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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의 여름밤> 리뷰 : 꿈을 꾸는 집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8. 2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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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의 여름밤>

꿈을 꾸는 집

 

카메라는 누구의 시선인지 새근새근 잠을 자는 옥주(최정운)의 모습을 오래 내려다본다. 그 아이같이 안온한 모습을 보니 할아버지(김상동)의 죽음도, 어른들의 낯선 이면도, 옥주의 해소되지 않는 욕망들도 다 꿈인 것만 같다. 방 한편으로 치워진 모기장은 한여름의 열기가 물러가고 긴장이 풀렸음을 보여준다. 폭발하지 못하고 오래 묵은 감정이 여름의 더위처럼 무기력하게 감쌀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낮의 더위를 식히는 밤과 안정을 주는 집이지 않을까.

 

같은 집에 얼마나 살아야 가족의 속마음을 알 수 있을까? 옥주네 가족은 좁은 집에서 넓은 할아버지의 2층 양옥집으로 이사를 한다. 머뭇거리며 옥주와 동생 동주(박승준)가 처음 발을 들인 할아버지의 집은 이상하다. 방과 거실 그리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곳곳에 문이 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한다. 문과 벽으로 구획된 집은 그 안의 인물에 따라 타인에게 개방과 폐쇄를 반복한다. 문이 열린다고 해도 화면에는 가려진 방의 일부만 보인다. 같은 곳에 사는 가족이라도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할아버지의 손이 닿는 거실은 단정하고, 매일 물을 주는 마당에는 채소에 과일까지 먹을거리가 생기 넘치게 자란다. 할아버지의 집은 부계로 이어지는 직계가족들이 모이며 생기를 갖는다. 하지만 가부장제의 핵심인 남성은 영화 속에서 나약하고 보호받으며 그 유약한 본성을 드러낸다. 더불어 동생과 할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옥주와 음식을 해 먹이는 고모의 역할이 고정되고 성차별적인 요소로만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집이 그 안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게 하고 서로를 보완하는 협동의 공간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며 옥주는 자기만의 공간과 자전거를 가지게 되고 가족으로 인한 답답함을 해소하는 확장을 경험한다.

 

영화는 직접 겪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을 관객에게 잘 전달한다. 할아버지의 집은 죽은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집안은 체리색 몰딩과 가구들, 시계, 앨범, 전축 같이 오래된 것들이 가득하다. 그 속에서 그리움에 젖어 노래를 듣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관객에게 옥주처럼 다가가지도 외면하지도 못한 채 계단 중간에 주저앉아 함께 노래를 듣게 만든다. 아빠(양흥주)가 잊고 있었던 기억 속의 장난과 고모(박현영)가 가진 할머니 꿈 이야기는 고스란히 재현되며 그다음 세대인 옥주 남매에게 이어진다. 이것들을 보여주는 화면은 선명하지 않고 색조가 옅어 인물들의 감정을 아련하게 관객이 느끼게 한다.

 

할아버지 집안에서 밥을 먹는 가족의 모습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따스하고 단란해 보인다. 영화가 보여주는 할아버지의 집은 흩어져있던 가족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남은 가족이 이전과 같은 모습을 해도 그 속에 담긴 감정은 같지 않다. 이게 실제 옥주의 경험인지 꿈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엔딩은 여전히 할아버지의 흔적이 남은 집안에서 평온하게 잠을 자는 옥주의 얼굴을 비춘다. 그 모습은 비록 곁에 있지 않지만 항상 지켜봐 주는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된 할아버지의 집은 실제로 자식을 키워 출가시킨 노부부가 사는 집이다. 영화의 톤을 극명하게 살려주는 공간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에 실제 한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현실감과 집의 존재감을 극대화시킨다. 이건 꿈이었을까?

 

-관객 리뷰단 박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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