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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여자> 리뷰 : 진심을 찾기 위한 도망이었길 바란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9. 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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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여자>

진심을 찾기 위한 도망이었길 바란다

 

귓가로 들어오는 누군가의 사적인 대화에 어느새 집중하여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 순간 남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다는 상황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뒤섞여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기분이 든다. 감희(김민희)와 감희가 만나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시간은 이런 경험과 닮아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영화의 서사가 거의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흘러간다는 것과 영화에 담긴 대화들이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일상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감희는 영순(서영화), 수영(송선미), 우진(김새벽)과 차례대로 만난다. 세 여자는 모두 감희와 이미 알고 있는 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친분이라는 장치 덕분에 감희는 그녀가 만나는 여자들과 보다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눈다. 대화는 대화자에 따라 화제가 바뀌지만 모든 대화 속에서 감희가 꼭 빼먹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감희가 남편과 5년 동안 떨어져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감희는 남편의 생각이 사랑하는 사이는 붙어 지내야한다는 것이라 그렇게 지내왔다며 지금처럼 오래 떨어져 본 게 처음이라 말한다.

 

감희와 남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세 번의 만남에서 거의 동일한 대사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렇게 반복되는 레퍼토리가 생각보다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등장하는 대사는 동일하지만 대화 상대를 대하는 감희의 태도가 다른 결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영순과 수영과의 대화에서 감희는 은연중에 만족감을 드러낸다. 영순과 수영은 감희가 그들을 만나려는 목적으로 그들의 집을 방문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순과 수영이 사는 모습을 보며 그녀들의 앞날을 응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현재 사는 모습을 덤덤히 이야기한다.

 

영순과 수영에게 남들은 뭐라고 할지 모르나 자신은 사랑받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는 감희에게서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우진과의 대화에서는 감희에게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진과의 만남은 앞선 두 사람과는 달리 감희가 의도하지 않은 우연의 결과물이다. 감희는 우진과 마주 앉은 내내 불안한 기색을 내비친다. 우진과 감희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어색해진 과거가 둘 사이의 간극을 만들었으리라. 우진의 남편이 된 감희의 옛사랑 정선생(권해효)이 그들과 같은 건물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 감희를 더욱 불편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흑백영화를 보고 나온 감희는 우진의 사무실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다시 대화를 이어가는데 둘 사이의 화제는 자연스레 그들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우진은 인터뷰를 하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하는 남편의 행동을 이상하게 느낀다고 말한다. 그리고 반복해서 똑같이 말하는 것에 진심이 담겨 있을까?’라는 질문과 자조가 담긴 말을 감희에게 던진다. 우진의 대사는 겉으로는 그녀의 남편을 향한 불만처럼 보인다. 그런데 좀 더 곱씹어 본다면 우진의 대사는 사실 감희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진과의 대화에서 처음으로 감희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대한 불안함을 드러낸다. 우진은 모두가 감희의 남편을 부러워할 거라 말하지만 감희는 그것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동안 반복되어 등장한 남편과의 관계가 진정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이어온 것인지 반문이 시작된다. 정선생과의 불편한 만남을 뒤로 하고 감희는 다시 극장에 들어간다. 스크린에 나오는 화면은 감희가 앞서 보았던 흑백영화에 색채가 더해진 것이다. 화면은 마치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무미건조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감희의 요동처럼 느껴진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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