렇죠. 제가 고등학교 중학교 때, 제가 지금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저 유년기일 때 한참 왕가위 감독님뿐만 아니라 오우삼 감독님 등 홍콩 영화가 붐이었던 세대에 영화를 보면서 자랐었고 또, 왕가위 감독님 영화 보면서 나도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영화에 맨 처음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정지혜 : 아까 잠깐 말씀하셨는데. 오늘 지금 이 영화 보시면서 약간 대비랄까요? 왕가위 감독과는 완전히 좀 다른 스타일이기도 하고, 감독님만의 확실한 색깔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해서. 아까 그렇게도 만들고 싶다 하셨는데 그 방향은 아닌 거 같다고 하셨어요. (웃음) 근데 이 영화는 확실히 이인의라는 감독님이 도대체 어떤 분일까 너무 궁금해지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한 편의 영화를 보면 어떨 때는 배우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이거 시나리오를 어떻게 썼을까, 촬영 진짜 멋지다, 미술 독특하다, 음악이 좋네,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그 영화의 어떤 장점, 특징, 특성들을 파악하게 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이인의 감독님이 참 궁금해졌어요. 전 개인적으로 감독님의 전작 옴니버스 영화 개봉할 때 본 적이 있었는데 아실지 모르겠지만. 오늘 보신 이 영화의 짧은 버전, 단편 버전으로 옴니버스가 만들어진 적 있었어요. 근데 그 작품과 지금의 결과물은 규모, 장편이라는 것도 차이가 있지만 아마도 시작하는 출발점이 조금 달랐을 거 같긴 하더라고요. 그때 잠깐 뵀을 때와 이번 작품을 통해서 감독님을 생각했을 때 관심의 궤적이 계속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대체 이 작품은 어떻게 만들게 되셨을까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일단 감독님께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제목도 신선한 이 영화가 어떻게 출발하게 됐는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된 것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이인의 : 제가 이제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계속 갖고 있었고. 사실은 이게 제가 픽션 영화도 많이 작업을 했고, 다큐멘터리도 10년 정도 작업을 했는데요. 어떻게 보면 중고 신인일 수도 있는데. 열세 번째 연출 작품이에요. 제가 뭐랄까 처음 개봉을 장편으로 해서 그렇지 사실은 영화를 그전부터 오랫동안 하고 있었는데요. 이 작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냐면 제가 2008, 2009년 그때까지는 계속 상업 시나리오 작가로 일을 하다가 제 아는 친한 영화하는 형이... 영화 인트로 보시면 민규한테 (아는 형이) 하루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잖아요. 그 역할을 했던 분이 실제로 계세요. 강수원 피디가 너 내일 일 없으면 하루만 나와서 촬영 도와줘 해서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간 곳이 콜트콜텍 대전 공장이었던 거예요. 근데 제가 대전공장에 가서 인터뷰 촬영을 하기 전까지는 노동이나 투쟁, 다큐멘터리 이런 이슈에 대해 전혀 아무 관심이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어요. 그날 하루 딱 처음 갔는데 영화 맨 처음 보면 민규가 노동자와 인터뷰를 하잖아요. 그때가 제 상황이 거의 그대로 있어서, 논픽션이라는 거. 그래서 그날 원래는 하루 도와주러 간 거였는데 너무 뭐랄까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그 현장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 형들을 인터뷰하고 그분들이 투쟁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촬영하고 지켜보는 게 뭐랄까 그전까지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였기 때문에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하루 한 번 가고 두 번 가고 세 번 가고 하다 보니까 그게 삼 년 되더라고요, 그리고 콜트콜텍 작업 말고 저 개인적으로도 장편 음악 다큐멘터리 한 작품 준비하고 있었고. 그래서 원래는 사실 계획에 없었던 일인데 다큐멘터리라는 세계가 저한테 처음 이렇게 접하고 너무 즐겁고. 그리고 영화에서 다뤘던 이슈들 세 가지. 실향민 이슈, 콜트콜텍 노동자 이슈, 해외입양 이슈 다 그게 제가 근 십 년 동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나씩 해봤던 이슈들이에요. 그걸 이제 다 제가 관심 있었던 이슈들이었으니까 그걸 원래 전공인 픽션을 살려서 한번 만들어보자 이런 생각으로 작업을 하게 됐죠.

