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처음 쓰는 영화비평 2] 행복의 온도 차 - 지연희

SPECIAL 기획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2. 23. 21:09

본문

이 리뷰는 2019년 11월과 12월 동안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진행한 "처음 쓰는 영화비평" 워크숍 수강생의 글을 모은 비평집에 실린 글입니다.


<행복>(아녜스 바르다, 1965)

행복의 온도 차

/ 지연희

 

아내가 죽고 나서 얼마 후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자신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한다. 다른 여자는 남의 자리를 대신 한다는 게 꺼림칙 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아내 자리, 그 아이들의 어머니 자리를 이어받는다. 남자는 잃어버린 아내를 찾았고 다시 행복해질 것이며 그의 가족도 덩달아 그렇게 될 것이다. <행복>은 행복감의 열렬한 추종자인 한 남자가 자신의 행복을 좇아가는 여정을 담아내는 동시에 두 여자의 종속된 행복감을 그려낸다. 영화는 초여름 4인 가족의 나들이 모습을 어슴푸레 잡아낸 것으로 시작해서 초가을 또다시 4인 가족의 나들이 모습을 잡아내는 것으로 마친다. 실제로 4인 가족의 구성은 처음과 나중이 다르지만, 구성원의 얼굴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세세한 차이를 지워버리고 전체적인 톤의 차이에 더 집중한다. 이 가족의 행복은 구성원 고유의 성질과는 상관없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영화는 시종일관 인물의 행복한 모습을 담아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큰 차이가 생긴다. 영화의 초반, 가족의 행복한 모습은 전원의 풍경 속에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표현된다. 프랑수아(-클로드 드루오)와 테레즈(클레어 드루오)의 아버지날 소풍의 경우, 알록달록한 꽃들과 초록 풀숲을 배경으로 이 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처럼 따뜻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들의 일상 모습을 담은 장면에서도 자연스럽고 확신에 찬 행복이 묘사된다. 하지만 프랑수아와 에밀리(마리-프랑스 보예르)의 관계가 시작되면서 이후의 행복을 보여주는 방식은 조금 달라진다. 프랑수아와 에밀리의 경우 다소 강박적으로 보일 정도로 대사를 통해 행복을 표현한다. 프랑수아는 불륜 관계에 있는 에밀리에게 자신의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게 늘 새롭다고 고백하고, 동시에 에밀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또 행복하다고 말한다. 초반에 의심의 여지 없던 행복은 프랑수아의 지나친 행복감 때문에 오히려 균열이 생긴다.

 

프랑수아의 행복은 테레즈와 에밀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할수록 점점 더 커진다. 계속해서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전개는 테레즈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반전된다. 테레즈는 가족 소풍 중에 프랑수아의 엄청나게 커져 버린 행복을 눈치챈다. 이것은 영화 초반 테레즈가 프랑수아와 함께 느끼던 자연스러운 행복 그 이상이다. 테레즈는 이것을 이상하게 느낀다. 어째서 이렇게 행복한지를 물어본다. 프랑수아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테레즈를 설득하려고 한다. 이야기를 들은 테레즈는 프랑수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와 사랑을 나눈 후 물에 빠져 죽는다. 영화는 테레즈의 죽음에 대해 명확한 사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이다음부터 엔딩까지의 장면들을 통해 짐작하게 할 뿐이다.

 

프랑수아는 아내를 보낸 후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에밀리에게 아내가 되어달라고 한다. 그는 아직도 행복해지고 싶다고 한다. 에밀리는 이전에 테레즈가 그랬던 것처럼 프랑수아의 행복에 동참하기로 한다. 그들은 숲으로 가서 영화의 초반처럼 의심의 여지 없는 행복한 순간들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에밀리는 프랑수아의 집에서 테레즈처럼 아이들을 돌보고, 프랑수아와 사랑을 나누고, 가족 소풍을 가면서 테레즈의 자리, 프랑수아의 아내 자리를 메운다. 이전에 볼 수 있었던 테레즈와 에밀리의 차이, 프랑수아가 했던 말을 빌자면 강인한 식물과 자유로운 동물 같은 차이는 사라져버린다. 에밀리는 가족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대체 가능한 사람이 된다. 역으로 테레즈 역시 대체 가능한 사람이었음이 밝혀진다. 테레즈가 프랑수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에 관해 불공평함을 제기한다. 테레즈에게는 프랑수아밖에 없었지만, 프랑수아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테레즈는 죽는다.

 

영화는 마치 끝없이 행복해지는 과정을 다루는 것 같지만, 사실은 비극을 밝혀가는 과정을 다룬다. 프랑수아는 테레즈에게 다른 여자를 고백할 때 테레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테레즈의 행복을 염려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에밀리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한다. 프랑수아는 가족 전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직 자신의 행복만을 생각한다. 영화 속 모든 행복은 프랑수아 중심의 행복일 뿐 여자들의 행복은 없는 것과 같다. 테레즈는 그 사실을 깨달았고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영화의 행복은 오직 프랑수아라는 가부장에 의존해서만 만들어지는 허상일 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행복이다. 마지막 장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행복해지는 프랑수아 가족의 해피 엔딩인 것 같지만, 아녜스 바르다는 표현하는 방식을 통해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새롭게 조합된 가족은 따뜻하고 꽃이 핀 들판이 아니라 낙엽 지고 쓸쓸한 숲에 도착한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