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치어리딩 클럽> 리뷰 : 자신을 드러낸 그들을 응원한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9. 16. 13:54

본문

<치어리딩 클럽>

자신을 드러낸 그들을 응원한다

 

영화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노년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오프닝 시퀀스에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마사(다이안 키튼)의 모습이 창고 안에 갇힌 듯 어둡고 좁은 화면으로 보인다. 흔히 매체에 보이는 노년의 모습은 외롭고 일상이 단조롭고 반복적이다. 마사가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장소로 정한 실버타운 선 스프링스로 들어가는 모습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초반에 집을 정리하는 마사를 보여주는 것과 다르게 확연히 화면의 진행이 느려진다. 앞차에 가로막혀 답답해하는 마사의 모습을 뒤에서 보던 관객도 그 답답함에 이입하게 된다. 마사의 속도가 실버타운의 속도와 같아지자 느려진 속도에 익숙해진 눈엔 재미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인물들의 자조적인 죽음 개그는 이상하게 통쾌하다. 장례식은 매일 있는 피크닉이 되고, 자신의 눈에 흙이 들어올 때까지 치어리딩은 안 된다던 앨리스(레아 펄만)의 남편은 리드미컬하게 다음 장면에 죽어 관에 실려 나온다. 무례해 보이는 개그를 하는 건 늙어가는 당사자이기에 웃을 수밖에 없다. 살아있으나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노인은 누군가 함께 움직여주지 않으면 고립된다. 치어리딩 클럽은 다리를 다쳐 관 같은 집에 갇힌 헬렌(필리스 소머빌)을 구해 버스에 태우고 활기차게 달려간다. 그들이 탄 버스를 운전하는 건 다음 세대인 벤(찰리 타핸)이지만 마사에게 배워서인지 그 속도가 놀라울 만큼 빠르지 않다. 그들의 구출이 느려서 도리어 보는 이의 마음을 졸이게 만든다.

 

오프닝의 마사의 모습은 엔딩에 다다르며 빛이 쏟아지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치어리딩 멤버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마사가 만든 치어리딩 클럽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변화시킨다. 이중 소수인 존재들이 나온다. 다들 만류하는 치어리딩을 하려는 할머니들, 실버타운에 살아 괴짜 소리를 듣는 벤, 자신에게 이득인 학교클럽보다 할머니들과의 시간을 선택한 클로에(앨리사 보), 이들의 연대는 마주친 사회의 차별을 뚫고 나가는 동력이 된다. 화면은 마사는 좌절할 때마다 홀로 어두운 집안에서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연대는 스스로든 타인에 의해서든 그런 단절에서 끄집어내 햇살이 비추는 밖으로 나오게 한다.

 

스쳐 지나가며 서로에게 지적하던 셰릴(재키 위버)과 페이지(알렉산드라 피켄)의 대화는 순간의 재치로 번뜩인다. 여성의 몸은 연장선에 있다. 노인에게는 스치기만 해도 부러지고, 젊은 여성에게는 성병이나 임신을 초래한다. 영화는 그들을 대척점에 놓지 않고 교차하며 그저 여성이 일생에 겪을 수 있는 몸의 변화를 대변하는 자로 등장시킨다. 영화에 노인의 성욕, 여성의 몸, 나이, 질병 등 차별적인 요소가 등장해도 재미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간 과거 여성의 욕망은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가두는 것으로 인식되었듯 여성 노인에 대해 몰랐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사실이 여성 관객을 흥분시킨다.

 

영화를 보고 80세가 넘어 평생의 소원인 한글을 배우고자 집을 나와 읍내에서 자취를 했던 나의 할머니가 떠올랐다. 비록 돌봄에서 벗어나 건강의 위협을 받게 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식의 간섭이 닿지 않는 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즐거워 보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치어리딩을 배우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재미를 줄 뿐만 아니라 영감과 동기를 주었던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현실은 나이 든 여성이 욕망을 분출하지 못해 스스로를 잠식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두 팔을 벌려 뛰기도 힘든 할머니들의 도전을 이렇게 재미있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건 극 중 마사의 말처럼 우리를응원하기 위함이 아닐까.

 

-관객 리뷰단 박형순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