 

정지혜 : 그 전사를 들어봤을 때는 이 작업이 감독님에게는 한 단락을 맺는 듯한 작업이었을 거 같고, 다음 챕터를 준비하는 시기에 만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노동 투쟁 현장에 가본 적이 없었다라고 하지만 잠깐 시간 되면 와서 도와줄래?’라고 하는 지인이 있었다는 것은 그런 문제에 어느 정도 관심 있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계속 관계를 맺어왔다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때를 시작으로 다큐멘터리 작업들을 이제 말씀하신 입양아 문제라든지 실향민 문제라든지 이런 것들을 관심 있게 쭉 팔로잉해오신 거잖아요. 영화에서 중요한 태도이기도 한데. ‘관계라는 것이 감독님에게는 항상 감독님 영화에서도 중요한 테마인 거 같아서, 어떤 관계들을 맺고 (살아)오셨을까 이분이. 어떻게 현장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서 작업을 해오는 것일까 그런 부분이 궁금해졌습니다.

 

이인의 : 관계라는 게 이제 여러 가지 측면, 방향에서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저희 영화에서 생각했던 관계는 뭐냐면, 사실은 픽션 영화에 이슈가 이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잖아요. 보통 한 가지 이슈로 영화를 진행하는데 이게 저희 영화의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는데 이슈가 굉장히 많이 나와요. 세 가지나. 근데 그게 물론 저도 픽션 전공했고 이렇게 하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가 말하고 싶었던 관계는 뭐냐면, 실제 독립 다큐멘터리 만드는 현장을 저는 그대로 살리고 싶었거든요. 근데 한 오 년 전, 십 년 전 독립 다큐멘터리 현장이 어땠냐면, 사실은 독립영화 하시는 분들이 다 제작비가 많이 없잖아요. 특히나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감독 혼자서 촬영하고 감독 혼자서 편집하고 감독 혼자서 섭외하고 감독 혼자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혼자 할 수 없는 부분들, 촬영 지원이나 차량 지원이나 이런 식으로 누가 좀 도와주면 좋은데 그게 이제 힘들 경우엔 어떡하냐면, 영화상에 웨이필름이라는 그 다큐멘터리 단체 창작집단이 있는데 그것도 사실은 그 십 년 전에 실제로 있었던 웨이필름이라는 창작집단이었고, 거기에 그 <기타(其他/Guitar) 이야기>(2009), <꿈의 공장>(2010) 찍으신 김성균 감독님이나 <오월>(2010) 찍으신 김태일 감독님이나 그 속에서 저는 막내였었고. 그런 집단이 있던 건 서로 필요해서 존재했던 거랄까 품앗이를 해야 되잖아요. 내 영화 촬영할 때 그 형들이 와서 촬영을 도와주고, 그 형들이 다큐 찍을 때에는 제가 가서 품앗이하듯이 서로 이렇게. 되게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의 작품을 도와주면서 관계가 형성되었고. 그러다 보니까 원래는 제 다큐만 하면 되는데 성균이 형 작품 뭘로 할까? 콜트콜텍 아이디어 내고. 다른 형 작품 도와주러 놀러 갔다가 해외입양 이슈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이런 식으로 서로 품앗이를 하다 보니까 너무 자연스럽게 제 작품이 아닌, 다른 사람 작품에도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잖아요. 어떻게 보면 당시에 저나 다큐 같이 했던 형들의 커뮤니티 느낌이 그랬어요.

 

정지혜 : 카메라도 그렇게 현장에 돌고 돌고 했다고 들었어요. 감독님 현장에 있던 카메라가 한동안 감독님이 작업하시는 현장에 있다가 또 어느새 다른 현장에 가 있고. 그렇게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분들에게는 품앗이 문화가 굉장히 중요하고, 그러면서 관계가 만들어지고 작업도 이어지고 공동체가 유지되었던 여전히 그런 문화가 남아있기도 하지만, 많이 없어지기도 했잖아요. 감독님의 어떤 한때를 같이 했던 분들이 이 영화 곳곳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이 콜트콜텍이나 실향민, 입양 문제를 극영화라는 형식으로 만드셨어요. 사실 영화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조만간 아마도 보시는 기회가 있을 거 같아요. 콜트콜텍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들이 꽤 만들어졌거든요. 이수정 감독님의 <재춘언니>(2020), 이란희 감독님의 <휴가>(2020) 이런 작품들도 있고. 그 와중에 감독님 작품은 다큐를 베이스로 하면서도 극영화라는 외피를 두르고 또 그 안에 다큐멘터리의 어떤 요소들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적극적으로 끌어안은 경우인데 굉장히 과감하기도 하고. 감독님 나름 어떤 시도들을 하신 거 같아요. 형식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이인의 : 일단 콜트콜텍을 간단히 설명 드리면 2007, 2008년에 처음 투쟁 시작했는데 기존 한국 노동의 어떤 투쟁 역사에서 보면 콜트콜텍이 지금 보면 14년 넘게 됐고 아마 지금까지 최장기 투쟁일 거예요. 기록상으로. 다른 투쟁 현장과 조금 달랐던 점은 뭐냐면 문화투쟁을 같이 했어요. 문화인들이 주축이 돼서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함께 연극, 영화, 미술, 사진, 판화 거의 전방위적으로 소설가, 시인들,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같이 콜트콜텍 문화투쟁에 동참해서 작업을 같이 하고, 그다음에 홍대의 클럽 이라는 곳에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뮤지션들이 모여서 기금을 마련하는 공연도 해주었고. 그렇게 굉장히 문화예술인들이 투쟁에 함께 참여하면서 그때 저희가 했었던 게 뭐냐면 이 노동자 이슈를 모르는 분들이 조금 더 쉽게 이 문제에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다 했어요. 문화투쟁을 한 이유가. 왜냐면 기존에 어떤 노동 투쟁이라고 생각하면 점거 농성이나 집회 같은 거에서 조끼에 빨간 띠,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다가오기가 조금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걸 진지하게 접근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러니까 문화투쟁을 동반해서 조금 더 재미있게,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게 만들어보자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죠. 그래서 각자 본인들 분야에서 자기들 방식으로 노래를 만든다거나 미술 작업을 한다거나 저는 또 전공이 픽션이니까 픽션으로 해 보자는 생각으로 콜트콜텍을 작업한 거고요. 그리고 이건 결국 제일 처음 아까 말씀하신 거는 그거인 거 같아요. 그때 문화투쟁 당시에 각자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보자. 대신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편하게!

