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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양지> 리뷰 : 인간을 잃어버린 인간의 세상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11. 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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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양지>

인간을 잃어버린 인간의 세상

 

20살 생일을 앞둔 준(윤찬영)은 채권추심 콜센터에서 현장 실습 중이다. 준은 회사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과도한 업무량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전공인 사진과는 맞지 않는다. 옥상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는 준의 앳된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그런 준에게 콜센터의 센터장 세연(김호정)은 지금은 잠시 세상을 배우는 인생 실습을 한다 생각하라 말한다. 영화는 세연의 이 말을 기점으로 관객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극이 흘러가는 내내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거쳐야 할 연습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세연의 딸 미래(정하담)는 계약직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 회사 안에서 미래의 이름이 불리는 일은 없다. 미래를 부를 때 팀장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차임벨을 울린다. 미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때면 의자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난다. 회사에서 바꿔주겠다고 말한 새 의자는 언제 도착할는지 기약이 없다. 미래가 앉고 있는 의자는 미래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취직만을 목표로 죽을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미래의 모습은 부서질 듯 말 듯 버티고 있는 의자처럼 금방 무너져내릴 것 같아 위태로워 보인다.

 

영화는 준과 미래의 삶을 통해 세상이 청춘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보여준다. 세연과 준이 함께 근무하는 회사의 명칭은 휴먼 네트워크이다. 이 콜센터에는 자동 통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사원이 통화를 마치면 곧장 다음 연체자와 통화가 이어지도록 설정한 것이다. 회사는 그 이름에 걸맞게 인간을 매개로 돈을 벌고 있다. 그러나 회사의 운영 지침에는 인간에 대한 배려는 없다. 때문에 준은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한 채 기저귀를 차고 연체자와 통화를 하기도 한다. 영화 속 가상의 회사가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참으로 씁쓸하게 다가온다.

 

미래가 무너져 내려가는 조짐은 합숙 면접에서 극에 달한다. 미래는 면접장 숙소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된 취업 스터디 동료에게 언제 끝날까요? 우리끼리 싸우는 거요.”라고 묻는다. 이 질문을 듣고 미래에게 끝도 없이 계속되는 경쟁을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음을 느낀다. 면접 중 훔친 사원증이 발각되었을 때, 미래는 결국 한마디 변명도 없이 합숙소를 박차고 나간다. 불안과 수치로 점철된 모든 순간을 애써 웃으며 이겨내 온 미래는 더 이상 웃음 짓지 않는다. 굳어버린 표정으로 머리를 잘라내는 미래를 보며 좀 더 노력하라는 말을 감히 꺼낼 수 없다.

 

그들에게 가장 가까운 어른인 세연(김호정)마저 세상에 내몰려 아등바등 살아간다. 본사 관계자는 세연에게 정규직 전환을 앞세워 성과를 낼 것을 강요한다. 정규직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세연은 본사에서 월급 대신 보내온 상품권을 가장 많은 성과를 낸 팀에게 전부 주며 몰인정한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연체자를 만나러 간 준의 간절한 요청을 매몰차게 뿌리친다. 연체자와 준의 죽음에 세연이 관계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안정적인 수입이라는 사실은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밖에 보지 않는 지금의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영화는 인간다운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신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함을 준과 미래 그리고 세연의 현실을 통해 보여준다. 선의의 경쟁으로 포장한 세상의 요구에 벼랑으로 내몰리는 이들이 폐기처분당하는 석고상처럼 느껴진다. 산다는 것 자체가 무서워질 만큼 세상은 인간의 가치를 폄훼한다. 인간의 존엄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토록 혹독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인간적인 모습들을 감춰야 한다. 인간다움을 지워가는 과정이 인간실습이라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반문하게 한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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