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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티스> 리뷰 : 이별을 맞이하는 순간, 어른이 되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10. 2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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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티스>

이별을 맞이하는 순간, 어른이 되다

 

영화의 전체적인 장면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색감으로 채워져 있다. 영화의 색감은 화면에 담긴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대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장면의 중간중간 화면에 새겨진 파스텔 톤의 자막은 극의 방향을 제시한다. 색색이 수 놓인 자막은 밀라(엘리자 스캔런)가 죽기 전에 기록한 일기 제목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자막을 통해 밀라와 주변 이들에게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관객이 잊지 않도록 안내한다. 그와 동시에 영화는 갑작스레 찾아온 첫사랑의 존재로 인하여 변화하는 밀라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밀라와 모지스(토비 월레스)의 첫 만남은 매우 날카롭게 각인된다. 밀라는 전차에 타려는 순간 달려오는 모지스와 부딪힌다. 밀라는 놀란 나머지 전차에 오르지 못하고 코피 흘린다. 모지스는 서슴없이 밀라를 정거장 한가운데 눕히고 자신의 상의를 벗어 지혈시킨다. 영화는 관객에게 밀라와 모지스의 만남 그 자체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이를 통해 관객이 두 사람의 만남에 관하여 개연성을 논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바닥을 바라보고 서 있던 밀라는 모지스와의 만남을 계기로 움츠린 어깨를 펴고 자신의 주변을 똑바로 응시하기 시작한다.

 

밀라는 모지스를 만나고서부터 밀라의 행동은 변화한다. 우스꽝스레 머리를 자르기도 하고 부모 앞에서 모지스에게 과감한 애정 표현을 하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밀라의 비행(非行)이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행동은 자유를 꿈꾸는 한 소녀의 비행(飛行)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밀라는 환자라는 이유로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주변의 태도에 갑갑함을 느껴왔으리라. 하지만 모지스는 밀라를 측은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 덕분에 밀라는 자유를 향한 용기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야속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밀라에게 죽음이 다가온다. 헨리(벤 멘델존)는 이웃 토비(에밀리 바클레이)와의 밀회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한다. 애나(에시 데이비스)는 피아노 연주 때문에 밀라의 유년 시절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부채감으로 밀라와의 합주를 거부하고 있다. 약을 대가로 밀라의 곁을 지켰던 모지스마저 닥쳐오는 밀라의 죽음에 무너진다. 밀라를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을 다가오는 그녀와의 이별을 감당하기 힘들어 보인다. 슬픔을 피하려 약물에 의존하는 이들을 보며 인간의 한없는 나약함을 느낀다.

 

밀라의 생일파티가 열리는 장면은 영화 전체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중에서도 밀라의 바이올린과 애나의 피아노 협주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두 모녀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듯 보인다. 두 사람의 협주 중 만삭인 토비가 진통을 느낀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서둘러 토비를 부축해 나가며 파티는 끝난다. 이 장면을 보며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라는 게 다른 생명의 죽음을 대가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다가온다. 다가오는 이별의 순간을 예감하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서 그것이 참으로 슬프게 느껴진다.

 

생일 파티를 치른 다음 날 아침, 밀라는 세상을 떠난다. 밀라의 마지막은 한없이 평화롭다. 모지스와 사랑을 나눈 뒤 아침을 맞은 밀라는 밖으로 나간다. 밀라는 나무 어귀 사이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 감동한다. 밀라는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감동으로 느끼고 있다. 밀라는 모지스와 키스를 하다가 유치였던 어금니가 빠진다. 유치가 빠진다는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신호 중 하나이다. 밀라가 죽음을 맞이한 순간은 유치가 빠지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한 소녀가 세상과 이별하며 어른이 된 순간은 정말이지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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