 

정지혜 : 영화 내에서도 그 현장을 이해하고 접근해볼 수 있게끔 하는 게 중점적이었던 방향인 거 같은데. 조금 더 여쭤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극영화라는 형태였고, 감독님이 이전 다큐멘터리 현장에서 찍은 영상들이 중간중간 들어가 있기도 하고. 그런 방식이 (전에)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갑자기 어떻게 보면 과감하다고 했던 것은 자칫 잘못하면 그 톤이 들쭉날쭉하다 보면 뭐지? 이걸 넣고 싶어서 이 장면을 연출한 걸까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근데 오히려 저는 그런 약간의 다른 화면이 들어가면서 이 영화에 생동감을 만들어내는 거 같더라고요. 어떻게 넣을 것인가. 어떤 장면을 얼마만큼 넣을 것인가 이런 것들이 감독님에게는 좀 중요한 부분이었을 거 같아요.

 

이인의 : 그렇죠. 이게 어떻게 보면 되게 이야기적으로 위험해질 수 있고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촌스러울 수도 있고 이게 뭐야 갑자기이렇게 생각하게 될 수도 있고. 그 부분은 저뿐만 아니라 같이 준비했던 제작 피디, 연출팀과 회의를 많이 했어요. 근데 이제 저는 사실 송전탑 장면 하나는 무조건 넣으려고 했어요. 왜냐면 그리고 나머지 다큐 장면들은 저나 김성균 감독님이 당시에 촬영했던 소스들이 맞는데 송전탑 장면 같은 경우는 사실은 대전 콜텍 공장에서 일하시던 노동자분이 본인 핸드폰으로 찍은 거예요. 그래서 되게 많이 떨리고 왔다 갔다 하고 정신이 없고 그렇긴 한데. 근데 어떤 다른 사람들이 찍고 제가 찍든 누가 찍든 비교를 해봐도 그거만 한 장면이 없더라고요. 절박함이든 생동감이든 뭐든지 간에. 그래서 음 다른 거는 모르겠고 다른 장면들은 픽션으로 재현을 해낼 순 있어요. 근데 그 컷만큼은 재현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부분은 제작팀, 연출팀과 많이 회의를 하고 고민도 해봤는데 이건 넣는 게 맞을 거 같다. (결론을 냈고)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죠.

 

정지혜 : 곳곳에 그런 현실과 영화 사이의 간극이 아주 드러난 그런 장면들이 꽤 많았던 거 같아서. 그런 면을 고민 많이 하셨을 거 같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앙상블 영화인 것 같았어요. 배우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고 워낙 다루고 있는 주제도 많지만 그만큼 인물도 많잖아요. 이렇게 많은 인물들을 어떻게 다 조화롭게 만들어낼 것인가, 이게 관건이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사실 오하늬 배우님은 그래도 독립영화, 상업영화 많이 하셔서 봤는데 은해성 배우님은 이번에 처음 봤고, 이서윤 배우님도 연기 자체는 처음이시라고 하니까 거의 새로운 얼굴들이 눈에 띄었는데 이분들의 합을 만들어나가는 감독님의 방법이 좀 있었을까요?

