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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쓰는 영화비평 2] 시선이 마음으로 이어질 때 - 박유나

SPECIAL 기획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2. 2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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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2019년 11월과 12월 동안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진행한 "처음 쓰는 영화비평" 워크숍 수강생의 글을 모은 비평집에 실린 글입니다.


<아이언 자이언트>(브래드 버드, 1999)

시선이 마음으로 이어질 때

/ 박유나

 

영화 <아이언 자이언트>1957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호로 시작하는 배경 위로 선명하게 새겨지는 ‘1957’이라는 숫자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두 이념이 진영을 나누어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루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위성을 보여주는 장면은 전쟁을 대비한 핵무기 개발과 우주 연구에 대한 두 진영 간의 경쟁이 최고조로 달했던 시기를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기억을 잃은 거대한 로봇과 어린 소년의 우정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있다.

 

미지의 시공에서 온 듯한 거대한 로봇은 미국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 불시착한다. 그곳에는 호가드 휴즈라는 호기심 많은 한 소년이 살고 있다. 한밤중의 대소동에 대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한낮에 숲속을 찾아온 휴즈는 로봇과 대면하게 된다. 휴즈는 로봇이 지구에서 처음으로 조우한 지적인 생명체이다. 휴즈와 함께 숲속에서 놀고, 휴즈로부터 단어를 듣고 익히면서 로봇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갖기 시작한다. 로봇의 시선은 휴즈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닮아 있다. 자신과 마주하는 모든 것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줄 아는 휴즈의 따뜻한 심성은 그의 시선을 통해 로봇에게 전달된 것처럼 느껴진다. 로봇은 이제 휴즈의 시선으로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사냥꾼의 총에 죽은 사슴을 보고 슬퍼하는 휴즈의 마음이 로봇에게 전달된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편 발전소를 비롯한 마을의 구조물들이 누군가가 씹어 먹은 듯한 모양으로 하나둘씩 망가지게 되자 마을의 경찰은 국가정보국 요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요원은 로봇의 존재를 소련에서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무기라고 판단하여 로봇을 파괴하기 위해 갖은 수를 쓴다. 영화의 장면 내내 요원은 로봇을 무조건 적으로 규정한다. 요원은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라는 소명을 앞세우지만, 사실 그의 속내는 큰 사건을 해결하여 본부로 돌아가기 위함에 있다. 요원은 로봇을 파괴하기 위한 대책으로 미사일 발사를 제안한다. 오직 파괴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사일로 인하여 마을이 망가지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이기적인 발상이다.

 

본래 로봇은 살상 무기를 장착한 전투용 로봇이었다. 휴즈와 영웅놀이를 하던 중 휴즈가 로봇을 향해 장난감 총을 겨눈다. 그 순간 로봇의 눈은 붉은빛으로 변하고 어리숙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휴즈를 향해 레이저 빔을 내뿜는다. 천진하게 망가진 장난감 총을 고치는 휴즈의 뒤로 두꺼운 금속을 녹여버리는 로봇의 눈빛은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진다. 다음 장면에서 정신을 차린 로봇은 자신의 능력이 휴즈를 해칠 수도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본능적으로 드러낸 살기에 당혹감을 드러낼 만큼 로봇에게 휴즈의 존재가 소중해진 것이다.

 

영화의 말미에 요원은 결국 로봇을 파괴하기 위해 사령관의 눈을 속여 미사일을 발사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요원의 광기는 어리석은 권력자의 단면을 비추는 듯하다.

 

“You stay. I go. No Following.”

 

이 말을 남기고 로봇은 하늘로 오른다. 미사일로부터 휴즈와 마을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에게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한 소년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는 전형성이 다분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뭉클한 감동이 느껴지는 이유에는 로봇의 인간적인 성장이 한몫한다.

 

너는 여기에 있어. 나는 간다. 따라오지마.”

 

이것은 휴즈에게만 하는 작별 인사만은 아닌 것 같다. 이것은 살기의 본능으로만 존재하던 과거의 자신에게 하는 명령처럼 들리기도 한다. 로봇은 휴즈와 시선을 나누며 따뜻한 마음을 나눈다. 그로 인하여 로봇은 이전의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우리의 시선이 마음으로 이어질 때, 변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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