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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발> 리뷰 : 남겨진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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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11. 19.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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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발>

남겨진 가족들

 

<증발>의 첫 장면은 비 내리는 도로를 운전하는 중년 남성의 옆얼굴을 비추며 시작된다. 남성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지쳐 보인다. 그는 준원의 아버지 최용진이다. 용진이 도착한 곳은 여주 휴게소이다. 휴게소에 비치된 자판기에 용진은 스티커를 붙인다. 용진이 붙인 스티커에는 준원이를 찾아주세요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그렇게 <증발>은 최준원의 실종 사건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2014년부터 현재까지 7년간의 기록을 담는다. 준원이 사라진 200044일부터 어느덧 십여 년이 흘렀으나 준원의 가족은 여전히 준원을 찾고 있다.

 

카메라는 최준원의 아버지 최용진과 최준원의 언니 최준선의 일상을 주로 기록한다. 카메라 속에 담긴 용진은 주로 부지런히 움직인다. 용진은 준원과 관련한 제보가 들어오면 그곳이 어디든 전국을 방방곡곡 누비고 있다. 용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준원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시간만 야속하게 흘러간다. 딸을 찾으러 다니고 난 나머지 시간에서 용진은 그저 멍하니 앉아있다. 자신이 지닌 모든 에너지를 오로지 준원을 찾을 때 사용하기 위해 힘을 비축하고 있는 듯 보인다.

 

용진과는 다르게 준원의 언니 준선은 정적이다. 준선의 일상에서 활력을 도무지 느낄 수 없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근무하는 준선의 목소리와 행동에는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취업을 위해 자격증 준비하지만 금세 의욕을 잃어버린다. 동생의 실종 사건 이후로 준선은 그녀의 주변을 가득 채운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듯 보인다. 준선의 부모는 준원을 잃어버린 고통에 파묻혀 준선을 보듬어 주지 못한다. 준선의 슬픔과 고민을 함께 나누어줄 수 있는 어른이 그녀에게는 없다. 살고 싶지 않다는 준선의 울먹이는 목소리는 너무도 애처롭다.

 

영화의 중간중간 가족들이 인터뷰한 음성 위로 어린 준원이 살던 동네의 현재 모습이 삽입되어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는 공간은 점차 준원의 흔적을 지워가고 있다. 오직 준원의 가족만이 준원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기억한다. 준원의 엄마는 준원을 잃어버린 고통에서 벗어나려 그곳을 떠난 상태이다. 용진과 준선은 아직 준원과 함께 살던 그 공간은 아직 떠나지 못한다. 생기를 잃고 시간의 때가 묻어 낡고 부식되어가는 그 공간에서 용진과 준선은 버텨내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은 흐르고 있는데 준원의 남겨진 가족들의 일상은 준원이 사라진 그 순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멈춰있다. 찾을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잔인하게 그들의 일상을 파고들어 생채기를 낸다. 카메라는 예기치 못한 슬픔으로 견뎌내야 하는 준원의 가족들의 일상을 곁에서 지켜보고만 있다.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남겨진 사람을 보고 있는 카메라의 시선은 차가운 금속이 아니라 사람의 눈빛으로 느껴진다. 무책임한 응원 대신 옆에서 일상을 동행하고 있다는 느낌은 가슴 먹먹한 그들의 일상을 바라보는데 약간의 위로를 준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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