 

이인의 : 사실은 오하늬 배우는 경험도 많고 잘하는 배우라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말 걱정을 안 했어요. 왜냐면 워낙 잘하는 친구고 실제 현장에서도 제일 프로페셔널한 모습도 많이 보여줬고. 그래서 오하늬 배우는 솔직히 크게 무슨 걱정 없이, 오히려 이제 오하늬 배우가 모니터에 잡히면 마음이 되게 편안해지더라고요. 뭘 해도 잘하는 친구니까. 근데 이제 은해성 배우하고 이서윤 배우 같은 경우에는 영화 촬영 자체가 처음이었어요. 두 친구 다. 그래서 사실은 해성 배우하고 서윤 배우 같은 경우에는 촬영장에서도 내내 사실 오하늬 배우를 지켜봤을 때랑은 분명히 느낌이 다르죠.

 

정지혜 : 약간의 긴장감도 느끼셨을 거 같아요.

 

이인의 : 그렇죠. 다만 좋았던 건 뭐냐면 은해성 배우랑은 영화 촬영 6개월 전부터 캐스팅이 되게 일찍 됐어요. 그래서 6개월 동안 그냥 별일 없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해성 배우가 사무실에 놀러 오고 저랑 같이 얘기도 많이 나누고 같이 책이나 다큐멘터리 보면서 레퍼런스 얘기 많이 하고 중간에 이제 콜트콜텍 집회 있으면 같이 현장에도 나가 보고. 자꾸 물어보는 거예요. 저한테 귀찮을 정도로. “다큐가 뭐예요?” 계속 물어보고 그러다가 제가 그냥 네가 한 번 찍어봐그래갖고 카메라 들려줘서 집회 현장에 나가서 본인이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 역할로 촬영도 해 보고 그런 식으로 했는데 이제 나중에 지나고 나서 든 생각이 뭐냐면 영화 내에서 보면 민규가 다큐멘터리, 한나와의 관계에서 되게 처음 가나다의 순간에 있는, 어떤 그 순간을 연기했어야 했는데 그 당시의 해성 배우가 실제로 영화라는 매체, 다큐멘터리라는 매체 자체를 처음 알아가는데 본인이 그걸 신나하고 재밌어했던 거죠. 그런 어떤 감성 그 자체로 촬영에 임했기 때문에 사실 연기가 아니라 본인이 정말 가나다였었던 거 같아요.

 

정지혜 : 은해성 배우는 굉장히 호기심이 많으신 거 같고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이 영화에서는 좀 다르지만 자료들을 찾아봤을 때에는 오히려 그런 유연함, 굉장히 말랑말랑하게 열려 있는 상태에서 감독님과의 작업이 본인에게도 좀 재미난 순간이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독님은 (다큐멘터리를 하면서) 뭐가 그렇게 재미있으셨나요? (웃음) 사실 다큐멘터리 현장은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한번 발을 잘못 들이면 정말 나올 수 없는 늪처럼 계속 작업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극영화는 조금 더, 물론 이제 데드라인이 있는 건 마찬가지이겠지만 정말 정해진 드라마를 완수해내는 게 있다면 반면 이건 정말 열려 있고 한도 끝도 없이 갈 수도 있는 건데. 그럼에도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으셨을까요. 감독님의 경우는?

 

이인의 : 아주 기본적으로는 다큐를 참 여러 편, 여러 장르 많이 해봤는데 제일 좋았던 건 실향민 다큐멘터리 작업할 때였어요. 왜냐면 그 때 이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실향민분들이 보통 80대 이상의 고령자분들이시잖아요. 할머니 할아버지들 만나서 100분 정도 인터뷰했는데 한 분 한 분이 다 뭐랄까 6.25 전쟁에 관한 이야기, 헤어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두세 시간 안에 본인들이 살았던 삶의 그 모든 걸 다 얘기해주시는 거예요. 70, 80년 된 인생 거의 통째로 저한테 거짓말 1도 없이 저한테 얘기를 해주시는 거예요. 근데 그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뭐랄까요? ‘라포rapport’라고 하는데 그게 형성되면서 감정이 공명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순간들이 너무 좋아요. 그게 대상자분이 본인의 삶의 어떤 아픔이나 행복을 이야기하면서 조금 치유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 듣는 저도 그걸 들으면서 어떤 좋은 책을 한 권 읽은 것 같은 거 같은, 좋은 음악을 하나 들은 거 같은 그런 느낌을 사람이 그냥 말을 하는데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게 굉장히 우리도 좋은 영화 만나기 힘들잖아요. 영화 한 편 보면서 이 영화 너무 좋았다 하는 순간이 일 년에 몇 작품 없는데. 다큐멘터리 현장은 그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하고 라포 형성이 잘 돼서 좋은 얘기들을 서로 들으면 그런 느낌이 매 순간 (드는 거죠).

 

정지혜 : 반대로 (웃음) 물론 그런 거 너무 좋죠. 다큐멘터리의 그런 순간들 때문에 아마 그 늪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긴 시간 동안 하게 되는 걸 텐데 (그럼에도) 굉장히 또 힘들잖아요. 힘든 얘기를 듣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들고. 제가 또 궁금한 건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한 건 결국에 (다큐 대상자와)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가 문제잖아요. 자연스럽게 그 관계가 맺어지면 정말 감사할 일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할 수도 있고. 감독님의 방법이 궁금하네요.

