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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뷸러스> 리뷰 : 함께해서 멋진 순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11. 1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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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뷸러스>

함께해서 멋진 순간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사무실, 직원들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기뻐하는 사이에 혼자 그 자리를 빠져나오는 사람이 있다. 로리(노에미 오파렐)는 샴페인 뚜껑에 눈을 맞아버렸고, 다음날 인턴 생활을 마치고 백수가 된다. 절친이자 룸메이트인 엘리(모우니아 자흐잠)와 함께 백수 기념으로 신나게 놀다가 유명 인플루언서인 클라라(줄리엣 고셀린)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인생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페뷸러스>는 글을 쓰고 싶지만 쓸 자리가 없는 로리와 첼로 연주자의 자리를 구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엘리, 우연히 그들의 생활에 큰 영향력을 끼쳐버린 인플루언서 클라라와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보여준다.

 

지금 20-30대 여성들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은 인플루언서의 영향력과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페미니즘의 흐름 사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 마치 극단의 두 점처럼 보이는 클라라와 엘리는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지만, 로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사실 생각해보면 친구가 되지 못할 것도 없다. 세 사람은 서로의 입장과 처지를 모르는 게 아니다. 페미니즘은 정말로 중요한 문제고, 이제는 인스타그램에 올라가는 멋진 사진으로만 먹고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 로리는 페미니즘과 인플루언서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글 쓰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로리는 처음에 인플루언서의 수발을 드는 것처럼 보이다가 결국엔 자기 자신이 인플루언서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인스타그램-인플루언서는 이미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누구를 통해서든지 대체 가능하고, 누구나가 개성적이라고 하기엔 보톡스를 맞은 입술처럼 한쪽의 개성이다. 로리는 엘리와 함께 유명 인플루언서인 클라라의 얼굴에 성상품화 스티커를 붙였다. 하지만 결국엔 자신의 얼굴에도 성 상품화 스티커가 붙는다. 로리는 좋은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남들이 기대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순간을 조작한다. 글을 통해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던 로리는 영향력으로 인해 글을 마음껏 쓸 수 없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인다.

 

클라라는 로리와 반대로 최고의 인플루언서의 자리에서 겨드랑이털을 제모하지 않고 영향력 없는 페미니스트가 돼버린다. 남자친구도 떠났고 협찬도 떨어졌으며 베프였던 로리와도 멀어진다. 영향력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으며, 클라라는 혼자가 되어버린다. 10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클라라는 외롭다고 고백한다. 모든 것을 접고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가려는 클라라를 잡는 이는 그와 동일한 일을 겪은 로리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인 클라라의 겨드랑이털 디자인 티셔츠를 가지고 왔다. 로리는 인플루언서로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다시 엘리와 클라라의 곁으로 다가간다.

 

일면 안타까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유명세를 치르고 최후에 당도하는 자리는 옥상 소파다. 원하던 일을 하는 모습이 아니고, 원하던 곳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절대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두 극단을 함께 겪은 친구들이다. 두 사람이 앉아있던 자리는 세 사람이 앉는 자리가 됐고, 멋진 일몰이 펼쳐진다. 본연의 내 모습으로는 도저히 껴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에도 친구와 함께 통과한 시간이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이 젊은 여성들의 지금은 그렇게 희망적이지는 않지만 그렇게까지 비관적일 필요도 없다. 의외로 클라라가 자신의 티셔츠를 봤을 때의 대사 fabulous처럼 꽤 멋질지도 모른다.

 

-송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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