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태양의 소녀들> 리뷰 : 그 얼굴들을 기억해야 한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10. 29. 14:46

본문

<태양의 소녀들>

그 얼굴들을 기억해야 한다

 

거친 숨소리, 얕은 시야, 피부에 느껴지는 찬바람. 온몸에 느껴지는 감각이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둘러싼 모든 게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에서 그 두려움을 넘고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들이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전쟁이 여성들을 억압하고 모든 것을 빼앗아갈 때, 자유의 두 발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각자가 가진 무기를 들고 그 시선의 끝에 무엇이 닿든, 발을 무엇이 붙잡든 절대 뒤돌아 가지 않는다. 이 영화도 꿋꿋하게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세상에 호소하고 있다.

 

극단주의 무장조직 IS는 한순간에 야지디족을 점령하고 파괴한다. 눈앞에서 가족이 죽고 아들을 빼앗긴 바하르(골쉬프테 파라하니)는 쿠르드족 여성전투부대에 들어가 여대원들을 이끈다. 종군기자 마틸드(엠마누엘 베르코)는 다른 기자들이 탈출하는 극한의 상황에 그곳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들어간다. 영화는 정보를 많이 주지 않고 마틸드를 따라 대뜸 전쟁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초반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순간들이 빠르게 진행되어 혼란스럽게 만든다. 현재의 코르듀엔 전쟁터와 과거의 바하르가 겪은 회상이 번갈아 교차되며 보여주는 상황을 보다 보면 알게 된다. 바하르와 그곳의 여성들은 정신 차릴 틈 없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상을 빼앗겨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스크린 속에 보이는 전쟁은 과도하게 잔인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그동안 보아왔던 소란스럽고 유혈이 낭자한 전쟁영화와 다르게 느껴진다. 정적인 이 영화에서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두려움을 감각하게 하는 건 인물들의 가쁜 호흡과 좁은 시야이다. 카메라는 위기의 순간에 천천히 흐르고 클로즈업해 마틸드가 찍은 사진처럼 뇌리에 박히게 만든다. 빛과 어둠은 전쟁 속 두려움과 그 안에서 함께하는 연대자의 따스함을 잘 표현한다. 카메라는 천천히 옆으로 흐르며 전쟁 속에서도 평등하게 생활하는 숙소를 보여주는 아침 장면을 밝게 보여준다. 어둠 속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춤을 추는 모습은 전쟁 속에서 잠시의 위로를 준다.

 

엔딩에 다다라야 그 내막을 알 수 있는 인트로의 영상은 온통 뿌옇고 인물들을 구분하지 못하게 한다. 전쟁 포화 속에서 누구든 그 존재가 가진 특이성이 지워지고 피해자로 불리게 된다. 성노예로 함께 무기상에 팔려 갔던 이가 바하르의 기치로 자유를 찾았음에도 피해자가 되기 싫어 싸우러 간다고 말한다. 그 사람의 말은 바하르를 움직이고 바하르의 움직임은 다른 대원들을 이끌게 만들었다. 마틸드 또한 종군기자로 전쟁터에서 목도한 진실을 외면하지 못한다. 비록 자신의 아이도 위험하게 만들고 가족을 잃었지만 자신이 보고 전하지 않으면 지워지는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가 담담하게 증인의 입장으로 그들의 일상에 들어간 듯이 진행된다. 바하르와 마틸드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 뒤 자연스럽게 카메라는 마틸드를 따라간다. 처음에 그곳에 들어왔을 때처럼 관객은 마틸드를 따라 그곳을 떠나며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마틸드가 떠나며 담담히 읊는 내레이션은 비록 세상이 더이상 진실을 원하지 않을 때 관객들에게 증인이 되어달라고 말한다. 바하르와 부대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구해낸 아이들과 그곳에 남는다. 폐허 속이지만 밝게 비추는 태양 아래서 미래를 희망하며 생명을 이어나갈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증인이 되어주면 좋겠다.

 

-관객 리뷰단 박형순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