 

이인의 :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콜트콜텍 다큐 찍을 때에는 현장의 사람들과 당연히 친해졌죠. 왜냐면 십 년이나 함께 했으니까. 근데 저희가 그 작업을 하면서 제일 인터뷰하고 싶었던 사람은 콜트콜텍 사장이에요. 근데 그 사람도 저희가 십 년을 쫓아다녔는데 결국 인터뷰를 못했어요. 그런 식으로 사람마다 작품마다 조금 다른데 저희가 그분은 못 만났잖아요. 겨우 어떻게 전무님은 만나긴 했는데. 그런 식으로 접할 때에는 저희들도 조금 전투적이게 된다고 해야 할까 날이 선 느낌으로 할 수밖에 없고. 현장 자체가 경찰들 혹은 용역 깡패들이랑 부딪힐 일도 생기고. 그렇기 때문에 긴장감도 있고 물리적으로 준비할 일도 있고. 그런 식의 현장이 있는가 하면. 아니면 또 실향민 다큐멘터리 같이 서로 감정적으로 파도가 올라온 상태에서 만나서 작업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그게 전반적으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 같아요. 해외입양 이슈 같은 경우는 당사자분 뭐랄까 마치 내 일처럼 도와주고 싶고 정말 친구처럼 지내고 싶고 그런데. 그 친구랑 같이 입양 관련 기관 사람들 만나면 분노 게이지가 막 올라가는 데도 그걸 또 억눌러야 되고. 사람 사는 일 하고 되게 비슷한 거 같아요,

 

정지혜 : 말씀해 주셨던 그 과정들이 영화 곳곳에 들어가 있는 거 같아요. 영화에서 입양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찍는 분들이 현장에 닿기 위해서 밟는 과정들, 어떤 기관과 만나고 등 그 과정들이 감독님 경험에서 나온 거네요.

 

이인의 : 해외입양 다큐 하고 실향민 다큐 작업할 때 경험들이 반쯤 섞인 건데요. 실제로 실향민 다큐 찍을 때 독립 프로듀서들이 한 5, 6명이 한 차량을 가지고 계속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작업을 했었어요. 그래서 극 중에 주희 엄마 찾으러 가는 작은 차량, 정말로 저희 촬영 때에는 모닝에 6명이 타고 다녀가지고 정말 고생을 많이 했었어요. 한 명 먼저 내려주고 고생해서 촬영했었어요. , 해외입양인 이슈 관련해서는 제가 겪은 경험은 아니고 경찰청 실종아동 수사팀에 계셨던 팀장님, 지금은 그분은 은퇴 후 교수로 계신데 그분이 이제 해외입양인 포함해서 실종아동 한 3, 4천 명을 자기 혼자 찾아주신, 우리나라 경찰계에서 전설로 남으신 좋은 분이에요. 원래 해외입양 부모를 찾아주는 게 경찰의 업무는 아니에요. 그거는 본인이 찾아주고 싶은 마음에 두 발 벗고 나서서 마치 사마리아인 같은 분인데 그분이 겪었던 에피소드 중 하나가 해외입양인분이 친권포기각서를 입수하게 돼서 그걸 들고 나의 부모를 찾아줄 수 없냐고라고 했더니 보니까 부모님이 지장을 찍어놓으신 거예요. 영화에 나온 거랑 똑같이. 그 지문으로 부모님 신원 파악을 해서 만나게 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냐면 지금 그 제삼자 정보보호법 때문에 내가 그 해외입양인이고 부모를 찾는다고 해서 다이렉트로 연결하는 건 불법이잖아요. 그래서 경찰이 그럴 필요나 의무가 없는데도 그 팀장님 본인이 직접 친부모를 찾아가서 설득을 시켜요. 당신 자녀가 왔으니 만나달라라고. 극 중 얘기는 그분 에피소드에서 따온 거예요.

 

정지혜 : 이 영화의 제목인 가나다를 언급하는 앵두 할머니가 실제 실존하는 인물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인의 : (웃음) 앵두 할머니 같은 경우에는 시나리오 보신 분들도 제가 픽션으로 만든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수원에 실제로 살고 계시고 실향민 다큐 작업하는 도중에 뵌 분인데 당연히 저는 할머니 혼자 사신다고 생각하고 집에 들어갔어요. 집 인테리어가 80, 90년대 그런 느낌이라서 제가 그때 그 시절을 좋아해서 정말 좋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식탁에 아이맥 컴퓨터가 있는 거예요. 영화상 설정이랑 똑같이. 할머니 집에 이런 게 왜 있지? 하고 좀 의아했는데 질문을 할 수는 없고. 왜냐면 할머니가 아이맥을 쓸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 작은 방에서 누가 앵두! 앵두! 하고 영화랑 똑같이 할머니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어요. 인터뷰 다 끝나고 물어보니까 그분이 외국에 오래 살다 왔고 이름으로 부르는 게 당연한 문화인 거예요. 할머니랑 둘이 앵두, 앵두 하면서 재밌게 잘 살고 계시더라고요.

 

정지혜 : 근데 영화의 말미에 앵두 할머니 장면이 다시 한번 영화 제목을 환기시켜주기도 하고 그때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이었던 거죠? ‘관계의 가나다라는 말이.

 

이인의 : 그것은 픽션입니다. (웃음)

 

정지혜 : 알겠습니다. (웃음) 관객분들 질문이나 소감 있으시면 들어보겠습니다.

 

관객 1 : 궁금한 게 입양기관 팀장님이 한 분 나오시잖아요. 이 팀장님도 실제 그 해외입양과 관련된 분이신가요?

 

이인의 : 그분은 배우세요. 실제 모델은 제인 정 트렌카 작가라고, 해외입양인 권익옹호 단체 <뿌리의 집>하고도 같이 일하시고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이라는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단체를 만드신 분이고 본인이 정말로 그 미국에서 자기 친부모를 찾아서 한국으로 온 분이에요. 그분을 모델로 해서 만든 캐릭터입니다. 배우도 한국말이 조금 서투르세요. 미국에서 오래 살다 오셔서

 

관객 2 : 네 영화 잘 봤습니다. 그 모더레이터께서도 질문을 해주셨던 부분이기도 한데 많은 이슈들을 한꺼번에 넣어서 만드셨는데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한 영화에 들어가기에 큰 주제들이기도 해서 그거를 어떤 비율로 구성할 것인가 그런 고민도 많이 하셨을 거 같고. 어떻게 보면 그 주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서 만드셨어도 괜찮았을 거 같은데 굳이 이렇게 또 하나에 넣어서 만드신 이유가 궁금하고요. 또 한 가지는 심각하다가 웃긴 유머 코드의 장면이 나오고, 그 부분도 이 영화의 전개를 너무 무겁게 가지 않도록 하지만 그 유머가 더 과하게 느껴지고 맥을 끊어버리는 단점도 있었을 거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고민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인의 : 이슈가 굉장히 많고, 그리고 지금 말씀하신 게 영화 준비하는 동안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구성할 때 저 개인적으로 힘들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저는 이미 다 장편으로 두 번 이상 작업했던 이슈들이기 때문에 저한테는 다 정리가 된 것들이었고. 그런데 이 이야기들을 저는 관객분들한테 조금 더 친숙하고 쉽게 가려고 했습니다. 이미 다큐멘터리로는 무겁게 작업을 이미 다 해 봐서 전과 달리 조금 더 편한 방식으로 가보자는 생각이 많았고요. 그렇게 작업을 진행했을 때 뭐를 중점으로 잡고 가야 될 것이냐 그게 중요한 거잖아요. 근데 이런 거죠,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대상자 중심으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걸 만든 연출자나 인터뷰어의 감정이 들어가진 않아요. 물론 맥락을 만들 순 있지만 만드는 사람의 감정이 들어가진 않잖아요. 근데 픽션은 그게 되는 거예요. 픽션이기 때문에. 그래서 주인공이 촬영 감독인 민규랑 한나로 했는데 제가 정말 중점으로 둔 인물은 한나였어요. 왜냐면 한나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고, 고공투쟁이나 해외입양인 부모 찾는 과정을 처음 접하면서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단면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도 사실 다큐멘터리 현장 처음 같을 때, 고공투쟁 현장에 처음 갔을 때 고공투쟁이라는 걸 잘 모르잖아요. 밑에서 보면서 나중에 저녁엔 내려오겠지?’ 철없이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죠. 그게 아니라 물론 콜트콜텍 고공투쟁은 그때 단식투쟁도 같이 했기 때문에 (극 중과 달리) 실제로는 음식이 올라가지 않았어요. 한진중공업이나 다른 사업장에서는 그런 일들이 많잖아요. 음식을 위로 올리는 거예요. 저걸 왜 올릴까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죠. 그래서 다큐로는 다 작업을 했지만 픽션으로 작업할 때는 내가 현장에서 느꼈던 첫 번째 감정들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역할을 했던 건 한나의 시점이었던 거죠.

 

정지혜 : 두 번째 질문이 코믹함을 어느 정도 배합할 것인가였는데.

 

이인의 : 그거는 제가 시나리오를 여러 가지 버전으로 작업했는데요. 무거웠던 시점에서 쉬고. ‘템포라고 하죠. 템포에 맞는 그 순간을, 제가 코미디를 잘하질 못해서 여러 가지 버전을 만들어서 그거를 프로듀서와 연출팀과 함께 보면서 결정하는 식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관객 2 : 추가로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답변하신 것 중에도 그러면 가장 중점의 시각은 한나잖아요. 근데 한나의 문제는 해결이 안 됐고, 대신 회전하는 놀이기구에서 민규하고 손을 잡아서 일으킨 장면의 의미는 결국 그 관계의 해결하는 것도 제자리에 도는 상황에서 민규라는 인물을 통해서인가요?

 

이인의 : 글쎄요. 저는 해결이라고 생각을 할 수 없는 게 왜냐하면 제 생각에는 회전 놀이기구, 뺑뺑이에서 돌고 도는 게 인 것 같아요. 콜트콜텍은 다행히 노사합의로 해결이 됐지만 안된 사업장들이 투쟁을 지속하고 있잖아요. 물론 어떤 그런 노동법 내지는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서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갖고 더 좋은 방향으로 고쳐나가야 하는 별개의 문제지만, 쉽게 생각하면 이거죠 십 년 전의 저의 삶이나 아니면 지금 현재의 삶이나 별로 크게 바뀐 건 없거든요. 정말로 메리 고 라운드, 뺑뺑이같이 돌고 돌고, 도는 와중에 친구들을 한 명씩 만나게 되는 것? 그런 게 힘들 삶을 버텨나가게 해주는 것이지, 그게 해방구가 되거나 삶을 구원해 주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정지혜 : 어떤 경우에 한나의 상황, 엄마와의 관계라든지 당장 본인의 다음 스텝이 보이거나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아마도 민규 옆에서 그 현장에 같이 있는 한나의 모습을 마지막에 본 것만으로도 그게 해결은 아니지만 다음 지점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의 여지를 주는 것 같아요.

 

관객 3 : 영화 일단 만들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영화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드실 때 각각의 이슈마다 설정하는 수신자가 되는 대상이 있으셨을지 궁금합니다.

 

이인의 : 수신자라면 관객분들 말씀하시는 거죠? 다큐멘터리가 장르도 많고 예를 들어 픽션도 장르가 되게 많잖아요. 다큐멘터리도 그 성격에 따라 기록을 중점으로 둔 아카이빙 다큐멘터리도 있을 것이고, 개인사를 담는 사적인 다큐멘터리도 있고 아니면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다큐도 있을 것이고. 굉장히 많이 달라요. 극장용, 방송용으로 나뉘기도 하고, 보관용으로 작업하는 다큐멘터리도 있고요. 그래서 예를 들어서 제가 그냥 작업한 거 몇 가지 말씀드리자면, 콜트콜텍 다큐멘터리는 극장에서 개봉을 했어요. 내용 자체는 어떤 상대적 소수자, 법이나 제도가 잘못된 걸 고발하는 시사적 성격이 있는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그 비슷한 시기에 만들었던 한 편은 사적 다큐멘터리이자 음악 다큐멘터리인, 극장에서 개봉을 생각하고 만든 그런 다큐멘터리도 있고. 아니면 이산가족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적십자와 통일부에서 함께 한 아카이빙 다큐멘터리에요. 일반인에겐 공개가 안 되고 6·25전쟁에 대한 증언을 모은, 아카이빙 성격의 다큐멘터리여서 관객분이 말씀하신 수신자에 따라서 성격이 많이 달라지죠

 

정지혜 : 이 영화에서 마지막 부분이 저는 앵두 할머니 이야기도 있지만, 그 바로 앞에 민규가 다시 콜트콜텍 노동자와 마주 앉아서 카메라를 켜고 잘 듣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그 장면이 굉장히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인 거 같아요. 잘 듣고 있습니다그 대사에 감독님이 전달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셨을 거 같아요.

 

이인의 : 다큐를 십 년 정도 작업을 하고 그 현장의 컨디션들이 되게 좋지는 않아요.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현장에서 버티고 있다는 게 되게 힘든 일인데요. 여러 사람들이 힘들게 작업을 해서 세상에 내놓아도 그걸 관객분들이 많이 봐주신다거나 물론 유통 배급의 문제이기도 해요. 제가 감히 관객의 탓이다 이렇게 말하는 건 절대 아니고. 유통, 배급의 문제에서 많이 불리하죠. 많은 분들이 보기가 힘든 환경이에요. 독립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독립영화 모두 똑같은 처지인데. 그래서 여기서 이 사람들이 어떤 부당함을 겪으면서 살고 있고, 그걸 알리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저희가 내는 목소리가 밖으로는 잘 전달이 안 되는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가슴 아픈 거죠. 그런 어떤 것들이 현실적으로 바뀌려면 우리가 내는 목소리가 그 사회에서 주목하는 이슈를 선정해야 사실 바뀌어요. 지상파 미디어에서 크게 다룬다던가 이런 식이라면 현실적으로 바뀔 수 있죠. 근데 저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작업하면서 열심히 내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그 목소리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고. , 그게 저의 자세, 저의 태도이기도 한데요. 감히 말하자면 관객분들도 좀 그래 주셨으면 좋지 않을까 그런 뜻으로 잘 듣고 있습니다라는 대사로 영화의 마침표를 찍자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 처음에 감독님께서 얘기하셨을 때 조금 쉽게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관객들이 이런 사회의 모습을 조금 더 이런 일들이 있구나라고 알리고 싶은 마음에 출발하셨던 것 같은데, 오늘 이야기를 쭉 듣고 보니까 그게 어떤 마음이었을지 조금 짐작이 돼요. 어떤 형식적으로 다큐를 하느냐 극 영화를 하느냐, 그걸 혼합해서 만드느냐 등 형식적인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감독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이 작업을 좀 만들어서 전달하고 싶었는가 그 부분이 좀 말미가 돼서 환기가 됩니다. 원래 지난해 초에 개봉을 준비하시다가 일 년 정도 밀려서 이번에 개봉하셨는데 코로나도 있고 여러 가지 상황도 있었을 거 같아요. 그럼에도 쉬지 않고 시나리오를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좀 가뿐하게 다음 작업을 해보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이인의 : 지금도 다큐멘터리는 계속 촬영을 하고 있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별일 없으면 일주일에 한 번씩 무조건 촬영을 나가요. (해 보니까) 좋은 습관이에요. 왜냐면 픽션 감독들은 한 작업 들어갈려면....

 

정지혜 : 나갈 수가 없죠. 일단 완성된 시나리오가 있어야 하니까.

 

이인의 : 그렇죠.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현장을 나갈 일이 없어져요.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하면 좋은 게 그냥 카메라 한 대만 있으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나갈 수가 있으니까. 억지로라도 저는 일주일에 하루씩 무조건 나가서 뭐가 됐던 지 찍고 편집하고 그래서 다큐 작업은 언제나 계속하고 있는 상태고요. 작년에 코로나 유행으로 영화 개봉이 연기되면서 미완인 작품이긴 한데 실화 소재이긴 한데 스릴러 장르로 한 편 썼습니다. 지금 준비는 하고 있는 데 될지 안 될지 잘 모르겠네요. (웃음)

 

정지혜 : 근데 장준휘 배우님이 굉장히 오랜 친구고 이 영화의 숨은 일등 공신이신 것 같더라고요. 잠깐만 얘기해 주세요.

 

이인의 : 극 중에 양상규 역할로 나왔던 장준휘 배우님은 저랑 이제 대학교 연극 영화학과를 같이 나왔는데 형이 일 년 선배인데 거의 20년 넘게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제가 여태 13개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그중 6개의 작품에서 주인공이고 그래서 저의 일종의 페르소나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동지에요. 특히나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준비할 때 열 달 정도 프리-프로덕션 진행했는데요. 그 열 달을 프로듀서, , 장준휘 배우 셋이서 준비를 했어요. 그니까 일반적인 감독과 배우의 관계가 아니라, 말 그대로 동지 같은 관계입니다.

 

정지혜 : 캐스팅 디렉터 역할도 하셨다고 들었고 많은 것들을 함께 한 친구분들이 있어서 작품이 완성되기도 하고 지금까지 작업하실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오늘 긴 시간 강릉 신영극장 관객분들과 만나셨는데요. 감독님의 말씀으로 마무리를 해보려 합니다. 아까 긴장하셨다가 편안하게 말씀 잘해주신 거 같아요

 

이인의 : 제가 뭐랄까 영화를 처음 개봉하고. 정말 오래 기다린 작품이에요 순수하게는 만 6년 동안 이 작업을 준비했어요. 너무나 고맙게도 감격스럽게도 영화를 개봉하게 됐고,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관객분들과 만나는 게 저는 너무 좋더라고요. 근데 이제 오늘하고 내일 하면 지브이도 끝나고 영화 상영도 아마 극장에서 거의 다 영화를 내렸어요. 그래서 두세 번 정도 상영이 얼마 안 남았는데. 그 마지막을 또 서울도 아니고 강릉에서 하게 돼서. 예전에 강릉에 제 형이 몇 년 전부터 살고 있어서 저는 강릉을 자주 왔었어요. 휴가로도 많이 와서 저한테도 익숙한 장소고. (신영극장) 여기를 왜 제가 진작 안 와봤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신영극장 너무 좋고. 다음번에 형네 집에 오게 되면 이쪽으로 다시 한번 오고 싶고요. 영화 마지막을 여기서 하게 돼서 너무 영광이고 오늘 GV를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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